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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시리즈 ⑨ SUNLAB]“소셜건축으로 저소득층에 숨통”

공공자금과 크라우드펀딩 동원해 ‘사회적 건축’에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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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23호 안창현 기자⁄ 2015.03.26 09:11:08

▲자원봉사단체 ‘관악동작 해뜨는집’과 SUNLAB의 행복한 집수리 프로젝트. 2013년 3월부터 현재까지 매월 정기적으로 취약계층 주거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 SUNLAB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안창현 기자) “건축가는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묻기 전에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일까?”

‘SUNLAB 모두행복한생활공간연구소’는 이런 질문을 하고 대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하는 건축가 집단이자 소셜벤처다. 사회참여에 관심이 많은 건축가들이 힘을 합쳐 우리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건축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지역 소외계층의 노후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건축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게 된 공간을 탈바꿈시켜 지역사회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까지, 건축을 토대로 우리 사회를 밝히는 SUNLAB을 만났다.

2013년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사는 한 할아버지는 영하 15도의 맹추위를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하며 갈라지고 뒤틀린 방바닥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불과 얼마 전까지 연탄 보일러로 난방을 하다가 갈라진 방바닥 틈으로 연탄가스가 새어나와 응급실에 실려 갔던 적도 있었다.

단열과 난방이 취약한 상황에서 현관문조차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어 추위를 견디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유리는 깨지고 경첩이 떨어진 문은 한켠에 비켜서 있었다. 갈라지고 뒤틀린 방바닥, 떨어진 문짝을 합판으로 겨우 막아놓은 출입문, 바닥이 얼어 사용하지 못하는 부엌, 차에 받혀 부서진 벽면 등 기초적인 생활조차 어려운 주거환경 속에서 할아버지는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해 봄 사회적기업을 준비 중이었던 SUNLAB은 동작구청, 흑석동 주민센터 관계자들과 할아버지 집에 방문했다. 할아버지가 집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고민하며 의견을 나눴다. 그리고 크라우드 펀딩(다중이 참여하는 사업자금 모금방법)을 통해 할아버지 집수리에 필요한 자금을 모았다.

▲천주교 재단 주거지원시설인 수유동 새터청소년(발주처 프란치스꼬회). 2014년 9월. 사진 = SUNLAB

이렇게 2013년 4월부터 ‘행복 집수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한 흑석동 할아버지 집수리는 SUNLAB 설립 이후인 7월 완공되어 결실을 맺었다.

SUNLAB의 현승헌 대표는 “2006년부터 개인적으로 어려운 분들의 집수리 자원봉사 활동을 했었는데, 그때 한계를 많이 느꼈다. 사실 이 부분을 해결하고자 시작한 게 SUNLAB이기도 했다. 취약계층의 집수리 작업을 좀 더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했다. 건축가와 지역주민, 자원봉사자들도 같이 참여해서 최대한 비용을 절감해가는 형태의 취약계층 지원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축학도로서 큰 꿈을 품고 건축사무소에 들어갔지만 현 대표는 당초 생각했던 것과 현실이 많이 다른 것을 느꼈다. “학창시절부터 집짓기 활동이나 집수리 자원 활동을 해왔다. 개인적으로 건축은 거기 사는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공간이나 환경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건축설계 사무소에서 건축 작업을 진행하면서 실제 사회에서 벌어지는 건축행위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간이나 환경보다는 자본의 논리가 우선이었고, 사업을 위한 형식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는 건축 작업이 대부분이었다. 자연스레 좀 더 나은 공간이나 환경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 당시 같은 생각을 했던 건축사무소 동기 성철휘 전 공동대표와 현 대표가 SUNLAB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다.

취약계층 주거지원부터 지역공간 디자인까지

물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롭게 일을 시작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건축사무소 일을 하면서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관악동작 해뜨는 집’의 자원봉사활동인 ‘행복 집수리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취약계층을 위한 집수리를 도왔다.

그러다 서울시 사회적경제 아이디어 공모전 모집광고를 보게 됐다. 함께 사무소를 다니며 건축 분야에 문제의식을 품고 있었던 고민들을 이 공모전을 통해 행동으로 옮기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 대표는 “2012년에 서울시 사회적경제 아이디어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SUNLAB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됐다. 취약계층 주거지원 활동과 기술 교육, 지역공간 컨설팅 등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지원했다. 사실 처음에는 아이디어 공모로만 생각하고 접근했다. 그런데 우수 아이디어를 선정한 이후 창업 프로그램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돼서 고민 끝에 퇴사를 결정하고 창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교육 및 주민이용시설인 신림동 아지트(구 신일경로당, 발주처 어반하이브리드). 2014년 7월. 사진 = SUNLAB

회사 운영은 쉽지 않았다. 당장 수익이 마땅치 않았다. 현 대표는 “창업하고 초반에는 비용 확보가 어려워 기획부터 공사, 준공, 청소까지 모든 작업을 직접 진행해야 해서 철야작업을 밥먹듯 했다”고 말했다.

현 대표는 건축 일을 하면서 필요한 것을 어떻게, 어느 정도의 비용을 가지고 만들 것인가 고민하는 일은 일상이라고 했다. 비용이 많지 않더라도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일이 진행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작업을 회사에서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일을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현실적으로 지속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그래서 SUNLAB에서는 공간을 기획하는 것에서부터 공사를 진행하고 공간을 운영, 관리하는 부분을 모두 포함하는 토털서비스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생각했다.”

초기에는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거의 닥치는 대로 일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회사 운영을 위해 지역 공공건물 리모델링 등 수익사업을 하면서도, 꾸준히 ‘행복 집수리 프로젝트’를 놓지 않았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느라 건축사무소에 다닐 때보다 두 배로 뛰어야 했지만, 그런 덕분에 조금씩 성과가 나기 시작했다.

또한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서 지원기관인 세스넷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이후에는 SK세상, SVPS, 동그라미 재단 등과 파트너쉽 관계를 맺어 멘토링 및 네트워크 활동 등을 지원받았다. 서울시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된 후에는 서울시와 관악구청에서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지원받고 함께 협업을 진행했다.

▲SUNLAB 현승헌 공동대표. 사진 = SUNLAB

SUNLAB이 하는 일이 좀 더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일을 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조금씩 수익이 발생하면서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 것이다.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하나하나 결과물이 만들어지면서 조금씩 나은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다. 같은 회사 동료였던 성철휘 공동대표와 함께 시작해서 2년여 동안 진행해왔고, 현재는 프로젝트 단위 파트너로 작업을 한다.”

SUNLAB은 취약계층 주거지원 활동 외에도 지역재생의 관점에서 공간 컨설팅과 디자인 작업, 건축자재 재활용 연구 등을 병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신림동 신일경로당과 수유동 새터청소년 주거시설의 리모델링, 신원시장 경관 디자인 계획 등 주로 공공시설 리모델링 디자인이나 지역재생을 위한 공간디자인 작업을 해왔다. 물론 매달 ‘관악동작 해뜨는집’과 함께 취약계층 주거지원 활동을 꾸준히 진행 중이다.

소셜 스페이스 크리에이터의 역할

현 대표는 “취약계층 지원이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다 보니 비용절감이 중요했다. 특별히 자재비를 절감하기 위해 폐자재나 재활용 자재를 사용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다. 노후 주거지역 재생은 커뮤니티 기반 작업이기 때문에 주민들과의 긴밀한 소통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SUNLAB은 3개 팀으로 구성돼 보다 체계적으로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간기획/설계, 공간조성, 공간운영 등 3개 영역으로 분리하되 공간에 대한 전체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프로젝트 단위를 통합하여 진행한다. 또는 경우에 따라 개별적인 팀 단위별로 작업을 진행한다”고 덧붙였다.

건축 작업이라는 것이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경우가 있다. 현 대표와 SUNLAB 또한 현장에서 예기치 않은 일들을 겪을 때가 적지 않았다.

“최근에 지역주민들을 위한 마을공간이자 쉼터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주민쉼터로 활용될 외부공간을 한 주민의 악의적인 민원으로 작업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 결과적으로는 지역주민 자신들을 위한 공간을 스스로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어도 긴밀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치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게 된 기회였다.”

SUNLAB에서 현재 중점을 두고 진행 중인 작업은 ‘고시원 대안모델 드림아카이브’라는 프로젝트이다. ‘드림아카이브 프로젝트’는 1인 가구의 폭발적인 증가로 급증하고 있는 주거형태인 고시원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1인 주거지로서의 대안모델을 제안하는 프로젝트이다.

현 대표는 “대안모델의 시장조사부터 연구, 계획, 공사, 운영까지 전반적인 작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에서 직접 작동할 수 있는 대안공간으로서의 민간모델을 발견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시 혁신형 사업공모에 선정되어 공공자본과 사회적 기업이 함께 추진한다.

현 대표는 여러 전문가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SUNLAB의 건축가 집단으로서의 역할은 ‘소셜 스페이스 크리에이터(Social Space Creator)’인 것 같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공간들을 실질적으로 만들거나 만들기 위한 과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장기적으로 SUNLAB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이 역할을 하기 위해 보다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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