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사진이란 시간 여행을 해주는 타임머신 같다" 40년 가까이 소멸을 향해 가속해가는 현대문명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의식의 기원을 찾아 정신적 깨달음에 도달하고자 하는 염원을 시각화 하는 일본현대미술의 거장 히로시 스기모토(65)가 자신의 작업을 말하는 일성이다. 전시장 전체가 빛의 화려함 보다는 태초의 어둠으로 가득한 듯 모노톤의 사진들이 가득하다. 이 사진들이 담고 있는 것은 하나같이 시간의 흐름과 생명 탄생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는 기억을 더듬은 히로시 스기모토의 연작들이다. 스기모토는 "사유하는 사진이란 타이틀은 정신적 안정과 깊이 있는 사진을 보여주고 싶어 5∼6년 전부터 준비를 한 것이다. 정신적 안정과 깊이 있는 사진을 보여주고 싶은 의도를 담았다"고 말했다. 40만 볼트의 전기를 금속판에 맞대어 발생한 인공번개를 노출시켜 만든 '번개 치는 들판'작품은 원시 생명체와 같은 우연적인 형태들을 만들어 생명 탄생의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보이지 않는 추상적 영역을 가시화하려는 과학 분야의 다양한 실험들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스기모토는 이와 같이 19세기의 삶을 크게 변화시킨 다양한 실험들을 현재로 불러와 과학적 발견과 예술적 창조를 연결시키는 특별한 사진을 만들었다.
하늘과 물이 수평선을 중심으로 나뉜 '바다풍경'연작은 지극히 추상적이 모습을 선사한다. 1980년부터 전 세계의 바다를 찾아다니며 담아낸 풍경이다. "수평의 공간,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경계선상의 기후와 온도의 변화로 인해 미묘하게 변화하고 있는 영속적인 것을 담아보려 했다"며 태초의 바다를 보여주려는 것이 바로 "추상적 이미지가 아닌가?"라고 역설한다. 태고의 바다에 비유한 작업은 시간성과 장소성이 사라진 바다의 초월적인 이미지를 통해 우리 시야에서 존재 너머로 확산된 의식의 기원에 대해 표현하여 태고의 바다에 비유한 작업이다. '극장'연작은 시간의 흐름의 궤적을 담아낸 스기모토의 대표적인 시리즈이다. 영화 상영시간 내내 카메라 노출을 하면 결국은 아무것도 없는 하얀 여백만이 기록된다. 흐르는 시간을 한 장의 사진으로 담는 것이다. 영화의 수많은 이미지들은 모두 사라지고 스크린에는 빛나는 백색의 공백만 남는다. 이와 동시에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어둠에 가려있던 부수적인 존재인 극장의 내부구조만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면서 중심과 주변의 관계가 역전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이란, 생명 탄생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는 기억을 더듬는 것” 전시장 한편에 걸린 '초상'연작은 1999년 독일 구겐하임 미술관의 커미션으로 제작된 것이다. 스기모토는 이 연작을 통해 시간, 역사, 재현의 구조에 관한 깊은 통찰과 사유를 보여준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역사 속에서 회화, 조각, 사진 등 다양한 재현방식을 통해 가시화됐다. 하지만 스기모토는 '초상'연작을 통해 사진의 본질적 진실성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역이용하고, 이를 통해 사실과 거짓간의 경계를 흐려 회화-조각-사진을 연결하는 흥미로운 재현의 역사와 다양한 시간적 층위들을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소멸을 향해 가록해가는 현대문명에 대한 성찰 속에서 새로운 정신적 안식처를 제안한 18점의 '5원소'도 눈길을 모은다. '하나의 불상을 만드는 심정으로' 현대 미술을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염원이 헤이한 시대 밀교 경전에 기록된 우주의 기본 5원소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일본의 전통 오륜탑의 형태를 차용했다. 토(土), 수(水), 화(火), 풍(風), 공(空)의 5원소가 각각 정육면체, 삼각뿔, 반구, 그리고 물방울 모양으로 된 여의보주(如意寶珠)의 순수기하학 형태로 환원되어 있다. 물을 상징하는 구의 내부에는 그가 30년이 넘도록 담아온 바다풍경들이 안치되어 있다. 즉 신성함이 사라지고, 종교적 도상들이 관광명물이 되어가고 있는 이 물질만능의 시대에 , 바다를 기원으로 새로운 마음의 은신처처럼 담아낸 것이다. 감상자들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눈 속에서 펼쳐지는 바다로 인해 정신적 안정을 찾아주는 내면의 바다를 아로새길 수 있다.
'부처의 바다'에서는 어스름이 밝아오는 햇살 속에서 황금빛을 반사하며 각각 다른 표정을 드러낸 불상들을 섬세하게 담아내 각기 다른 숨을 쉬던 궁극의 바다풍경들과 오버랩 되어 초월적인 이상향을 그려낸다. 스기모토는 그 찬란함을 경험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개념미술은 과연 13세기에 재건된 사진 속 천 한 개의 천수관음보살상처럼 800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진다. 현대사진의 거장 히로시 스기모토의 대규모 개인전 '히로시 스기모토_사유하는 사진'이 12월 5일부터 2014년 3월 23일까지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에는 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작가의 대표적 사진 연작 및 최근의 조각설치, 영상을 포함하는 49점의 작품이 출품된다. 특히 19세기 대형 카메라와 전통적 인화방식의 명맥을 유지하는 장인적 기술의 사진을 감상하는 동시에,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인간 삶과 의식의 기원을 탐구하고 정신성의 회복을 촉구하는 스기모토의 예술 세계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