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아티스트 - 이강은]다층구조 회화의 창의적 실험
꽃의 형상을 빌어 인간 내면의 다양한 감성적 틀을 표현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이강은의 판화전공 경력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페인팅 작품들과 달리 두 화면이 결합된 그의 작품은 언뜻 뚫린 구멍에 잉크를 밀어 넣어 찍어낸 공판화(空版畵)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대개 1차적인 표면의 이미지들을 살펴보면 테두리가 하나같이 깔끔하고 매끄럽게 정리되어 있고, 그 이미지 면적만큼 공간의 색이 비친다.
그렇게 만들어진 형형색색의 형상들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우선 작품의 제작방법을 살펴보자.
▲청산, 100F, Acrylic on canvas
첫 순서로는 보통의 회화작품처럼 캔버스 바탕에 아크릴 물감으로 이미지를 그린다. 이때 특정한 형상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무의미한 색면 추상화면으로 일단락 지을 수도 있다.
다음으로 유리판 혹은 아크릴판 전체에 밑칠을 하고, 이어서 그 칠해진 면의 물감을 드로잉 하듯 원하는 형상에 따라 지워낸다. 마치 공판화 과정에서 스케치 한 형상을 칼로 오려내어 구멍을 만드는 과정과 흡사하다.
그리고 군데군데 화면의 조화와 구성을 감안해 리터치 하면 일단 바탕 화면작업을 끝난다. 이렇게 두 화면을 맞붙이면 비로소 작품은 온전하게 완성되는 것이다.
흔히 두 화면을 맞붙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한국화와 사진장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령 한국화에 배접기법이 있다면, 사진 분야에선 인화된 사진을 아크릴과 알루미늄 패널 사이에 넣고 압축해 코팅하는 방식인 디아섹(Diasec)을 예로 들 수 있다.
▲감성기상도-룰루랄라2, 20P, Mixed media
그런데 이강은의 다층 화면구조는 분명 이들과 다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공간의 간격이다. 두 화면을 서로 완전히 맞붙이는 게 아니라, 대개 2∼3cm 내외의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 놓는다. 이 간격 때문에 바로 그의 작품이 평면 회화임에도 공판화처럼 보이게 된다.
이강은 그림에서 앞면과 바닥면을 잇는 그 ‘형성의 창’은 특별한 매력이 있다. 단지 밑을 들여다보는 구멍 이상의 의미이다. 어쩌면 겉으로 드러난 윗면은 실재이자 현실이고 , 창으로 투영되어 보이는 이미지들은 허구이자 이상으로 해석될 수 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형상은 착시에 의한 시각적인 이미지일 뿐,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투명한 공간 너머 또 다른 이미지의 조각난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가 스스로를 부른 ‘감성기상도’
결국 이강은이 제시한 형상과 색은 인식의 경계를 보여주는 한편, 감성과 이상을 오가는 매개역할인 셈이다.
2000년 초반 이강은의 첫 개인전부터 작품의 주제나 소재는 줄곧 자연의 일상이었다. 자연만큼 인간의 감성을 잘 대변할 수 있는 소재가 또 있을까. 살아 움직이는 모든 자연의 생명체는 사람의 감성을 일깨운다.
▲감성기상도-산, 100P, Mixed media
때로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때로는 붉게 물든 석양, 무심히 스쳐 지나는 한 줌의 바람결까지…. 예외 없이 편안한 휴식과 경쾌한 생동감을 선사한다. 그래서 자연은 우리 행복의 감성온도를 높여주는 것이다.
이강은은 그 자연에 주목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작품들은 자연현상을 통해 보이진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인간 내면의 감성을 이야기한다. 차가운 이성의 빛을 데워, 더욱 맑고 평온하며 따뜻해진 ‘감성의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를 두고 이강은 작가는 ‘감성기상도’라 부른다. 도종환 시인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고 읊었다면, 이강은은 그 꽃의 형상을 빌어 인간 내면의 다양한 감성적 틀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CNB저널 = 김윤섭 미술평론,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정리 = 왕진오 기자)
김윤섭 미술평론,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