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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정 큐레이터 다이어리]빛의 오케스트라 스테인드글라스

움직이는 빛의 향연에서 장엄한 예술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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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53호 박현준⁄ 2013.11.18 11:14:03

열려있는 문틈 사이로 살짝 고개를 내밀어 본다. 마법에 홀리듯 이끌려 들어온 성당 안! 웅장하고 높은 아치 안에서 메아리치듯 울리는 오르간 소리에 압도당하여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성당벤치 한편에 자리를 잡는다.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운 고요한 공간 안에서 장엄히 들리는 오르간 소리가 진동이 되어 가슴이 떨려온다. 성당 뒤편에 거대하게 자리 잡은 파이프 오르간을 뒤로 하고 또 다른 시선이 향한 곳은 햇빛을 아름다운 빛으로 바꾸어 실내로 쏟아 붓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였다. 정교하게 장식된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들은 천천히 성당의 벽면을 타고 이동하는 장관(壯觀))을 연출하고 있었다. 마치 레이저쇼를 보는 듯, 휘황찬란한 색들이 바닥에 내려앉아 오색 빛으로 출렁이며 오르간의 장엄한 소리에 맞춰 아름다운 춤을 추는 듯 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하여 투명하게 내려오는 색들이 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다워 넋을 잃고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 필자에게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는 뭉클한 감동으로 그렇게 다가왔다.

프라하 건축의 결정체-성비트 성당(St. Vitus Cathedral) 어렸을 적 뾰족한 탑이 솟아있는 성이 있는 동화 같은 도시를 꿈꾼 적 있다. 한번쯤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아름다운 성의 공주가 되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까맣게 잊었던 기억이지만 1000년의 세월을 간직한 거대한 체코 프라하 성 안의 124m높이의 성비트 성당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마치 그 때의 꿈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하늘을 찌를 듯 위용을 자랑하는 지붕첨탑들과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각된 성당 외관을 보니 숨이 절로 막혔다. 성비트 성당은 프라하 성내 안뜰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고딕양식의 건물로 프라하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10세기경 처음 지어진 성당은 1344년 ‘체코의 세종대왕’ 격인 카를 4세의 지시로 성당 건립을 위한 공사를 시작한 뒤 900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비로소 완성 되었다고 한다.

오랜 역사를 가늠케 하는 외관의 벽과 종탑들은 시꺼멓게 그을린 듯 군데군데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알고 보니 대리석 안에 들어있는 광물질이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여 산화되기 때문이라 했다. 이 소중한 문화유산이 산성비 때문에 이렇게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성비트 성당에 들어서자 돔 모양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높은 천장 중간 중간 거대한 기둥을 박아 무게를 지탱해 주었으며 처마를 바깥쪽으로 끌어당긴 듯 구성진 디자인과 견고한 설계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있었다. 종교건축의 장엄한 분위기를 간직하기 위한 관광객의 카메라셔터들이 연신 성당의 이곳저곳을 담아내느라 분주했다.

찬찬히 호흡을 가다듬고 눈길을 돌리니 정성스럽게 수를 놓은 듯 한 색의 조각들이 톱니처럼 정확히 맞물려 있는 꽃문양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띄었다. ‘장미의 창’ 이라 불리는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성당 입구 뒤쪽 바로 위에 위치해 있었으며 유리를 분할하는 다양한 패턴들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빛을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색의 움직임이 거룩한 성당의 이미지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대부분 19세기에서 20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다양한 기법으로 영롱하고도 은은한 향기를 품어내고 있었다. 2만 6천여 장의 유리조각으로 꾸며진 ‘장미의 창’ 은 천지창조의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는데 중앙의 큰 동그라미를 중심으로 나뭇잎 같은 8개의 작은 동그라미가 12시 방향부터 시계방향으로 성서 ’창세기’ 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고 한다.

알폰스무하 ‘성 그리스도와 성 메토디우스’ 성비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중 단연 으뜸인 작품은 알폰스무하의 ‘성 그리스도와 성 메토디우스’ 이다. 성당 왼쪽 뒤쪽에서 세 번째 위치한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체코출신의 대표적인 아르누보(art nouveau)작가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1860∼1939)의 작품이다. 그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매혹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획기적인 구도로 표현한 전환기 유럽 예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상류층 여성들을 장식적인 선과 패턴, 다채로운 색감, 서체와 엮어 독특한 스타일의 포스터를 만들어냈다. 또한 자연에서 가져온 모티브로 숨겨진 예술적 철학을 이용한 새로운 개념의 ‘무하 스타일’ 을 구축해 내어 체코의 국민작가로서 칭송을 받고 있다. ‘성 그리스도와 성 메토리우스’ 라는 작품은 체코에 기독교를 전파한 그리스 출신 키릴과 메토디우스의 일대기를 표현한 작품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모자이크로 해야 된다는 기존의 관념을 깨고 회화적 요소를 가미해 자연스러운 표현법을 구현해 냈으니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고전미와 서양의 클래식함을 적절히 혼합시켜 놓은 것 같았다. 작품은 유리창을 중심 부분은 노란색과 붉은색 계열의 따뜻한 색감으로 시작된다. 자연스럽게 그라데이션 효과를 넣은 것처럼 서서히 파란 계열로 바뀌어 자연스러운 효과를 연출하며 전체적인 몰입도를 높여주고 있었다. 성경 속 풍경과 성자들의 모습은 마치 3D 영화의 장면처럼 선명하고 또렷하게 느껴진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종교 건축을 넘어서… 유럽에서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장 번성했던 때가 13세기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창문에 유리화를 그려 성경 내용을 전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래서 스테인드글라스를 ‘가난한 자의 성경(poor man’s bible)’ 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20세기 무렵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는 개별적 예술성을 시도하면서, 종교적, 수공업적인 차원을 뛰어 넘어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특히 현대미술과 접목되어 스테인드글라스는 작가들에 의해 폭넓은 주제를 바탕으로 성당이나 교회 건물이 아닌 일반건물에 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현대적 개념의 유리회화는 유럽은 물론 가까운 일본에서도 시청, 법원과 같은 관공서에 설치된 사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를 공예의 일부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렇지만 종교적인 주제뿐만 아니라 현대건축의 공간디자인 요소로 새롭게 응용되는 것을 인식하고 일상생활 속 건축물에 활용한다면 경직된 공간에 활기를 채워 넣을 공기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 원미정 갤러리그림손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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