서양화가 박용인 씨는 남다른 색채감각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구상 작가이다. 오늘의 미술이 어떤 특정 이즘보다는 표현의 다양성을 하나의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음과 관련하여 볼 때 뚜렷한 개성을 지닌 각각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으므로 얼핏 저마다 다른 표정의 작품을 하고 있을 듯하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비슷비슷하다는데 놀란다.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데 비해 오히려 표현 영역은 상대적으로 좁아지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어 개성 있는 작가를 찾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우리 미술계의 흐름 속에서 볼 때 박용인 씨의 존재는 뚜렷하게 부각된다. 구상회화 한계를 핑계로 비구상의 세계에 입문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확실히 놀랄 일이지만 그는 일반적으로 논의 되고 있는 구상화의 한계를 극복, 신선한 감각의 구상세계와 만난 성공하고 있다. 그의 작품상의 특징은 우선 색채의 아름다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일상의 색과 회화의 색이 어떤 차이를 가지며, 그 의미가 어떻게 다른가를 깨닫게 된다. 다른 표현을 빌린다면 그의 작품을 보면서 색채의 마술사와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원색적이면서도 결코 원색이 아닌 밝고 화려한색상의 배치가 놀랍다. 전체적으로 명도와 채도가 낮은 색상의 작품들도 역시 화려하고 밝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색을 순도 높게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캔버스에서 색을 만들지 않고 팔레트에서 이미 완성된 색을 캔버스로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그래서 명도와 채도가 낮은 작품에서도 색의 투명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가능한 한 채색의 중첩을 피하면서 개개의 사물의 이미지를 한 가지 색조로 처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채색은 화려하기만 하다. 서로 다른 색상이 어울리더라도 어느 특정 색이 튀는 것을 억제하며 채도의 균일 도는 통일을 꾀하고 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색상이 상충 없이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톤에 의해 어떤 질서를 얻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의 작품상의 또 다른 특징은 구성의 단순성에 있을 것이다. 사물의 이미지에 대한 해부 또는 분해를 거쳐 재구성되고 있는 회화적인 조형미는 그의 남다른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림의 소재에서 사실적 이미지를 추출하기 보다는 추상적 이미지에 가까운 조형언어를 창출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비록 평면이라는 제한된 의미에서의 조형 언어이지만 그의 화면에서 공간적인 조형감각을 감지하기는 어렵지 않다.
서구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서정성 그것은 그가 사물을 분석적인 시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이미지가 아닌 작가 자신의 미의식에 여과 되어 나타나는 상상적 이미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엄연한 구상화이면서도 비구상 회화의 맛을 음미할 수 있음은 어쩌면 상상적 이미지 묘사에 기인한 것인지 모른다. 그는 사물의 묘사를 억제하고 생략함으로써 단순화 시키는 반면에 상대적으로 상상적인 시각의 자유로움을 얻는데 관심을 보내고 있다. 부족한 가운데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상상적 이미지 창출의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회화만이 보여 줄 수 있는 구성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있다.
대담한 단색조의 면처리와 표현의 생략이 상상적 이미지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미지묘사에 충실하기보다는 보다 많은 생각의 공간을 만드는데 애착을 갖고 있음을 본다. 그림은 분명이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비시각적인 미적 카타르시스가 내재되어야 한다는 이중적 과제를 외면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박용인 씨 작품은 두 가지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은 색채감각 및 구성의 세련미와 함께 서구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서정성에 있을 것이다. 감각적이면서도 지적 분위기를 잃지 않는 그의 작가적인 통찰이 예사롭지 않다. 적당히 비어 있는듯하면서도 전체적인 통일성 또는 조화의 질서에 무리가 없는 화면구성에서 아릿한 서구적인 향수가 담긴 서정시를 읽는듯한 느낌이다. - 글·신항섭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