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전시 - ‘로마제국 도시문화와 폼페이’]사라진 역사, 유물로 부활
국립중앙박물관, 폼페이 조각품과 장신구 등 다양한 유물 298점 전시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로 죽어간 사람들의 캐스트. 사 진 = 왕진오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왕진오 기자) 기원 후 79년, 거대한 폭발과 함께 검은 구름이 나폴리 남동부 도시 폼페이를 덮어버렸다. 엄청난 재난은 당시 폼페이 인구 10%인 약 2000명을 도시와 함께 영원히 땅 속에 가두게 된다.
2000년 전 로마 제국의 번영과 화려한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다 화산폭발로 자취를 감춘 도시 폼페이. 1748년 본격적인 발굴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세계 주요 문명과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의 일환으로 폼페이 유적을 조명하는 전시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를 12월 9일부터 2015년 4월 5일까지 마련했다. 폼페이에서 출토된 조각품, 장신구, 벽화, 캐스트 등 298건의 다양한 유물이 함께한다.
이 유물들에는 화산폭발 직전까지 생활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도시가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폼페이 유적은 죽은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담겨있어 사라졌던 역사의 한 장면이 발굴을 통해 새롭게 부활한 역사적인 현장이다.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전에 공개된 바커스 동상. 사진 = 왕진오 기자
기원전 80년에 로마제국으로 흡수된 폼페이는 도시 곳곳이 재정비되어 신전과 공공건물, 대저택이 건설됐다. 특히 기원전 70년에 지어진 원형경기장에서는 검투사 경기가 열렸고, 대극장에서는 연극 공연이 열려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전시장에는 폼페이 사람들의 뛰어난 조형 감각과 높은 예술적 수준을 느끼게 하는 벽화들이 대거 공개된다. 폼페이의 대저택들에는 잘 가꾸어진 꽃과 나무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이 있는 정원을 그린 그림, 신화 속의 의미 있는 장면과 실제 기둥과 같은 건축적인 양식이 담겨 있다.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전에 공개된 웅크린 남자 캐스트. 사진 = 왕진오 기자
각 방의 벽에는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 것 같거나 실제 기둥이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그림 등이 그려져 있었다. 이외에도 도시 곳곳에 세워졌던 신들의 조각상과 먹이를 사냥하는 동물들의 조각상, 젊은 여인이 팔을 장식했던 장시구가 함께 소개되고 있다.
당시 남성에게 허락된 유일한 장신구가 반지였던 반면에 여성들의 장신구는 종류가 매우 다양했다. 머리에는 머리띠나 금으로 된 그물 장식을 하거나 다양한 모양의 머리핀을 비롯해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의 장신구 등을 통해 당시 화려한 로마제국 도시로서의 폼페이를 조명한다.
▲폼페이 원형경기장에서 나온 검투사의 투구와 정강이 보호대. 사진 = 왕진오 기자
화산폭발 당시 생생한 현장 담겨져
여기에 즐비하게 늘어선 상점에게 구워져 판매됐던 빵, 지역의 특산품인 와인을 담았던 항아리, 공정한 매매를 위한 필수품인 저울과 추 등을 통해 활발한 경제활동이 이루어졌던 역동적인 도시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또한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의 순간을 담은 전시 공간에 마련된 당시 살았던 사람과 동물들의 죽음의 순간이 고스란히 옮겨왔다. 이곳에는 79년 8월 24일 막대한 양의 화산재와 용암, 유독가스를 뿜어내며 갑작스럽게 폭발해 폼페이와 함께 주변 도시들을 완전히 삼켜버린 현장을 그대로 구성했다.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전에 공개된 비너스조각상. 사진 = 왕진오 기자
쭈그린 채로 손으로 입과 코를 막고 있는 남자의 캐스트와 밀려드는 화산재를 막기 위해 엎드린 채 옷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의 캐스트가 있다. 이밖에 집 안에 묶여 있다가 온몸이 뒤틀린 고통스럽게 죽어간 경비견의 캐스트는 소(小) 플리니우스의 편지와 함께 화산폭발 당시의 참혹했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폼페이는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로 한순간에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고대 도시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18세기부터 현재까지 발굴조사가 계속되고 있는 유적이다.
과거의 유적에 대한 고고학 발굴조사로 확인된 유물들은 당시의 쓰임새와 의미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폼페이 유적의 경우는 생활 모습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작은 유물 하나라도 출토된 곳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어 그 가치가 높다.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