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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윤병락, 켜켜이 쌓인 고향의 추억

‘울트라 일루전’으로 열매의 만족감, 수확의 기쁨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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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44-345호 박현준⁄ 2013.09.16 11:02:39

“자연은 일종의 사전이다. 자연에는 문장 혹은 단락을 만들어낼 수 있는 수많은 단어들이 들어있다.”(외젠 들라크루아) 들라크루아의 시각에 따르면, 윤병락(45)의 사과그림은 그가 자연이란 사전 속에서 찾아낸 ‘문장’ 또는 ‘단어’랄 수 있다. 많은 단어 중에서 그가 ‘사과’란 단어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윤병락은 유년시절을 경북 영천에서 보냈다. 청량한 공기와 무성한 숲, 아름다운 풍광 등 풍족한 자연의 혜택을 누리는 영천은 특히 밤낮의 일교차가 심하고 일조량이 풍부하여 과수(果樹) 농사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역시 어릴 적에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들판을 헤집고 다니고 사과밭을 안방처럼 드나들었다. 과실이 풍부한 곳이라 어디서든 사과나무를 볼 수 있었는데 그의 작품 한 켠을 들여다보면 이렇듯 켜켜이 쌓인 고향에 대한 기억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빛깔 곱고 탐스러운’ 능금이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대학을 졸업한 뒤였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던 차에 우연히 길을 가다가 궤짝에 담긴 사과가 눈에 띈 순간부터 그는 작품의 실마리를 잡게 되었다. 그것은 기존 캔버스를 이용하는 대신 지지체를 패널로 짜고 그 위에 한지를 붙이고 프레임 모양과 크기를 조절하는 것이었고 이 방식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물론 대학을 졸업한 뒤로 그는 ‘보물창고찾기’란 주제로 반닫이라든가 도자기, 놋그릇, 밥그릇과 같은 민예품들을 기용한 정물화에 주력하기도 했다. 한국적인 미감이 실려 있는 그림에 치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전통적이고 민속적인 기물에 눈길이 갔다. 그러나 예전 것을 답습하는 것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옛 기물을 모티브로 삼으면서도 그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시도를 거듭했다. 시간이 멈추어버리고 공간의 중력마저 느껴지지 않는 설정은 이런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이 무렵 작가는 사각 틀에서 벗어나 문갑이나 그릇, 주판, 재봉틀 받침대 등 여러 오브제를 지지체로 대용하기도 했다.

궤짝안의 사과가 그에게 잠자고 있던 고향에 대한 향수를 깨웠을까? 그 후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사과그림에 매진하게 된다. 빨간 사과가 주는 이미지는 맛있다는 느낌과 더불어 나아가 누군가의 노고가 깃든 결실의 기쁨이자 풍요로움일 것이다.(중략) 윤병락의 그림에서 사과는 ‘식재료’가 아니라 ‘아름다움 자체’로 존재한다. 채마밭에선 식물이 정원사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존재하지만 화원(花園)에서는 화초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재배된다. 그의 사과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과는 식탁에 오르기 위해 존재하지만 윤병락의 사과는 우리의 창조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준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은 낙원에 대한 기억이거나 신화(神化)된 세계에 대한 예언이다”는 니콜라스 베르자예프(Nicholas Berdyaev)의 말은 우리가 자연을 대할 때 한번 쯤 숙고해볼만한 대목이다.(중략)

사과는 식재료가 아닌 아름다움 자체로 존재 이외에도 윤병락의 그림이 주는 매력은 아마도 작가의 사물을 보는 시각과 공간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예사롭지 않은 시선의 높이를 갖고 있다. 비스듬한 각도도 있지만 대게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처럼 가파른 각도의 부감 법을 기용하고 있다. 이것은 회화에서 원근법과 소실점을 주로 하는 공간해석과는 매우 다른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부감법의 적용은 우리가 길거리에 놓인 사과 궤짝을 볼 때와 유사하다. 그렇지만 전시장의 사과는 바로 땅으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그래서 재차 사과를 응시하게 된다. 그러나 우려했던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으며, 그럴수록 그림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증폭된다. 그의 작품은 사과 이미지가 벽면에 위치함으로써 벽 자체가 지지체의 구실을 하게 된다. 작가는 사과 이미지를 벽에 걸고 주위에 몇 개의 사과를 분산시킴으로써 화면 외부의 공간까지도 작품의 부분으로 확대시킨다.

“이는 공간속으로의 무한한 확장”에 기인하며 “작품과 그 주변 공간이, 즉 가상의 공간과 실존의 공간이 서로 호흡하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보다시피 그의 작품은 배경 없는 그림이다. 배경이 없다는 것은 화면 자체가 주된 모티프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작가는 벽을 이용하므로 캔버스 크기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벽면 전체를 캔버스이자 공간으로 자유로이 활용하는 셈이다. 이로써 확대된 공간개념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환영과 실재 사이의 중간 지점에 있는 그의 그림은 우리의 눈을 의심할 만큼 실물과 닮아있다. 과일 표면의 숨구멍, 싱싱한 과육과 흠집, 고운 색깔과 무늬, 심지어 햇빛에 그을린 자국까지 생생이 묘사되어 있다. 그렇다고 표면 정황의 기술에 치중한 나머지 회화적 속성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아니다.(중략) 작가는 ‘울트라 일루전’으로 재현을 심화시키면서 감상자에게 흠잡을 데 없는 매력적인 아름다움과 열매의 만족감, 수확의 기쁨을 체험케 한다. 우리가 그의 ‘사과’를 보며 관조하고, 상상하고,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작가는 이렇듯 ‘시각적 즐거움’을 매개로 관객과 소통하고 있으며, 그의 그림이 친숙하다는 것은 곧 공감의 폭이 넓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내용을 공유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작가는 사과를 매개로 감상자들과 말 걸기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 서성록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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