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의 세계 뮤지엄 ② 로스앤젤레스]현대차와 손잡은 LA미술관, 알력 끝?
‘인사 전횡’ 엘리 브로드와의 미술관 3각경쟁 관심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아트투어를 한 번 다녀오면 그 매력에 푹 빠지기 쉽다. 여행만 떠나도 설레거늘, 좋아하는 미술관만 골라서 다니고, 게다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얼마나 미술을 사랑하는지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표출할 수 있어 좋다.
최근 아트바젤홍콩 아트투어를 함께 다녀온 분들은 자주 갔던 홍콩이었는데도 이런 명소가 있는지 몰랐다며 도시 재발견이라고 말했다. 예술에 눈 뜨면 일상의 모든 것이 달라 보이듯, 관광 다니면서도 미술관에 가지 못했던 것이 문득 아쉬워진다. 세계의 주요 뮤지엄을 지역별로 점검하는 시리즈로 바젤에 이어 미국의 주요 도시를 살펴본다. 그 시작은 친숙한 로스앤젤레스로 연다.
라크마(LACMA)
로스앤젤레스(이하 LA)는 한인들이 일찍부터 자리 잡은 곳으로 친척들이 있어서, 월트 디즈니랜드 방문을 위해, 또 최근에는 실리콘밸리 출장을 겸해 혹은 라스베이거스 관광을 겸해 거쳐 가는 지역으로 아마도 많은 분들이 한 번쯤은 들러봤을 것이다.
명문 UCLA 출신의 한인도 상당하다. 최근 LA 미술관이 다시 주목받는 것은 현대자동차가 LA카운티 미술관에 대한 장기 지원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라크마(LACMA,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라 불리는 이 미술관은 한국 미술을 꾸준히 소개해왔다. 2009년에는 ‘당신의 밝은 미래’ 전시를 통해 12명의 한국 현대미술 작가를 소개했고, 2013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을 선보였다. 이어 2014년에는 ‘한국에서 온 보물들: 조선 왕조의 예술과 문화 1392∼1910’ 전시를 기획했다. 앞으로 현대자동차의 후원이 이어지면서 한국 미술에 대한 연구가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라크마(LACMA,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라크마는 1965년 개관하였으며 2008년 완공된 렌조 피아노의 웅장한 건축물이 추가되면서 미국의 뮤지엄 중에서는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다음으로 큰 규모를 이룬다. 건물 크기도 압도적일뿐 아니라, 실내 천정도 상당히 높아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전시할만한 충분한 공간을 제공한다.
미술관 마당에 설치된 크리스 버든(Chris Burden)의 작품 ‘도시의 빛’(Urban Light, 2008)은 미술관의 상징을 넘어 LA의 명소가 됐고, 헐리웃이 있는 영화의 도시인만큼 매년 미술관에서 열리는 Art + Film 갈라쇼에서 배우들을 빛내주는 포토존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엘리 브로드
하지만 라크마가 언제나 화려했던 것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미국 미술관이 그러하듯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수많은 기부자들의 후원을 유치하면서도 그들의 간섭에서 벗어난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라크마 미술관의 후원 백만장자 사업가 엘리 브로드(Eli Broad)가 그동안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일명 모카(Moca)와 벌여온 여러 행태가 각종 잡음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브로드는 모카의 후원자로서, 2008년 미술관이 폐관 위기에 처하자 기꺼이 긴급수혈자금 330억 원을 제공했지만 관장을 자기 입맛대로 선정하는 등 간섭이 대단했다. 새로 부임한 관장 제프리 다이치(Jeffrey Deitch)는 그동안 갤러리를 운영해온 인물로 비영리기관의 대표로는 어울리지 않는 인사였다. 이에 22년 동안 모카에서 근무한 학예실장의 사임에 이어 다이치와 뜻이 안 맞는 미술계 원로들이 줄줄이 자문 역할을 그만두겠다고 떠나버린 것이다.
▲크리스 버든, 도시의 빛(Urban Light), 2008. 사진 = 김영애
다이치마저도 얼마 못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고, 후임 관장을 뽑느라 장고를 거듭하는 등 여러 곤란이 이어졌다. 1000억 원에 라크마와의 합병설도 제기된 바 있다. 현재 엘리 브로드는 1500억 원을 들여 자신의 이름을 딴 The Broad 현대미술관을 준비 중으로, 라크마와 모카 바로 건너편 자리에 2015년 9월 20일 개관 예정이다.
앞으로 LA는 라크마-모카-브로드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애증의 삼각관계를 펼칠 예정이고, 여기에 현대자동차가 라크마의 후원자로 나서면서 좀 더 흥미로운 대목으로 들어설 듯하다.
LA의 자랑 게티미술관
루벤스 작 ‘조선 남자’ 보면 행운
게티(Getty)
엘리 브로드보다 앞서 일찍부터 자신의 개인 미술관을 만들어 온 인물이 바로 ‘게티’로, 그의 미술관 또한 LA의 자랑거리다. 자신의 빌라를 전용한 게티 빌라와, 게티 센터는 다양한 소장품은 물론 훌륭한 경관과 교육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게티의 후원으로 모든 입장료가 무료라는 점도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하지만 폴 게티(Jean Paul Getty)는 이토록 많은 재산을 기부해 공공 미술관을 만들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손자를 유괴한 납치범에게는 돈 한 푼 줄 수 없다고 버틴 일화로 유명하다. 협박범들이 손자의 귀를 잘라 보낸 뒤에야 돈을 보냈고, 결국 어린 시절 큰 충격을 받은 손자는 이후 마약에 중독되는 등 불우한 나날을 보내다가 일찍 세상을 뜰 수밖에 없었다.
게티 미술관에 가면 꼭 보아야 할 작품이 하나 있는데 바로 루벤스가 그린 ‘조선 남자’(1617년으로 추정) 드로잉이다. 한때 한복을 입은 남자(man in Korean costume)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지금은 서양인이 그린 첫 한국인 그림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림 속 인물의 사연도 흥미롭다.
▲루벤스가 그린 ‘조선 남자’(1617년 추정) 드로잉.
곽차섭 교수의 저서 ‘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에 의하면, 그는 유럽을 방문한 최초의 한국인 안토니오 코리아(Antonio Corea)로 추정되는데 1592년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이탈리아 상인에게 노예로 팔려 로마로 건너가 1606년부터 1608년 사이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1605년과 1608년 사이 루벤스가 로마를 방문했고, 그 때 이 한국인을 만나 그림으로 남겼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게다가 그가 머물렀던 알비 마을은 1500년대 스페인 지배 하에 놓였던 지역인데 여전히 스페인에 ‘Corea’ 라는 성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은 1983년 런던 크리스티 옥션에서 32만 파운드(약 5억) 라는 높은 가격에 판매되며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작품에 대한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드로잉인 탓에 상설 전시는 하지 않고 있어 LA를 방문하는 시기에 특별 전시가 열리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정리 = 왕진오 기자)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