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의 세계 뮤지엄 ⑤ 베이징 2]미술관 역할도 하는 中 작가의 대형 작업실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베이징 아트투어를 다녀왔다. 예술 애호가라면 아트바젤홍콩을 비롯한 유수의 아트페어와 다양한 전시회를 통해 이미 중국 현대미술을 접한 바 있겠지만, 베이징을 방문하는 것은 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바로 베이징이 중국 현대미술의 진원지이기 때문이다.
홍콩, 타이페이, 상하이 등 예술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중화권의 다른 도시가 소비 시장의 성격인 데 반해, 베이징은 예술가와 큐레이터 평론가들이 모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생산지 역할을 하고 있다. 고향을 떠나 베이징에 작업실을 두고 있는 작가들의 한결 같은 대답도 바로 그러했다. 베이징은 이제 국제도시가 됐고, 이곳에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에너지는 다른 곳과는 대체할 수 없다고 한다.
파워 컬렉터의 미술관
중국의 뮤지엄을 이끌고 있는 세력은 아직까지는 유명 컬렉터다. 지난 번 칼럼 베이징 1편(4월 27일자)에서도 소개했지만, 벨기에의 컬렉터가 만든 UCCA 미술관이 대표적으로, 베이징에서 현대미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미술관 역할을 해 왔다.
이번에 방문한 레드 브릭 미술관, 중국식 발음으로는 홍좐 미술관 역시 오랫동안 미술품을 모아온 얀 쉬제(Yan Shijie)와 카오 메이(Cao Mei) 부부 컬렉터가 만든 곳이다. 2014년 5월 개관한 신생 미술관으로, 올라푸 엘리아슨의 설치 작품을 비롯해 국내외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등 베이징 국제화에 기여하고 있다. 전시뿐 아니라 미술관 뒤편의 연못 있는 정원은 중국식 정원의 아름다움과 거대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쉬 지앙구오의 작업실 모습. 사진 = 김영애
중국뿐 아니라 개인 사설 뮤지엄이 늘어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개인 예술가에게 헌정된 미술관은 드문 편이다. 폴리 옥션에서 한 작품이 500억 원 넘는 가격에 팔리면서 유명세를 더하고 있는 중국 현대미술의 기수 리커란(Li Keran, 1907∼1989) 정도가 고향 살던 집을 미술관 형식으로 바꾸어 놓은 정도다.
해외의 경우, 바젤의 쟝 탱글리 미술관, 파리의 로댕 미술관, 우리나라에도 최근 부산시립미술관에 이우환 전시공간이 생긴 것 등에 비하면 아직 중국의 미술관은 성장 초입에 있기 때문인 듯하다.
예술가의 작업실
예술가에게 헌정된 미술관은 왜 아직 없을까 궁금해 하던 차에, 여러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하며 그 대답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작가들 대부분이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로, 아직까지는 개인의 미술관을 차릴만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도 없었고 중국의 체제도 받쳐주지 못했다.
사실 중국은 뮤지엄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버젓한 중국의 대가들도 아직 개인 미술관이 없는데 젊은 그들이 유명하다는 이유 하나로 미술관을 만들겠다며 나서기에는 모양새도 민망하다. 반면 대부분의 작가들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작업실을 갖추어 놓았기에 굳이 미술관을 차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듯하다.
유명 미술관에 가면 작가의 생전 작업실 모양을 재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반대로 중국 미술가들의 작업실은 생생한 제작의 현장이자 작가의 작품 세계를 소개할 수 있는 살아있는 미술관 역할을 하고 있다.
쉬 지앙구오
현재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조각가 쉬 지앙구오(Sui Jianguo, 59)의 작업실은 작가의 명성에 비해 조금 규모가 작다 싶었는데, 곧 개인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작품을 옮겨놓는 중이라고 했다. 쉬 지앙구오는 중앙미술학원의 교수로 페이스 갤러리의 전속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UCCA 미술관 앞에 놓여 있는 공룡 조각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중국 현대미술이 국제화되는 시기를 맞아 일찌감치 스타의 길을 걸은 왕 광이, 장 샤오강, 우에 민준 등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비교적 늦게 알려지기는 했지만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앞에 그의 작품 ‘핑크 공룡’이 설치돼 있으니 어떤 작가인지 이름은 몰랐어도 아마 이미지는 익숙할 것이다.
공룡뿐 아니라 대형 인민복 조각, 눈을 감고 손으로 주물러 놓은 조각 등 다양한 스타일을 넘나들다 보니 얼핏 보면 모두 다른 작가의 작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죽은 동물, 나비, 닷(dot) 페인팅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면서도 죽음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끌어가듯 쉬 지앙구오의 작품에도 급변하는 혁명기를 목도한 작가의 역사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UCCA 미술관 앞에 설치된 쉬 지앙구오의 공룡 작품. 사진 = 김영애
그의 작업실에서 2012년 대영박물관 개인전에서 소개한 ‘원반 던지는 사람’ 시리즈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승리한 운동선수는 개인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한 인간의 승리가 아니라, 신이 그에게 우승을 허락한 행운아, 즉 선택된 사람이라고 여겨졌다. 바로 그 선택된 승리자의 모습에 중국식 노동자 인민복을 입혀 놓은 그의 작품은 중국 체제에 대한 비판과 향수를 모두 아련하게 남기고 있는 것 같다.
세계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미래의 행운이 깃든 나라 중국.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미술관이 생겨나고 있는 베이징. 몇 년 뒤 베이징을 다시 방문한다면 한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오롯이 조명하는 다양한 미술관을 많이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정리 = 왕진오 기자)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