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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뉴스]불신의 시대 살아가기

전시 ‘숨을 참는 법(How to Hold Your Breath)’ 두산갤러리 서울에서 5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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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77-378호 안창현 기자⁄ 2014.05.07 11:15:31

▲양정욱,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 나무, 모터, 실, 250x330x250cm, 2013.제공 = 두산갤러리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된 시대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일상화된 시대, 개인과 개인뿐 아니라 개인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연결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의 시대가 오늘의 시대다. 수없이 많은 관계로 개인의 삶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하지만 개인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사적인 공간을 잠식하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 개인의 생각과 행동, 감정은 다른 이들에게 쉽게 공개되고 공유된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예전보다 더 친밀해졌는가?

현대 사회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오늘의 시대는 불신의 시대라고 말하는 전시가 열렸다. 서울 종로구 연지동의 두산갤러리 서울에서 4월 23일부터 5월 31일까지 진행하는 전시 ‘숨을 참는 법(How to Hold Your Breath)’은 개인과 개인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나아가 사회과 국가, 제도와 공동체의 힘과 가치가 점점 의문시되는 시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숨을 참는 법’은 약해진 믿음의 고리와 가속화된 사회 속에 함몰되어 버린 개인의 모습을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는지 고민한다. 그래서 점점 사라지는 개인과 일상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파편화된 사회에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끊겨진 관계를 회복하고자 한다.

전시에는 구동희, 양정욱, 정지현 세 명의 작가가 참여해 사회 속에서 획일화되고 서서히 소멸되어 가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들 작가는 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평범하거나 불확실한 현상들, 무기력한 상황이나 사건들을 낯선 형태의 구조물이나 생경한 상황으로 연출한다.

▲구동희, ‘부목’,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4. 제공 = 두산갤러리


구동희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주변의 상황과 현상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다층적인 영상과 조형물, 설치 작업을 통해 사회 구조를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양정욱 작가는 사회 속에서 평범한 인간의 모습, 관계, 사건들을 나무 구조물의 섬세한 움직임과 소리를 통해 형상화한다.

정지현 작가는 생산, 소비와 폐기가 빠르게 순환하는 사회에서 기능을 다하고 소진된 물건들을 재료로 움직이는 조형물을 만들다. 그는 미처 이야기되지 못하고 사라진 것에 주목하여 역으로 그들을 통해 일상과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먼저 구동희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부목’은 전시 주제와 공간에 영향을 받아서 만든 장소특정적 설치 작품이다. 주변의 상황이나 현상들을 다층적인 구성의 영상, 조형물, 설치 작업을 통해 표현하면서 사회의 무의식적인 구조를 은유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불신의 시대, 개인의 초상을 마주하다

작가는 덧대고 보조한다는 의미의 ‘부목’을 통해 보고 듣고 숨 쉬는 인간의 기본적인 행위를 낯설게 바라본다. 갤러리 내의 다른 공간에 놓인 대형 떡갈고무나무 화분을 갤러리 내부로 옮겨오는데, 여기에 혈관같이 보이는 PVC 파이프가 화분으로부터 나와 천장으로 혹은 벽으로 뻗어 나가 있다.

PVC 파이프는 갤러리에 설치된 CCTV를 가리기도 하고, 벽 안으로 파고들어 가기도 한다. 벽에 설치된 나팔은 떡갈고무나무의 깊은 숨소리가 PVC 파이프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나팔에 늘어뜨려져 있는 이미지는 불이 꺼져 있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핸드폰 사진기로 플래시를 터트려 찍은 것으로, 무관심한 방관자 내지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시선을 드러내는 것 같다.

▲양정욱, ‘아버지는 일주일 동안 어떤 잠을 주무셨나요’, 오일, 나무, 모터, 가변크기. 2014. 제공 = 두산갤러리


반면 양정욱 작가는 나무 구조물을 통해 현대사회를 사는 인간의 모습과 관계, 사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양 작가는 일상에서 느꼈던 단상들을 하나의 문장이나 짧은 글로 적으면서 작품이 시작하는데, 동시에 그것은 작품의 제목이 된다.

좁은 골목에 위치한 맛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무수히 많은 사람의 모습은 ‘오랜만에 만난 네 명의 대학동료는 맛집을 찾아 다녔다’라는 작품에서 모터에 연결된 20개의 단순화된 나무 조각들의 움직임으로 변한다.

그의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와 같은 작품은 겹겹이 쌓인 나무 파편들이 반복적으로 움직이며 소리를 만들어내는 조형물로, 벽에 비친 그림자의 환영과 더불어 지친 일상에 소진되고 파묻혀 있는 현대 사회 속 개인의 평범한 삶을 투영한다.

정지현 작가는 버려진 사물들을 이용해 조형, 설치 작업을 하거나 특수한 환경의 비밀스런 공간을 만들어 일상적 공간을 낯설게 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의 ‘듣기 위해 귀를 사용한 일’도 평소 작가의 관심을 반영한 공간 설치 작품이다.

정 작가의 이질적으로 연출된 풍경의 조형물이나 비현실적으로 평화롭고 정적인 바다 풍경을 보여주는 영상 등을 통해 현실의 경계를 흐린다. 작품 제목 ‘듣기 위해 귀를 사용한 일’은 오히려 인간의 자연스런 행위를 글로 다시 서술함으로써 낯설게 만드는데, 이것은 전시된 작가의 작품을 경험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번 전시 제목도 마찬가지다. ‘숨을 참는 법’은 숨을 쉬며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능적이고 자연스런 행위를 의식적으로 멈추자는 제안일 것이다. 이런 비일상적이고 상징적인 행위는 무의식적으로 반복해왔던 삶을 극적으로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세 작가는 약해진 믿음의 고리와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된 사회 속에서 함몰되어 버린 개인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숨을 참는’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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