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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사람들 - 노숙인 돕는 장준기 경위]14년간 노숙인의 ‘큰 형님’…“특별히 잘 한 것도 없는데…”

노숙인과 동고동락 진정성으로 대해, 이발도 직접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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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01호 안창현 기자⁄ 2014.10.23 09:04:15

▲장준기 경위. 사진 = 안창현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라 불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민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 묵묵히  일한다. 또 각종 사건사고를 처리해 사회를 지탱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CNB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경찰청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속기획으로 마련한다. 이번호는 지난 16년간 서울역 노숙인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하며 ‘큰 형님’으로 불리는 서울 남대문경찰서 서울역 파출소의 장준기(53) 경위를 만났다.』


장준기 경위가 노숙인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0년 무렵이었다. IMF 여파로 서울역 인근 노숙인들이 급증해 사회문제가 됐다. 그해 7월 장 경위는 남대문경찰서에 자원했고, 서울역 파출소에 배치된 후 지금까지 14년간 근무하고 있다.

지금이야 ‘형님’으로 불리며 개인사까지 상담해주는 사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당시 서울역 주변은 술 마시며 싸우고, 노상방뇨 하거나 행인에게 구걸하는 노숙인들이 많았다.

각종 사건사고는 빈번했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들을 단속하는 경찰과의 관계도 좋지 못했다. 장 경위는 이런 상황에서 사고 예방을 위해서라도 노숙인들에게 가까이 다가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많은 사람들을 계속 단속만 하고 처벌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감정만 상하고 상황이 더 나빠졌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

그때부터 장 경위는 매일 아침 거리로 나가 청소를 하고 노숙인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파출소에 근무 편성을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중구청 소속인 청소하는 아주머니 3명과 거리 청소를 하면서 노숙인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장 경위는 그들에게 먼저 말도 꺼내고, 못 일어나는 사람은 거들어 쉼터로 보내는 등 노숙인들 편에 서려고 노력했다.

“아침에 서울역 지하도에서 종교단체가 무료급식을 했는데, 처음에는 경찰이 와서 이것저것 참견하니까 노숙인들이 불평을 했다. 밥 맛 떨어지게 먹는 데까지 간섭한다고.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그런 것이 아니다. 당신들 도와주려고 나온 거다. 어려운 점들 있으면 말해 달라’고 진심으로 설득했다.”

장 경위는 노숙인들에게 이발을 직접 해주기도 했다. 장 경위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4형제의 머리를 직접 잘라줬다고 한다. “고향에서 아버지가 쓰시던 바리캉을 가지고 왔다. 노숙인 중에 이발관을 했던 사람도 있어서 그와 함께 시작했다. 이발을 하려는 사람이 400명 가까이 몰려서 번호표를 나눠줘야 할 만큼 반응이 좋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장 경위의 얼굴을 알아보는 노숙인들이 늘고 관계가 개선됐다. 장 경위는 그들을 만나면서 사람 사는 것이 다들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도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았고 그때는 누구나 힘들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들을 그냥 좀 어렵게 생활하는 보통 사람들로 자연스럽게 대했다.

“노숙인들은 저마다 다양한 사연과 문제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 중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고마워했다.”

서울역 노숙인들 중에는 IMF로 사업에 실패하거나 구조조정 당한 사람도 있지만, 처음부터 가족관계에 문제가 있거나 정신적인 질환을 앓는 등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먼저 그들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서한문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알렸다. 지금은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쉽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본적 주소를 알려고 하면 지금보다 수월했다. 그런 정보를 받아다가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당시 70명 정도가 다시 가족들에게 돌아갔다.”


노숙인이 주민등록증 발급 받았을 때 기뻐

차츰 말도 안 꺼내던 사람들이 친구나 형제처럼 허물없이 대해줬다. “높은 사람들, 잘 된 사람들이 칭찬해주는 것보다 나와 같이 생활하는 노숙인들이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참 좋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잘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장 경위는 김모 씨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을 때도 자신의 일처럼 기뻤다고 말했다. 김 씨는 고아 출신으로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서울역에서 30여 년간 노숙생활을 했다.

장 경위는 “불법으로 서울역 플랫폼을 드나들며 짐을 나르던 김 씨에게 범칙금이 계속 부과돼 결국 80만원에 달하게 됐다.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아 일단 내가 그 돈을 갚아주고 돈을 벌 때마다 조금씩 갚으라고 했다”며 그와의 사연을 소개했다.

“그러다보니 본인이 자신도 통장을 만들어보고 싶어 했다. 주민등록증도 만들고, 통장을 만들어서 조금씩 돈도 모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와주게 됐다. 인적사항이 없어서 구청과 법원, 동사무소를 전전하며 2년이란 시간을 들여 주민등록증을 발급할 수 있었다.” 호적이 없는 무적(無籍) 노숙자 였던 김 씨는 장 경위의 도움으로 법원에서 ‘한양 김 씨의 창설을 허가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장 경위는 이렇듯 경찰의 통상 업무를 벗어나면서까지 발 벗고 노숙인들을 도왔다. 그는 “사실 우리 경찰이 하는 일이 광범위하게 말해 관련이 안 되는 일이 없다. 주변의 모든 일들에 경찰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역 노숙인들과 생활하며 즐겁고 기쁜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숙생활을 하다 보면 사실 건강이 좋지 않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노숙인들이 큰소리 치고 거칠게 보이는 것은 자기가 약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마음도 약하고 여리다. 그들이 병에 걸리거나 사망할 때는 참 아쉽고 마음이 아프다.”

노숙인 가족들과도 전화 연락을 하며 소식을 전한다는 장 경위. 그는 이제 이런 생활이 편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내가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주위에서는 격려나 칭찬을 해주니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CNB저널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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