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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노벨상과 함께 온다. 매년 오곡백과 무르익는 10월이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과학(물리, 화학, 생리·의학)과 문학, 평화부문의 노벨상은 국가의 품격을 가름하는 최고의 영예다. 이 가운데 노벨 과학상은 국가 과학기술 발전의 척도이자 글로벌 스탠더드다.
우리나라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받은 노벨 평화상이 유일하다. 이웃나라 일본은 지난해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19명 배출했다. 19명 중 16명이 노벨 과학상을 받았다. 이들 가운데 2002년 43세의 나이에 노벨 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는 일본 기초과학의 희망이다. 교수나 박사가 즐비한 수상자 가운데 유일하게 대학원 경력이 없는 연구직 샐러리맨이다.
日 고이치, 학부만 졸업하고도 노벨 화학상 수상
고이치는 당시 세계 최초로 연성 레이저 이탈기법을 응용해 ‘분자 질량 분석기’를 개발했다. 단백질 같은 고분자 물질의 질량을 순간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획기적 기술이다. 신약개발과 암 조기진단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호쿠대학 전기공학과를 나와 정밀기계업체 시마즈제작소에서 일하다 직장으로 걸려온 국제전화를 통해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접했다.
고이치는 소탈하고 겸손하며 자유로운 과학자로 남기를 원한다. 지금도 자신의 이름을 딴 연구소에 늘 출근한다. 그가 지은 책 ‘자신을 경영하는 생각의 기술’을 보면 과학자의 열성을 엿볼 수 있다. 모든 활동의 주체는 자신이며, 자신을 어떻게 경영하느냐가 관건이라 했다.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는 기술을 배우고, 철저한 현장주의로 미래를 개척하자고 했다.
옷감의 바늘땀같이 가깝고 친밀한 일의대수(一衣帶水),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를 거론한 건 다름 아니다. 노벨상 수상자 차이만큼 한·일간 경제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아울러 벌어진 격차를 줄이려는 우리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흔히 일본과 경쟁에서 우리는 ‘가마우지 신세’에 비유된다. 재주 부리는 사람 따로, 이익 챙기는 사람 별개인 격이다.
이런 ‘불편한 진실’은 산업체 곳곳에 널려 있다. 우리 전자업체가 생산하는 액정화면의 핵심 재료인 평광판 보호필름은 일본의 2개 업체가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우리는 메모리 반도체분야 세계 1위다. 그러나 반도체 재료가 되는 짧은 원판인 실리콘 웨이퍼의 10개 중 7개는 일본산이다. 우리가 아무리 물건을 팔아도 결국 돈은 일본이 번다는 얘기다.
한·일 경제 격차 날로 심화, “우리는 가마우지 신세”
글로벌 경쟁력분야에서도 우리는 일본에 크게 뒤진다.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품목수를 봐도 차이가 드러난다. 세계 1위 제품 숫자는 일본이 231개로 우리의 64개보다 3.61배 앞선다. 수출품 부가가치를 100으로 봤을 때, 우리는 60%에 불과하지만 일본은 83%다. 중국이 72%니 우리는 중국에도 뒤진다. 제조업의 핵심기술력을 키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분석한 지난 해 한·일간 경제규모 및 기업경쟁력을 보면, 국내총생산(GDP) 기준 한·일간 경제 격차는 4배에 달했다. 2000년의 8배, 2010년의 5.4배에 비하면 급격히 줄어들었다. 반도체와 TV, 휴대폰을 중심으로 한 전자산업의 발전과 자동차산업의 선전에 힘입은 바 크지만 갈 길이 아직 멀다.
경제의 기초 체력으로 꼽히는 연구개발(R&D)분야에서도 우리는 일본에 6배나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도요타와 혼다 등 29개 사가 연구개발에 1조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우리는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3곳에 그쳤다. 대학생들은 공무원시험에 목숨 걸고 수능성적 우수자들이 의치(의대치대)에 몰리는 우리는 분명 정상이 아니다.
노벨 과학상은 한·일간 경제 격차의 바로미터다. 기초과학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 선진국치고 기초과학을 우대하지 않는 나라가 없다. 경제발전의 원천은 과학이라는 인식과 환경을 바로 세워야 옳다. 나대고 생색내지 않는 게 최고의 덕목이다. (무지명무용공 無智名無勇功)
- 김경훈 편집인 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