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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큐레이터 다이어리]흑백드라마가 공존하는 세상

이중섭 미술에서 마음의 교류가 핵심임을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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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48호 박현준⁄ 2013.10.14 13:24:41

최근 즐겨보는 SBS TV 주말 드라마 ‘결혼의 여신’에 등장하는 미술이야기가 꽤 현실감 있어서 흥미롭다. 드라마는 크게 두 부류의 삶을 교차시키며 내용을 전개한다. 재벌로 사는 삶과 평범한 소시민으로 사는 삶이다. 삶의 형태 차이만큼이나 각기 내부에서 미술을 대하는 관점 역시 매우 상반된다. 방송작가 ‘지혜’(남상미)는 제주도 여행길에서 건축가 ‘현우’(이상우)를 만나게 되고 둘은 이중섭 미술관을 방문한다. 두 사람이 겨우 누울만한 비좁은 방에서 네 식구가 함께 살았던 이중섭 거주지를 바라보며 오갔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현우는 세속적인 조건을 중시하는 요즘 여자들은 결코 이러한 환경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이중섭과 아내의 사랑이 책과 기념물로 남을만한 이유는 이 시대에 그러한 순수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지혜는 진심으로 사랑하면 이런 곳에서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라 반박한다. 서로의 영혼이 통해서 두 사람의 영혼이 합쳐지는 것이 결혼이라 믿는다며 현우의 일반화를 부정한다.

이중섭(1916~1956)의 삶은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소통하게 하는 매개였다. 후에 현우는 호화로운 빌라에서 살자고 제안하는 배우자에게 이중섭에 관한 이야기로 행복의 척도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전한다. 좁은 방에서 가족들이 다 같이 생활하면서 참 재미있게 복닥거리며 살았겠구나, 부부싸움을 해도 빨리 풀렸겠구나, 아내의 발가락을 더 잘 볼 수 있었겠구나, 서로 의가 좋았겠구나 하는 내용이었다. 지혜는 대재벌 집안과의 혼례로 화려한 성에서 살게 되지만 숨이 막히고 불행한 날의 연속은 현우의 이야기를 정확히 대변한다. 지혜가 사는 비인간적인 공간에서 미술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본질로부터 180도 변질한 형태로 나타난다.

지혜의 아주버님이라는 작자는 정치자금을 빼돌리고자 돈세탁의 용도로 미술작품 두 점을 수십억 원에 사들인다. 작품의 의미나 미적 감흥 같은 것은 애당초 없다. 작품을 판매한 갤러리스트는 사적 이익과 복수심에만 치중한 채 친절한 대리인 역할을 한다. 결국, 그 작품들은 기업과 집안의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히고 이에 격분한 회장 아버지는 순식간에 작품을 찢고 부순다. 일순간 미술작품 한 점은 쓰레기만도 못한 최악의 존재가 돼버린다. 같은 소재 다른 느낌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지구 반대편이다.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고 따뜻한 영감을 주는 미술이 한편에서는 추악한 구린내가 진동하는 옷을 입게 된다는 사실은 기가 막히게도 현실이다. 이중섭 그림은 시대상을 보여주는 존귀한 자료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이나 정치자금 돈세탁은 몇 차례의 뉴스보도를 통해 이미 대중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생각보다 그 폐해는 미술종사자들과 대중 모두에게 심각한 복병을 낳았다. 대중에게 미술품이란 전시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과 자랑거리가 되는 그러한 존재다. 그런데 그 이면의 세계가 부정적 냄새를 풍긴다는 사실이 많이 알려질수록 작품과 관객 사이에 흐르는 순수한 향기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 모두를 위한 예술이란 표어마저 가식처럼 느껴질 수 있다. 거대한 자본의 세계에서 향유되는 예술의 형태가 드러났을 때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키고 위화감을 조성할 소지가 충분하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을 좋아하지만, 구매를 꺼리는 풍토가 생겨나기도 한다. 기업들의 미술품 투자도 자연히 전반적으로 위축된다. 권력가, 자본가에 의해 자행된 일은 그들이 지닌 힘만큼이나 여파가 상당하다. 일반화를 시켜버리게 되는 영향력이 그 파장이다. 기껏 한 쪽에서 예쁘게 공들여온 탑을 그늘지게 하는 일들은 다리 힘을 풀리게 한다. 양극단의 가운데에 서 있는 필자는 종종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고 반대편에서 당기는 힘들에 의해 몸살을 앓는 기분이다. 하지만 별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미술로 인한 훈훈한 드라마를 생산하고 찾아내어 전하는 길뿐이다. 긍정의 빛을 잃지 않도록. 흑백드라마가 공존하지만, 대중에게 주목받는 것은 일면에 불과한 경우가 많으니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한국 근대화가로서 40이라는 짧은 여생을 살다간 이중섭의 삶이 나라의 문화산업을 만들고 그의 작품이 미술 시장을 뒤흔드는 중심에 위치하게 된 이유를 알 것 같다.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겨우 끼니를 때우면서도 그림이 담긴 편지로 사랑을 전하며 삶을 지탱했던 그 처절한 의지가 감동을 전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의 글과 그림은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존귀한 자료로서도 기능하게 되면서 가치가 더해졌다. 시대를 막론하고 존경받아 마땅한 삶의 지표는 바로 물질과 힘이 아닌 소소한 마음의 교류에 그 핵심이 있다는 메시지를 받는다. “발가락군(발가락이 예쁘다고 해서 붙인 애칭). 나만의 엄청나게 좋은 사람이여…. 어디까지나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모든 것을 세계 속에 올바르게,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오. 나는 한국이 않은 정직한 화공으로 자처하오. 조국의 여러분이 즐기고 기뻐해 줄 훌륭한 작품을 제작하여 다른 나라의 어떠한 화공에게도 뒤지지 않는 올바르고 아름다운, 참으로 새로운 표현을 하기 위하여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소. 세계의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최악의 조건하에서 생활해온 표현, 올바른 방향의 외침을 보고 싶어하고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 -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中 - 신민 진화랑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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