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경매 라이벌: 서울옥션 vs K옥션 ③]이상규 K옥션 대표 “품질로 승부할테니 시장논리에 맡겨라”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경매 횟수를 제한한다고 침체된 미술시장이 살아난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횟수 제한보다는 젊은 작가들의 출품을 자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미술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K옥션 이상규(54) 대표는 경매시장에 대한 화랑가의 견제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시장을 키우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이 대표의 주장은, 2005년 K옥션 창립 당시에도 그가 똑같이 얘기했던 내용이었다. 당시 ‘기존 서울옥션이 있는데 새 경매업체가 하나 더 생기면 미술시장이 다 죽는다’는 주장이 팽배했었다.
한국 미술 시장의 1년 총 거래금액은 10∼20억 원 수준에 불과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그는 “경매에 B급, C급 작품들만 나와서 그렇다. A급 작품을 소비자들에게 보여줘야 시장 규모가 커지고 거래량이 늘며, 선의의 경쟁관계가 형성돼야 투명한 거래가 활성화된다”는 논리로 이 대표는 화랑가를 설득했고, 그 결과를 오늘 우리는 4천억 원대로 커진 한국 미술시장에서 보고 있다.
K옥션 설립 때부터 함께해온 이상규 대표는 신한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금융인 출신이다. 1992년 하나은행 지점장을 지낸 후 미술계에 들어왔다. 명지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예술품감정학 석사를 취득하고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가족경영 체제로 운영되는 서울옥션과, 기본적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는 K옥션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회사 설립 후 첫 경매를 준비할 때 도록부터 작품 수급까지 전 직원 8명이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했죠. 설립 당시가 시장 불황기였고, 미술계에 구체적 시스템 정립이 덜 된 상태였습니다. K옥션 설립과 함께 보험이나 작품 운송 등 나름의 인프라를 만든 것도 자부할 만합니다.”
후발주자로서 잇단 표준 창출
이렇듯 후발주자인 K옥션이 보여준 행보는 ‘표준 창출’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몇 천만 원이나 하는 미술작품이 팔려도 배송은 비닐 포장지로 이뤄지던 것을, 골판지 규격 박스에 넣어 튼튼하게 배송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경매를 앞두고 예비 고객들을 대상으로 사전에 전시장에서 실물을 보여주며 구매를 유도한 것도 그런 노력이었다. 해외 시장 진출에도 조심스런 행보를 이어갔다.
▲K옥션의 홍콩 단독경매 현장. 사진 = K옥션
“홍콩 진출을 할 때도 무작정 지르지 않았어요. 회사 설립 당시부터 국내시장 갖고는 수익 확대가 어렵다고 판단했고, 2008년부터 현지 여러 경매사와 연합으로 진출하며 현지 시장을 배웠습니다. 예측이 힘든 해외시장에 단독으로 진출하는 데는 위험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운이 따른 것일까. 올 3월 K옥션의 첫 단독 홍콩경매는 세계적인 ‘아트 바젤 홍콩’ 기간에 맞춰 개최됐고, 한국 단색화에 대한 반응이 더해져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그간 K옥션은 자선경매, 온라인 경매, 빈티지 시계 경매 등 종목을 다양화했고, 그만큼 미술품 경매 시장을 확산시켰다는 평가를 받을만하다. 이 대표는 이런 추세를 이어가면서 꼭 다루고 싶은 종목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바로 문화재급 유물의 경매 활성화다.
현재는 문화재보호법이 경매의 걸림돌이라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문화재 보호법이 과연 문화재를 보호할까요”라고 묻는다. 미국이나 영국은 이런 보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화재보호법이 만들어진 시기는 경제개발이 안 된 후진국 상태에서입니다. 이제는 변해야 합니다. 국보급 유물도 거래가 가능하도록 하되 중요문화재는 해외로 유출되지 않는 제도를 만들면, 해외 고객들의 시장 유입이 더욱 커질 것이고 이를 통해 국내 미술시장도 함께 커질 수 있습니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어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 작품 판매 코너가 사라졌습니다. 가짜 작품이 거래되는 일일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죠. 이러면 시장이 사라지고 고객도 사라지게 됩니다. 규제 위주의 문화재보호법을 반드시 손봐야 합니다”고 역설했다.
국내 양대 경매사 중 하나로 설립 10년을 맞은 K옥션은 올해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아도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의도다. 작가들이 작품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시장논리에 의해 순환구조가 제대로 정착되는 한 해를 만들려 한다.
‘연합전략’으로 홍콩에 성공적 진출
한국 사회에는 ‘미술품 시장은 비자금 통로’라는 오명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 이 대표가 강조하는 시장논리가 정착한 미술시장이 되려면 두 가지가 이뤄져야 한다. 그림을 사들이는 컬렉터나 구매자를 뒤에서 비난할 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격려해줘야 하며, 그와 함께 미술품 시장이 투명해져야 한다. 이 대표를 필두로 한 K옥션의 활약이 기대되는 분야다.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