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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큐레이터 다이어리]‘미대생이 큐레이터에게 궁금해 하는 질문 베스트 4’ (下)

수십 장을 그리다 보면 적어도 한 장은 걸작으로 완성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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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5호 신민 진화랑 기획실장⁄ 2014.07.03 08:49:54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큐레이터를 하면 가장 좋은 점과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갤러리 큐레이터가 가장 힘든 점은 작품 판매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전시이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적이 되도록 균형을 맞추는 기획은 매우 어렵습니다.

스펙터클, 웅장함, 숭고함 등 작품을 신격화 할 수 있는 분위기로 가다 보면 당연히 의미 있는 전시는 되지만 구입하기 어려운 느낌을 주게 됩니다. 작품에 대한 몰입이 커지고 존중하다 보면 잘 팔리게 하는 기획이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 같은 딜레마에 빠지기도 합니다. 

소위 미술관급 작가이면서 시장에서도 흥행하는 작가는 이미 더 좋은 조건의 갤러리에서 섭외가 이뤄져 있습니다. 내가 속한 조직의 자본의 정도와 인지도, 성향에 따라 선택작가의 범위가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기획해 보고 싶은 작품 중 가까이 가기엔 너무 먼 당신인 경우가 비일비재하죠.

하지만 좋은 점은 매달 새로운 작품들을 몇 주 씩 곁에서 감상할 수 있고, 연출해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같은 공간이 작품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변하는지 신비로운 경험을 합니다.

뜨끈뜨끈한 신작을 제가 제일먼저 볼 수 있다는 것, 그 중에서 전시할 작품을 선택한다는 것, 내가 주제로 선정한 작품이 모두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을 때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기쁨이 밀려옵니다. 나의 안목에 자부심을 갖게 되는 순간들, 작가의 인생에 도움이 되었다는 희열이 쌓여갈 때 큐레이터로서의 행복한 자존감이 올라갑니다.

예술에 대해 끝없이 토론할 수 있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누가 보기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어도 예술을 논한다는 것은 삶의 본질을 논하는 지적 유희의 하나입니다. 예술을 하는 우리이기 때문에 소통이 되는 무언가는 우리가 특별한 존재라는 느낌을 줍니다.

지금 큐레이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이 매력에서 못 헤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리움미술관 히로시 스키모토 전시 중 큐레이터의 작품 설명 장면. 사진 = 왕진오 기자


제 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고 싶은 일은 많은 데 어쩌죠? 큐레이터를 선택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나요?

“저의 경우 학부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후, 대학원에서는 조형예술학으로 마쳤습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정말 행복했고 그릴수록 미술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지만 평생 예술가로 버텨 나갈 충만한 광기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고 주류세계에 진입하지 못하는 예쁜 풍경만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한편, 글과 말같이 언어화에 소질이 조금 있는 것 같았고 어떤 사람들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는 명랑한 자신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막연히 큐레이터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고, 미술이론과 행정을 동시에 배우는 예술학과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저의 성향을 지켜보셨던 학과 교수님들께서도 큐레이터 쪽을 추천하셨습니다. 그 영향도 컸습니다.

대학원 재학 중 미술관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저는 다음 진로를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이라는 비영리 공간은 규율과 근엄성, 교육성을 꾸준히 잘 지향해가야 하는 곳입니다. 갤러리보다는 조직이 커서 업무가 세분화 되므로 한 부분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점도 몸소 깨달았습니다.

이에 반해, 저는 전반적인 업무를 익히고 싶었습니다. 갤러리는 작가섭외, 기획, 연출, 홍보, 판매, 고객관리 등 1인10역을 해야만 하는 곳이기에 전체적인 업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비교적 규율로부터 자유로운 영리 공간에서 저만의 색을 드러내면서 새로운 볼거리를 만드는 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년 전 머릿속으로 그렸던 그림 속에 지금 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이르니 여기서  한층 더 도약하기 위해 새로운 그림을 구상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예술경영이나 전시디자인을 더 공부 해 볼지, 지금까지의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책을 집필하는 것에 힘쓸지, 갤러리의 외국진출을 위해 자본과 작가의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에 주력할 지 등 끝없이 고민합니다. 일에 회의감이 드는 날엔 다른 분야로 전향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도 합니다.

작가, 큐레이터, 무대디자인, 미술기자 등 모든 다 해보고 싶은 마음, 해보아야 비로소 길을 알 것 같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노마드가 트렌드인 세상에서 삶의 가치기준을 정하는 일은 더욱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3년씩 해보고 싶은 일을 바꾸면서 사는 것도 멋진 삶일 수 있는 거죠.

헌데, 분명한 것은 한 분야를 꾸준히 하다 보면 걸어온 시간만으로도 근성, 전문성을 인정받고, 그때 얻는 쾌감이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깊어져야만 나타나는 새로운 세상에서 진정 내가 원했던 것을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주위 사람들과 내 고민을 드러내고 의논해 보는 시간도 가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객관적인 나를 바라보는 데에 참고가 됩니다.

그래도 결국 결정은 내 몫입니다. 내 자신도 내 앞길을 확신할 수 없는데 타인은 당연히 알 수가 없습니다. 조언을 구해도, 고민을 해보아도 도저히 결정이 어렵다면 책을 읽으면서 꽂히는 부분들을 정리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래도 안 되면 혼자 물 한 사발 떠놓고 명상해보는 겁니다.

저는 앞으로 6년 후의 제 모습을 치열하게 스케치해보는 중 입니다. 수십 장을 그리다 보면 적어도 한 장은 걸작으로 완성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신민 진화랑 기획실장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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