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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창신(法古創新)은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창조한다는 말이다.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가되 근본을 잃지 말라는 거다. 옛것 주장하면 진부하고, 새것 주장하면 난잡하다는 걸 경계한다. 조선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처음 사용했다.
지초(芝草)나 반딧불도 썩은 흙이나 풀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법이다. 만병통치약 지초는 썩은 흙에서 나온다. 스스로 빛을 내는 반딧불은 썩은 풀이 변화한 거다. 원인과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 우물 물 마실 때는 우물 판 사람의 노고를 알아야 한다. 지난 9월 23일 뉴욕에서 열린 제69차 유엔총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서 법고창신이 떠올랐다.
朴대통령 유엔총회 연설 중심 의제는 녹색성장…MB의 국책과제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나라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유엔 안보리 정상회의에 참석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녹색기후기금(GCF)에 최대 1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2년 녹색기후기금 사무국을 인천 송도에 유치한 바 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MB)이 유엔 산하기구 유치를 처음으로 성사시켰다.
박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 중심 의제는 녹색성장이었다. 녹색성장은 MB정부가 추진했던 대표적 국책과제다. 이 가운데 녹색기후기금과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는 대표적 성과물이다. 내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된다. 북한 나무심기를 통한 남북화해협력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얼핏 박근혜정부에서 MB정부와 불편했던 ‘녹색 앙금’이 풀리는 걸로 보인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녹색성장이란 말은 일종의 금기어였다.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는 총리 직속으로 격하됐고, 파견 공무원도 절반으로 줄었다.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실은 녹색이 빠진 채 여러 번 이름이 바뀌었다. 정부 공문서나 부서명도 녹색성장이란 단어 대신 녹색창조경제나 기후변화대응으로 대체됐다. 소위 MB 브랜드 지우기가 계속 됐었다.
그러나 브랜드를 없앤다고 색깔까지 지울 수는 없는 일이다. 섣불리 과거 정부의 공력을 무시하단 자칫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그 공력이 치명적인 과오를 범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녹색성장도 그런 경우다. 녹색성장은 투자 대비 성과가 미진하고 효과가 서서히 나와 자칫 동력을 잃기 쉽다. 그러나 지구환경을 살리는 지속가능한 투자로 녹색성장 만한 게 없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내년부터 시행…미래가치에 대한 투자
최근 박 대통령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한 건 잘한 일이다. 이 제도는 기업마다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정해주고, 남거나 부족한 배출권을 기업끼리 사고 팔 수 있게 한다. 정부는 10월 4일 녹색성장위원회를 열어 업종별 배출권 할당계획을 확정했다. 11월까지 기업별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결정하기로 했다.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30% 줄이고자 MB정부에서 시행하기로 했으나 기업 부담을 고려해 미뤄졌다. 대신 온실가스 감축량을 10% 완화하고 3만원 안팎이던 배출권 기준가격을 1만원으로 낮췄다.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친환경기술 개발을 유도한다는 거다. 반면 자동차에 부담금을 물리는 저탄소협력금제는 2021년 이후로 미뤘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로 산업계가 질 부담은 크다. 2015년부터 3년간 구입비용은 3조원, 과징금은 최대 8조5500억원에 달할 걸로 보인다. 철강과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수출경쟁력에 타격이 예상된다. 그러나 미래가치에 대한 투자는 값을 매길 수 없다. 일본과 중국의 샌드위치 형국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만의 길(Korean Way)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연설을 계기로 MB와 녹색 앙금을 말끔히 지웠으면 좋겠다. 법고창신으로 돌아가 국익 창출의 성장 동력을 함께 도모해야 옳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공과(功過)와 득실(得失), 미추(美醜)는 상존하기 마련이다. 등소평이 모택동을 평가한 것처럼, 공이 과보다 많은 걸 인정하는 공칠과삼(功七過三)의 문화가 절실하다.
(CNB저널 = 김경훈 편집인 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