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배병우(63)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소나무보다는 바다를 먼저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것도 섬을 중심으로 아날로그 필름으로 찍었다. 소나무 작가로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 2005년 팝가수 엘튼존이 '경주 소나무' 작품을 2억8000만원에 구입하면서부터다. 인생의 변곡점이 만들어진 시기로 56세 때였다. 어려서부터 바다를 동경해온 그가 최근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의 모습을 담은 '윈드스케이프'시리즈를 내놓았다. 소나무를 찾아다니기 이전부터 오랫동안 전국의 바다를 누비며 장인의 시선을 통해 정지된 시간의 영원한 움직임을 포착한 것이다. 배 작가는 "29살에 제주에 갔고, 33세에 경주에 갔죠. 먹고 살려고 촬영을 한 것이지, 대단한 작업을 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바람을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빛에 의해 다양하게 변하는 섬들의 풍광이 아름답게 보이게 되더라고요"라고 술회했다. 최근에 제주도와 흑산도 선암사를 다녀왔다는 그가 보여준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거기에는 제주의 바다와 오름, 경주 장항사지 석탑이 붓으로 그려낸 것처럼 담겨있었다. "이게 카메라보다 정말 잘 나와요. 화질이 최고죠" 하지만 여전히 아날로그 필름을 고집하고 있다. 코닥이 생산을 멈춘다면 필름 유통기한 때문에 최대 2년만 가능하겠지만, 필름이 나오는 한 전통 흑백 인화 제작방식인 빈티지 프린트 기법의 '은염사진'을 하겠다고 말한다.
그의 아날로그 필름 고집 이유는 이렇다. "디지털은 너무 선명해서 뭔가 튀는 느낌이 들어요. 너무 선명하게 잘 나오는 게 문제인 것 같다. 내 사진에서 느껴지는 동양화 같은 느낌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이번 전시의 제목 '윈드스케이프'는 풍경에 대한 해석이 강하게 드리운 단어이다. "풍경은 '랜드스케이프'(Landscape)가 아니라 '윈드스케이프'(Windscape)죠. 풍경(風景)은 바람 '풍'으로 시작하는 단어잖아요" 지난 2012년 파리와 취리히, 베를린 등 유럽에서 소개되어 각광을 받았던 배병우의 새 시리즈 '윈드스케이프'에 대한 이야기다. 스마트폰 배경화면은 제주바다와 경주 석탑 소나무사진을 접은 것이 아니라 새롭게 선보이고 싶은 '윈드스케이프'는 제주도 한라산 주변의 기생화산이 만들어낸 여성의 굴곡을 담은 '오름 시리즈'와 사면을 둘러싼 바다를 담은 '바다시리즈', 오름 속 풀의 움직임을 표현한 '식물 시리즈'등 세 시리즈로 완성한 작품들이다. 이들 시리즈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바로 '바람'이다. 자연의 순환을 만들어내는 오묘함에 매료된 것이다. 여수출신으로 바닷가에서 자란 그는 "무엇이든 가만히 있는 것보다 바람에 흔들려 움직일 때 더 아름다운 것 같다"며 바람의 매력을 극찬한다. "제주 해녀들은 태풍이 몰려올 때마다 오히려 좋아하더라고요. 오염된 바다가 뒤집히면 깨끗해지면서 고기들의 먹이가 풍부해진다고 하더군요" 바다의 매력에 빠진 작가의 시선은 섬으로 이어져 대학시절부터 전국 곳곳의 섬을 찾아다니며 카메라에 담았다. "제주도가 결정판인 것 같아요. 그동안 전국의 섬을 다니다 제주도에 올랐을 때 다른 섬에서의 촬영은 연습이었다"고 제주의 매력을 강조했다. 국내에서 유명한 흑백의 소나무 사진은 유럽에선 'Sacred Tree'(성스러운 나무)로 불린다. 독일 유명 출판사 하체 칸트에서 그의 소나무 사진 작품을 모아 'Sacred Tree'(성스러운 나무)제목을 붙여 출간했기 때문이다. 소나무 사진을 찍은 이후부터 궁의 초대를 받은 그는 우리나라 덕수궁 창덕궁에 이어 알브라함궁까지 카메라에 담았다. 내년 여름부터는 프랑스 샹보르(Chambord)성에 초청돼 1년간 작업할 예정이라는 그가 가는 곳은 느와르강변에 있는 루이 14세가 머물던 성이다. 그 성의 숲에도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데, 성의 관리인이 나무를 찍어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곳에서 저의 귀신의 앞날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성의 귀신도 만나보고 싶고, 휴식도 취하면서 말이죠. 전시는 촬영을 한 이후 상의하려 합니다. 샹보르를 찍고 나면 내 나이가 70이 될 거예요. 지금까지 한국 문화유산이 내 작업의 주제가 된 것 같은데, 나는 수묵화가 좋더라고요. 도덕적으로 유교나 불교가 피부에 와 닿으니 말이죠."
소나무와 바람을 담아온 그가 2년 뒤 대규모 회고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평소의 작업관을 말했다. "작품을 많이 하는 게 좋지, 전시를 서두르면 안 된다. 기회가 있었는데 무리수를 두면 안 되는 것 같아 포기하고, 지금은 자연스럽게 전시할 장소와 협의를 하고 있지요" 미국이나 일본보다는 유럽에서 작품을 선보일 확률이 높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진을 붓 대신 '카메라로 그린 그림'이라고 말하는 그는 사진을 '광화'라고 말한다. '빛 그림'이라는 말이다. "사진이란 빛에 의해 그려지는 회화이며 따라서 빛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작가는 뭐니 뭐니 해도 작업량이 많아야 합니다. 발품을 팔고 많이 찍어야 되요. 그래야 기회도 오죠." 사진가 배병우가 유럽에서 먼저 선보인 '윈드스케이프'시리즈가 10월 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걸린다. 자연을 빚어낸 바람의 흔적인 담긴 흑백 톤의 고요한 선율과 수묵화의 잔잔한 울림마저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