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시리즈 ⑪ 티팟] “예쁜 치장보다 중요한건 치장 통한 소통”
▲계룡시 금암공원 공원예술로 프로젝트 ‘차이를 위한 산책’. 예술공원으로 변신한 금암공원을 산책하면 작가와 시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사진=티팟)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안창현 기자) 흔히 사회적기업 하면 취약계층이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일자리나 직업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복지 중심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을 떠올린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회적기업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기업의 이미지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공공문화기업 티팟은 독특하다. 티팟은 그동안 어린 아이들을 위한 디자인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가 하면, 도심 속 공원을 예술작품으로 꾸미거나 지역 마을의 간판을 싹 교체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서울 시민청’을 새롭게 기획한 것도 이 단체의 역할이 컸다. 티팟은 이렇듯 다양한 공공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문화예술 사회적기업이다.
‘티팟(TPOT)’이란 이름은 여러 사람이 차를 우려내 함께 마시는 것처럼, 문화를 우려내 우리 사회에 새로운 향기를 내자는 의미로 지어졌다. 그래서 애초에 티팟은 시민문화네트워크의 형태로 뜻을 같이 하는 시민사회의 여러 사람들이 의기투합해 2004년 설립됐다.
현재 티팟의 대표를 맡고 있는 조주연 대표 역시 티팟이 설립된 초기부터 함께 했다. “기존에 활동했던 문화단체들은 정부나 지자체의 공공정책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지만, 실질적인 대안활동을 실효성 있게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티팟은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만들어졌다”고 조 대표는 말했다.
말하자면 공공적인 성격을 가지면서 실질적으로 문화사업을 하는 기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티팟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당시 대다수 문화단체들의 기부금을 받거나 공공기금에 의존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출발이었다.
조 대표는 “당시만 해도 사회적기업이라는 개념이 분명하지 않았던 때였다. 문화예술단체로서 티팟이 명시적으로 사회적기업을 표방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모델의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디자인 업체를 운영하던 조 대표는 초기에 티팟의 네트워크 중 한 단체로 참가하면서 디자인 교육 분야를 맡다가 2006년 티팟의 대표가 됐다.
▲진안군 백운면 간판디자인 프로젝트. 가게를 하게 된 동기와 꿈을 듣고 디자인을 제안했지만 할머니의 마음에 들지는 못했다. 그 디자인에 주인 할머니의 생각-수세미 넝쿨을 올리는 것-을 덧붙여 만들어진 간판이다. (사진=티팟)
처음에 티팟은 주로 문화예술 분야의 연구 활동에 중점을 뒀다. 2004~2005년 당시 참여정부의 기조에 따라 문화연대 등에서 문화예술 교육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티팟 역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설립에 참여하고, 초기 정책연구와 시험사업을 주도적으로 해나갔다.
하지만 조 대표는 티팟의 활동이 좀 더 실질적인 문화활동으로 이어지길 바랐다. 그는 “2006년부터 직접 운영에 개입하다 보니 티팟의 기존 연구성과를 실질적으로 현실에 도입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티팟이 문화 사업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쪽에 강조점을 두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한 “기존에 문화 기획은 장르별로 다 나뉘어서 이뤄졌다. 다양한 단체가 미술이나 영화, 디자인 등 자신의 전문영역을 가지고 그 영역에서 제한된 활동들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통합적인 문화 기획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어 티팟은 문화예술 교육이나 연구사업과 함께 지역재생 프로젝트들을 하나씩 진행하기 시작했다.
주민참여 유도하는 기획력에서 강점
최 대표는 구체적으로 지역재생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 “지역재생을 그동안 연구해왔던 디자인, 특히 공공디자인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역을 활성화시키는 작업에 디자인이라는 툴을 가져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티팟은 처음부터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맡을 수는 없었지만, 다양한 지역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그들만의 노하우를 쌓아나갔다. 당시 ‘마을개발’, ‘지역재생’이란 이름으로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이 진행됐는데, 그중 티팟이 맡아 주목받은 대표적 사례가 2007년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의 마을 프로젝트였다.
이 마을 프로젝트는 백운면의 상점 간판들을 주변 환경과 어울리면서 지역정체성도 살릴 수 있도록 교체하는 사업으로, 2000만 원 정도 예산이 소요되는 비교적 작은 규모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기획이 가능했다.
최 대표는 “백운면 프로젝트에서 단지 상점의 간판을 예쁜 것으로 교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지역재생 프로젝트들의 경험을 통해서 지역에 문화예술을 넣는 게 중요하지 않고 실제로 그 지역의 문화를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티팟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들의 실제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프로젝트를 통해 무언가를 꾸미고 예쁘게 만드는 것보다 그 지역의 지속가능한 자원을 찾고, 그 자원을 통해 지역의 소통 활성화를 바랐기 때문이다.
“지역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마을조사단’까지 꾸렸다. 쉽지 않지만 주민들과 소통하고 협의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주민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하고 주민들이 그 지역 프로젝트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역재생의 본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백운면 프로젝트는 그 지역의 개성이 살아 숨쉬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그간 진행됐던 많은 공공미술 프로젝트 중에서도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이는 자발적인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그들의 사연과 이야기, 요구사항들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울 시민청에 설치된 귀 모양의 조형물. (사진=티팟)
티팟은 이외에도 지역의 여성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다문화강사 양성 교육프로그램, 시천군 김 공동브랜드 개발사업, 안양 도시문화디자인 리서치, 디자인 철원 프로젝트 등 현장에서 실질적인 활동을 통해 공공문화 프로젝트의 모델을 만들어갔다.
시민에 열린 ‘서울 시민청’을 기획
이렇게 잘 나가던 티팟은 노동부에서 정식으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2008년 이후 오히려 급격하게 회사 경영이 어려워졌다. 최 대표는 “정부의 일자리지원 사업 등으로 직원 수가 40~50명으로까지 급격하게 늘어나게 됐다. 당시에 사업이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의 규모가 늘어난 만큼 그 규모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꾸준히 플러스를 유지하던 매출이 마이너스로, 그것도 큰 폭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2009년에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거의 폐업 위기까지 갔다. 다행히 티팟의 가치를 알아본 조 대표의 지인이 운영하는 문화기획 대행사에 자회사로 편입시키면서 회사 문을 닫는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조 대표는 “당시 많은 수의 사회적기업이 이런 이유로 망했고, 티팟도 그런 위기가 있었다”며 “사회적 가치를 위해 활동하는 것 못지않게 지속가능한 경제적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히 티팟은 시련의 시기를 거친 이후 2012년 다시 독립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티팟은 지난해 서울시 시민청 사업, 삼성전자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창의교육 솔루션 개발 사업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활발히 진행했다.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맡게 된 시민청 디자인 프로젝트는 티팟의 가치를 적극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동안 티팟이 진행한 프로젝트가 주로 농촌이나 어촌과 같이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다고 여겨지는 지역을 활성화하는 일이었다”는 최 대표는 “비교적 작은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주민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도시에서도 이런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지금의 시민청 공간이 애초 ‘시티 갤러리’라는 이름의 박물관으로 기획되었다고 했다. 티팟은 도심 한복판의 박물관은 시민들의 활용성이 크게 떨어질 것이란 생각에서 이 공간을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이용하는 공간으로 다시 기획하고자 했다.
원래 있는 공간에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말하자면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덧입히는 작업이었다. 그 과정에서 물론 티팟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실제 공간을 사용할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일은 중요했다. 그리고 최대한 이 공간을 개방적으로 만드는 데 초점을 뒀다.
그래서 티팟은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결혼식장, 콘서트장, 자유발언대, 나눔의 장 등으로 시민의 공간을 꾸미고, 앞으로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간에 여백을 많이 남겨뒀다고 했다. 시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의미에서 시민청과 시청 사무공간을 잇는 장소에 귀 모양의 조형물도 설치했다.
티팟의 서울시민청 작업은 경기도청과 광주시청 등으로 계속 이어져 향후 활동에 대한 기대감 역시 높아지고 있다.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