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아티스트 - 금보성]한글가치 재발견, 미술품으로 재해석
‘한글화가’ 금보성이 작품으로 보여주는 남다른 한글사랑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문자가 필요한 이유를 꼽으라면 첫째는 ‘영구성’이다. 내뱉은 말은 주워 담지 못한다지만, 문자로 한 번 기록된 것은 영원히 보존된다. 오죽하면 인류역사를 선사시대(先史時代) 전후로 나눴을까. 이처럼 문자는 인류의 존재가치를 높여주고 후세와 연결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때문에 ‘지식의 기록과 보존성’을 문자가 필요한 이유에 덧붙일 만하다. 더불어 시공을 초월하는 네트워크 시대를 맞은 현대사회 역시 문자의 ‘정보 전달력’ 덕분인 셈이다.
언어는 모든 민족이 갖고 있지만, 고유의 자국문자를 가진 나라는 20여 곳에 불과하다. 그럼 우리나라 한글의 우수성은 어느 정도일까? 단연 최고 수준이다. 자평이 아니다. 지난 2009년부터 ‘가장 쓰기 쉽고, 가장 배우기 쉽고, 가장 풍부한 다양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역대 최고 문자를 찾아내기 위한 취지’로 시작한 ‘세계문자올림픽’에서 한글이 연이어 금메달을 받았다. 평가 항목은 문자의 기원과 구조와 유형, 글자 수, 글자의 결합능력, 독립성 등이었다. 참고로 2위는 인도의 텔루그 문자, 3위는 영어 알파벳이 차지했다.
실제 영어 알파벳 26자로 표현할 수 있는 소리가 300여개에 불과한 것에 비해, 한글은 24자로 8700여개(이론상 1만1000여개)의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하니 ‘정보전달 능력’은 단연 최고이다. 이런 한글이 최근 들어 다양한 분야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한류(韓流) 바람을 타고 가장 한국적인 면모를 세계에 전하는 전령사를 넘어, 온갖 디자인 요소는 물론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조각과 회화, 미디어 작품 등 다양한 순수미술 분야에서 한글의 미적 가치가 새롭게 재평가 되고 있다. 금보성 작가도 한글을 미술작품으로 재해석한 작가들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경우다.
▲한글을 작품으로 재창조하는 금보성 작가는 ‘한글화가’라는 닉네임이 붙어 있다. 사진은 작가의 작품.
금보성 작가의 경우 이미 1997년부터 회화에 한글을 접목시켜 ‘한글화가’라는 닉네임이 붙어 있다. 작가는 초기부터 한글을 얼굴 형상에 맞춰 구성해 주목을 받았다. 마치 그 사람의 정신과 내면을 비춘 얼굴의 관상을 보여주듯, 한글의 자음들을 다양한 오방색의 유기적인 운용을 통해 전혀 새로운 기운으로 재해석 한 것이다. 이렇듯 한글이 지닌 텍스트로써의 조형성에 주목해 1차원 화면에서의 조화를 꾀했던 회화방식에 더해, 최근엔 3차원의 입체조형 작품에 이르기까지 표현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아주 잘 그려서 이름이 난 그림을 우린 ‘명화(名畵)’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이름’은 집안은 물론 당사자의 대표성을 지닌다. 동양에선 이를 ‘성명학(姓名學)’이란 철학과 학문적 관점에서 특별히 다뤄왔다. 성명학원리에 따라 ‘이름이 불릴 때마다 건강·장수·부귀·명예·애정·공부운·성격·성공운·가족운·출세운이 개운작용(開運作用)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주팔자에 맞춰 작명함으로써 ‘비록 선천운이 나쁘더라도 이름으로 후천운을 북돋워 잘 살 수 있게 뒷받침 한다’는 얘기가 있는 것이다.
▲금보성 작가는 한글을 단순한 글자가 아닌 회화·입체 작품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이런 이름이 지닌 내적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재현해내고 있다. 음양오행에 따른 기본 색조와 조형성으로 우주만물의 생멸원리를 담은 한글이름을 해석하는 격이다. 실제로 조순·이낙연·원희룡 의원 등 많은 유명 인사들의 의뢰로 한글이름을 평면회화 작품으로 옮긴 바 있다.
올해 들어서는 한 발 더 나아가 ‘한글이름 입체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입체작품 역시 낯익은 이의 이름부터 주변 사람들의 이름까지 다양하게 등장한다. 금보성 작가의 유명세는 참으로 남다르다. 그를 사랑하고 아끼는 팬클럽이 전국에 흩어져 있을뿐더러, 구성원도 매우 다양한 계층을 자랑한다. 모두 오랜 세월 한글사랑을 실천해온 작품 활동 덕분이다.
이젠 꼬리를 문 입소문 덕분에 자신의 이름에 가족이나 지인의 이름까지 ‘한글화가의 특별한 기운’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여기에 이름 이외에도 평소 좋아하는 단어나 대상의 이름까지 작품 주문방식도 다양해졌다고 한다. 명실공히 이름(名)으로 밝은 기운(明)을 담아 독창적인 명화(名畵)의 세계를 개척한 셈이다.
금보성 작가에게 왜 그토록 한글에만 유별난 애정이 ‘꽂혔는가’를 질문했다.
“앞으로 세계화 바람이 드세 질수록 소수민족의 언어는 사라질 확률이 높아지리라 생각됩니다. 그 전에 한글을 회화적 조형작업으로 옮겨 한글이 지닌 다양하고 창조성 높은 예술미를 알리고 싶습니다. 한글회화는 한글의 조합을 통한 또 다른 감성언어이길 바랍니다. 일부에선 한글은 ‘직각의 미’가 너무 두드러져 다양한 조형화 작업이 힘들 것이란 선입견을 앞세웁니다. 하지만 1980년대 독일의 해체시가 생겨났고, 미국 팝아트 작가 인디아나 로버트의 작품 ‘LOVE’의 성공사례가 있듯, 우리 한글의 기호화도 다양한 측면에서 잘 활용한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지금까지의 작품 활동은 그에 대한 실천과정입니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면, ‘그림의 좋고 나쁨’ 이전에 그 한글이 지닌 ‘내면적 정체성과 정신성을 우선한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아마도 고등학교 때 시인(詩人)으로 등단해 지금까지 7권의 시집을 출간한 이력도 한글에 대해 관심을 갖는데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또한 해외 각지에서의 15년간 이방인으로 생활한 경험 역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찾기’에 큰 기반이 됐을 것이다. 주변 사람과 허물없이 어우러지는 특유의 수용성 짙은 성품이나, 폭넓은 포용력을 자랑하는 인간관계 역시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겠다.
작가의 말 중에 또 하나 인상 깊은 것은 “우리는 너무 흔한 것이 가장 필요한 시대를 맞았다”는 대목이다. 어느 누가 질리도록 먹었던 ‘하찮은’ 김치가 수출 효자품목이 되고, 기름보다 물 값이 비싸리라 생각했겠는가! 작가는 여기에 한술 더 떠 일상생활에서 무심결에 사용되던 한글을 금값으로 바꾸고 있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 됐다. 작가생활 이외에도 시인, 갤러리 대표, 다양한 사회활동 등 왕성하게 활약 중이다.
▲1997년부터 회화에 한글을 접목시켜 작업을 해 온 금보성 작가의 작품.
한글을 단순한 글자 아닌 회화·입체 작품으로 재창조
작가는 자신이 색을 쓰는 방식에 ‘요리한다’는 표현을 즐겨 쓴다. ‘스티로폼(Styropor, 발포 스타이렌 수지) 적당한 크기로 절단-한글이름 스케치 후 컷팅-직화(直火) 가열로 형태잡기-전체에 젯소 2~3겹 칠하기-황토나 돌가루로 초벌-유화물감 칠하기-마무리.’ 그의 작품이 탄생되는 과정을 보면 대략 이렇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갖춰진 형태에 색을 입히는 과정이다. 아무래도 튜브에서 바로 짜낸 물감이 아니라, 작가 고유의 색감을 얻기 위해선 적정하게 ‘반죽하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작가는 ‘반죽’이 아닌 ‘요리’라는 표현을 선택함으로써, 음식처럼 작품 역시 제작과정보다 그 이후 ‘누군가와 만나서 향유되는 과정’에 의미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의 기능과 작가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생각하는 대목이며, 이는 ‘나눔의 실천’이란 사회공헌적인 면에도 무게를 두고 있다는 얘기다.
작가가 시와 그림을 발표하기 시작한 건 28년이 됐다. 한글회화를 단단하게 구축하는데 홀로 긴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아 중도에 포기할 수 있었음에도 묵묵하게 자기세계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한글이 대한민국의 지문이고 정신이기 때문이다.
가장 정감어린 표현 중에 함께 음식을 먹는 사이, ‘식구(食口)’란 말이 있다. 작가 역시 자신이 ‘요리’한 작품으로 또 다른 예술장르의 식구를 살찌우길 기대하고 있다. 보다 성숙해진 우리 사회도 문화가 생활이 되고, 그 문화가 다시 나눔 실천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금보성 작가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CNB저널 = 글·김윤섭 (미술평론가,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정리 = 김금영 기자)
글·김윤섭 미술평론가,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