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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 - ‘불국사 작가’ 박대성]실경산수 계보 잇는 대업 “그림에서 광채가 난다”

정규교육 받지 못하고 아픈 굴곡 넘기며 ‘수묵화 대가’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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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51호 왕진오⁄ 2013.11.04 14:50:43

수묵화가 소산(小山) 박대성(68)에게 경주 불국사에서 보냈던 첫날밤은 신혼여행 첫날밤 보다 흥분되고 생생한 기억으로 떠오르고 있다. "어렵게 부탁해 불국사에서 기거를 하고 있던 어느 가을 밤, 달이 휘영청 떠있는 마당을 혼자 걸으니 마치 내가 신라의 왕자가 된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날 밤 이후 박대성 화백은 '불국사 작가'가 됐다. 현대미술을 배워보겠다고 1994년 건너간 미국 뉴욕에서 먹의 번짐처럼 퍼지 수채화 그림을 보다가 경주의 남산이 떠올라 무작정 거처를 옮긴 것이다. 90년대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인기작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그 시절, "그림 주문과 돈과 연관되는 작업을 접고 나를 찾으려 떠나온 미국이었는데, 다시 한국이라니……." 깨달음을 얻기 위해 커다란 창고크기의 작업실도 구했는데, 결국 1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무언가에 이끌려 찾아간 곳이 경주 불국사다. 막무가내로 주지스님을 찾아 "불국사를 그리고 싶다. 그림 그릴 암자하나 내달라"고 했다. 이렇게 1년여 머물던 불국사를 떠나 인사동에서 선보인 가로 9m 세로 2.3m '천년배산'과 가로 8m, 세로 2m 크기에 그려낸 눈 내린 불국사를 담은 '불국산경'으로 인해 화랑가에서 소문이 자자해졌다."그림에서 광채가 난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전통(서예) 외면하는 한국화단 안타까워 이옥경 가나아트센터 대표는 "지금도 소름이 돋을 만큼 놀라움을 가지고 있다"며 "작품 설치를 마치고 전시장 전등을 껐는데 그림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광채가 나서 깜짝 놀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당시로선 전시장에 걸기도 힘든 대작이어서 작품이 팔릴까 걱정이 컸는데 전시를 오픈을 하기 전에 팔렸다고 했다.

한국화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수묵을 현대화한다는 점에서, 겸재에서 소정(小亭)과 청전(靑田)으로 이어지는 실경산수의 계보를 잇는 한국화의 거장으로 회자되는 소산 박대성은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인물로 독특하면서 아픈 삶의 굴곡을 지닌 인물이다. 한국전쟁 당시 부모를 여의고 자신의 왼쪽 팔까지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림이 좋았던 작가는 묵화부터 고서에 이르기까지 독학으로 끊임없는 연습을 거듭하는 고행의 길을 걸을 며 10세 이후 들기 시작한 붓을 놓지 않고 초지일관 화업에만 정진해 수묵의 정점을 이뤘다. "붓을 든 것은 내 운명 같아요. 팔의 부재가 혼자 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았는데, 어린 나이에 집안 제사에 사용된 사군자 병풍을 보고서 벽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그림 좀 그린 다는 소리를 듣네요." 박 화백은 붓으로 만들어진 글씨에 강한 애착과 함께, 붓에 대한 예찬론을 힘찬 어조를 이야기 한다. "추사만큼 붓을 잘 표현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붓을 굴대라 여기고, 굴대를 휘어잡아야만 일필휘지로 수묵을 완성할 수 있어요. 붓글씨라는 것은 수천 개의 털이 집중돼서 종이에 먹을 찍는 것이기 때문이고, 붓끝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중간 털이 움직이는 것이죠. 마치 태풍의 중심에 있는 핵이 위력적인 것이 아니라 핵을 둘러싸고 있는 구름이 중심이 되는 것이죠."

초지일관 수묵 작업에 몰두한 그의 노력이 2014년 가을 하나의 결과물로 세상에 나온다. 문체부와 경주시, 경상북도 지원으로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내에 그의 이름을 내건 미술관이 완성되는 것이다. 7년여 만에 11월 1일부터 24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도 마련했다. 평생 글씨 연습에 매진하며 '원융'을 화두로 삼은 '원융'전이다. '원융'은 막힘과 거리낌이 없이 두루 통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원융무애(圓融無碍)에서 찾았다. 전시를 앞둔 박대성 화백은 "원융은 그림을 그릴 때 거칠 것 없이 나를 열어놓고 사물을 본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수묵화에서 중요한 필선을 제대로 살리고 필력을 기르고자 평생 글쓰기에 힘을 쏟은 그는 지금도 혼자 경주 작업실에서 생식을 하며 글씨를 쓰고 필법에서부터 작업의 시작점을 찍는다고 한다. 박 화백은 "한문 자체가 삼라만상을 디자인한 것이고 글자가 서로 연결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며 "글씨를 쓰면 삼라만상이 단순화되고 획이 되어 눈으로 들어오는 만큼 필력이나 중봉(中峰)을 체득해야 한다"며 국악에서 득음을 하듯, '득필'에 힘썼다고 했다. 한국화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수묵을 현대화하는 '수묵화의 대가'로 등극한 그는 "전통(서예)을 외면하는 한국화단의 흐름이 비애스럽다"고 했다. 우윳빛의 백색이 도드라지는 중국의 전통 종이인 옥판선지(玉版宣紙)에 그린 그림은 목판화처럼 단단하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도 없이 먹 색깔이 꿈틀거린다.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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