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감독 선정·표현의 자유 등 파열음, “비엔날레 역할과 위상 재검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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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와 인권의 도시라고 자처한 광주에서 온당치 못한 은유와 현학으로 오월정신을 감금시키려는 자들에게 엄중하게 경고한다. 인권과 문화의 도시 광주는 껍데기만 남았다. ‘죽어버린 광주’에서 앞으로 절대 작품을 전시하지 않겠다.”

홍성담 화백이 지난 24일 광주비엔날레에서 이용우 대표이사·윤범모 책임큐레이터와 기자회견을 갖고 광주비엔날레 창설 20주년 특별전 ‘달콤한 이슬-1980년 그 이후’에 작품을 전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홍 화백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은 작품 속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한 부분이 논란이 됐다. 광주비엔날레재단 등 주최 측의 수정 요구를 받은 홍 화백은 허수아비를 닭으로 고쳐 그렸고, 결국 전시가 유보된 바 있다.

이번 사태는 예술을 정치의 잣대로 검열할 수 있느냐, 지나치게 정치적인 작품을 예술로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을 낳았다. 국내외 참여 작가들은 항의의 뜻으로 작품을 철수하고 재단 대표이사는 사의를 표명하는 등 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파행이 계속됐다.

이날 홍 화백이 작품을 자진 철회하고, 이번 사태에 항의해 철수했던 다른 작품들도 재전시 될 것으로 보여 파행으로 치닫던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은 형식적으로 일단락 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시감독 선정 문제로 이미 논란을 야기했던 부산비엔날레에 이어 광주에서도 여러 문제들이 노출되고 있어 한국의 비엔날레 행사에 대한 문제제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먼저 광주시와 비엔날레 재단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어 거센 비판을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홍성담 화백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닮은 아기를 출산하는 그림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광주시와 비엔날레 재단은 홍 화백의 성향으로 보아 논란의 소지가 있는 작품을 내놓을 것이 예상되는데도 참여 작가로 선정한 것이다. 결국 그가 제출한 작품 ‘세월오월’에 대해 비엔날레 주최 측은 “풍자를 넘은 정치 편향적 표현이 전시 취지와 어긋난다”는 점을 문제 삼았고, 홍 화백이 결국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맞서면서 파행의 발단이 됐다.

물론 한국 비엔날레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는 것은 지자체나 비엔날레 재단의 미숙함을 질타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번 사태 이전에 이미 한국의 대표 비엔날레들이 많은 문제를 노출했기 때문이다.

비엔날레 근본 개혁 요구하는 목소리 높아

부산비엔날레 또한 지난해 10월 전시감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당시 오광수 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이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공동 전시감독 운운하며 2순위 추천의 프랑스 전시감독을 내세워 논란이 됐다. 이 과정에서 부산문화연대는 부산비엔날레 보이콧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빚었고, 결국 운영위원장이 사퇴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광주비엔날레는 지난 20년 동안 세계 5대 비엔날레로 꼽히며 상하이, 시드니 등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비엔날레 행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국제적인 외형 확장에 비해 지역 작가나 기획자의 전시 참여와 양성에 소홀해 지역 인력을 국제적으로 키우지 못했다. 전문가 위주의 난해한 미술축제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미술계의 한 인사는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도 지역 시민들의 예술에 대한 갈증을 풀어내지 못하고 있어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하고 있어 안타깝다. 이렇다보니 축제에 소요되는 예산의 적절성과 투명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8일 광주미술인협회는 비엔날레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 사태를 비판하면서 비엔날레 재단의 예산 집행과 관련 시의회의 특별감사를 촉구했다.

이에 더해 한국 비엔날레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한국에 비엔날레가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제 거대 전시 이벤트로서 비엔날레의 역할과 기능은 다 했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정치적인 이유에서 전시가 파행을 겪은 이번 사태처럼 문화나 예술 행사가 정치적인 이벤트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비엔날레가 막대한 예산을 들이며 해당 지자체의 성과를 과시하고 홍보하는 창구로 전락했다는 지적은 비엔날레가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에서 비롯한다는 지적도 있다.

해외의 경우 자체적인 예산이나 외부 후원 등이 비엔날레 예산의 60~70%를 차지하고 있으나, 국내 비엔날레들의 경우는 정부나 지자체 예산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미술계에서 지난 20여 년 동안 비엔날레가 일정한 역할을 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비엔날레는 많은 예산과 대규모 전시를 통해 해외의 전위적인 미술을 소개하고, 국내에 예술적인 사건들을 만들어 왔다.

한국의 대표 비엔날레들에서 불거진 이번 논란들을 계기로 20년 전의 초심으로 돌아가 한국사회에서 비엔날레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 안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