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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구자현 “분명 ‘판화 세상’이 옵니다”

인고와 열정으로 거쳐 온 판화와의 행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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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46호 김금영⁄ 2013.09.30 12:04:36

“제가 판화 미술의 독보적인 존재라고요? 그냥 전 꾸준히 판화 작업을 해왔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판화 작업을 이어온 지 32년째, 구자현 작가는 그간 걸어온 지난한 예술의 길에 대해 이렇게 담담하게 평한다. 거창하거나 가식적이지 않고 오히려 당황할 만큼 허심탄회하게 돌아오는 답변들이 보다 가슴에 와 닿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경기도 양평군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허허” 하며 사람 좋은 미소로 직접 만든 막걸리를 한 잔 건네던 구자현은 담백한 막걸리와 같이 화려하진 않지만 솔직하고 친근함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길을 거친 작품들도 그와 똑 닮아있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일단 판화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기자의 키를 훨씬 웃도는 거대한 크기의 판화는 거실을 차지하고 있고, 두 손에 들어오는 크기의 작품들도 작업실 이곳저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멀리서 작품을 봤을 때와 또 가까이 다가갔을 때 느낌이 사뭇 달라지는 점이 특이하다. 다양한 작품들을 보니 말이 32년이지, 구자현이 판화에 몰두해온 그 인고의 시간은 훨씬 농도가 짙고 진중하게 느껴졌다. 대구에서 태어난 구자현은 홍익대 응용미술학과에 진학한 뒤 1980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예술대로 유학을 떠났다. 판화를 전공했지만 당시엔 작가가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오히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자신의 미래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구자현의 길을 작가로 이끈 것은 바로 판화 ‘이론’이 아닌 ‘작업’이었다. 판화는 오랜 시간의 노동이 요구되는 힘든 작업이다. 세 번 손빨래한 삼베를 붙여 판을 만들고, 그 위에 생석회를 덧칠한다. “아무도 가지 않던 ‘판화’ 길이 매력으로 다가와” 그리고 그 표면을 칼로 다듬고 그라인더로 갈아 완성한 흰 바탕을 완성한다. 그야말로 인내심과 열정이 필수다. 큰 작품을 만들 때는 장정 대여섯 명이 며칠 동안 달라붙어야 할 정도다. 구자현 또한 판화 작업을 할 때마다 힘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그토록 힘든 작업이 정말 매력 있었단다. “전 제가 미술 교수가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판화 작업이 정말 매력적이더군요. 제가 판화를 시작할 당시에 한국에서 판화가 활성화돼있지 않았고 인기 있는 분야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남들이 안 가는 길이라는 점이 더욱 흥미를 끌었습니다. 그래서 판화가 발달한 일본에서 판화를 공부했어요. 일본 판화는 소박한 매력이 있어요. 가정집에 판화 한 점을 딱 놓으면 집안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죠. 그것 또한 판화의 매력입니다.” 일본에서 8년 동안 판화 공부를 하고 돌아온 구자현은 그야말로 판화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수많은 작가들이 그에게 자문을 구했고, 현재 또한 제자들이 구자현을 따르고 있다. “판화의 독보적인 존재는 아니지만 (판화를) 꾸준히 해왔다는 건 보람이자 자랑거리라 말할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판화와 해왔던 시간이 긴 만큼 애정도 커졌다. 그래서 걱정 또한 크다. 판화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구자현이 판화를 시작하던 때와 조금은 달라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판화가 고달프고 힘든 작업, 돈을 벌기 힘든 작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미술계에서 두 팔 벌려 환영하진 않는다. 그리고 판화가 손쉽게 복제할 수 있는 값싼 그림으로 잘못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판화로 먹고 살려는 후배들이 별로 없어요. 화랑에서도 판화를 선호하지 않죠. 잘 팔리는 작품들만 미술 시장 안에서 계속 돌고 돌면 고르게 발전할 수 없습니다. 누구 한 사람만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에요. 화랑은 좋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다양한 작품들을 관람객들에게 선보이도록 노력해야 하고, 작가들은 정체되지 않고 계속 좋은 작업을 이어가야 해요. 관람객들 또한 판화가 복제품이 아닌 가치 있는 작품이라는 걸 인식해줬으면 해요.” 지금이야 멋진 작업실도 꾸리고 한 숨 돌리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과거엔 정말 배고픈 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작가의 삶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가 혹시 있었냐”는 질문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절대 없었다”고 굳건한 대답이 돌아왔다. “포기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이 더 빛을 발할 있도록 나 자신부터 더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힘들었던 시기 같이 판화에 애정을 쏟으며 적극적으로 지지해준 아내 덕분에도 꾸준히 작업을 이어올 수 있었다. 함께 미술을 공부하고 유학까지 다녀온 아내는 누구보다 그의 작품을 사랑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작품을 보고 “구자현이 정말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아내는 “구자현과 결혼하길 정말 잘했다. 그의 판화 작업 또한 자랑스럽다. 보다 많은 사람이 남편의 작업을 봤으면 좋겠다”고 연신 말했다. 아내의 바람처럼 구자현은 많은 사람들에게 판화의 매력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매년 해외에서 개인전을 해왔고, ‘판화’, 번역서 ‘서양판화사 개론’, ‘현대판화의 기초지식’ 등 판화 관련 서적도 써왔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직접 판화를 선물하기도 한다. 최근엔 잘 가는 순대국밥 주인에게도 판화를 선물했다.

“판화가 팔려야 건전한 미술 마켓 형성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판화를 선물하곤 해요. 국수집과 순대국밥집에 판화를 선물했는데, 음식점에 걸린 판화를 보고 손님들이 ‘이 작가에게 평생 음식을 공짜로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판화를 받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 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작가는 배고프다’는 말에는 반감을 표하지만 또 그렇다고 무조건 그림이 팔린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하진 않는다. 자신의 작품을 보고 행복해할 사람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고, 거기서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왜 꼭 작가는 배고프다고들 하는지 이해 못하겠어요. 아마 힘든 환경에 처한 작가들이 많기 때문일 거예요. 국가에서도 작가들을 많이 지원해줘서 더 좋은 작가들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해외 작가들을 바쁘게 국내에 소개하기보다는 세계로 나갈 수 있는 한국 작가들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죠.” 이제 판화는 구자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하지만 판화와의 동행에 누구보다 행복한 것은 바로 구자현, 자신이다. 인터뷰 내내 판화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던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판화가 팔려나가야 건전한 미술 마켓이 형성됩니다. 어떤 분야의 그림만 잘 팔린다는 건 미술 마켓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예요. 미술에 얼마나 다양한 작품들이 많은데요. 기회가 고르게 주어져야죠. 전 언젠가 판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판화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도록 앞으로도 제 길을 꾸준히 걸어갈 것입니다.” 구자현은 올해 12월 일본 동경에서 전시를 가진 뒤 다음해 봄에는 국내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다. 앞으로도 걸어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그가 보여줄 작품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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