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순 건강 칼럼] 밀폐공간인데도 여객기에서 메르스 대량전파 잘 안되는 이유는?
환기시스템 아무리 좋아도 적극적 대처는 필수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한복순 강북삼성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중동에서 날아온 달갑지 않은 손님,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가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다.
수많은 자택격리 대상자들이 일상생활을 접고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가 하면, 늘어나는 감염자로 걱정과 불안감이 커졌다. 급기야 휴교하는 학교는 늘고, 사람들은 외출을 자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병원 주차장마저 한산해졌다.
한국은 이미 세계보건기구로부터 사스(SARS)를 슬기롭게 물리친 ‘사스 예방 모범국’이라는 타이틀을 받았다. 신종 인플루엔자마저 초기에 잘 수습했다는 자긍심도 가지고 있다.
거기다 에볼라나 메르스 같은 공중보건학적 위기 상황이 닥칠 때를 대비해 대응 방안도 마련하고 전문가들이 함께 논의하는 자리도 가진 바 있다. 그랬던 터라, 사람 간 전파 가능성도 낮고 지역적으로도 멀리 떨어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메르스에 대해 처음에는 그다지 걱정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중동을 다녀온 한 남성으로부터 시작된 메르스는 초반 미흡한 정보공개로 신속한 대응이 늦어지면서 메르스 유행으로 번졌다. 지금 한국은 메르스 발생 2위 국가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2003년 유행한 사스는 항공기 승객을 통해 여러 나라로 전파됐다. 그 당시 사스는 신종 전염병으로 많은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다. 세계보건기구는 감염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대응 방안을 권고했다. 방역당국의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 조치와 항공사의 자체 감염예방 노력으로 한국은 위기상황을 무사히 극복할 수 있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 수가 늘어난 가운데 항공기 내부에 대한 소독 및 방역 작업이 한창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스 유행 당시, 필자는 국가 간 정보공유와 대책 논의를 위한 방콕의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그 많던 승객들은 모두 어디로 숨었는지, 방콕의 국제공항은 정적만 감돌아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이번 사태에서 최초 메르스 환자가 입원한 병원의 환기 시스템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항공기에는 이런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매우 훌륭한 환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기내 공기는 외부 공기와 기내 공기 일부를 재순환해 사용한다. 외부에서 유입된 공기는 뜨거운 엔진 열기로 인해 바이러스가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되고, 재사용하는 내부 공기는 바이러스를 99% 이상 걸러주는 ‘헤파(HEPA)’ 필터를 통과하게 된다.
또한 기내 공기는 천장에서 바닥으로 흘러 공기가 앞뒤로 섞이는 것을 막아준다. 설사 항공기 안에서 환자가 바이러스를 배출하더라도 주위 승객에게 최소한의 영향을 주는 시스템인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1분에 15~20회 환기를 하기 때문에 이보다 더 완벽한 환기 시스템은 찾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이상적인 환기 시스템을 갖춘 최신 항공기에서 사스 말고도 결핵이나 인플루엔자, 홍역이 전파된 사례가 있었다.
서울을 출발, 미국에 도착해 여행 중 사망한 한 여성의 사인이 결핵으로 밝혀지자, 당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그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과 승무원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그래서 기내 감염전파 사례가 있음을 확인하고 바로 대응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와 같이 항공기를 통한 감염병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환기 시스템을 갖추는 것 이외에도 기내에 감염병 의심 승객이 발생했을 때 보건당국이나 항공사들은 발 빠르게 가이드라인에 따라 필요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메르스 의심 승객이 홍콩행 항공기에 탑승한 이후 승무원 6명과 주변 승객 28명에 대해 취해진 조치도 가이드라인에 근거한 것이었다.
메르스 같은 감염병 막기 위해선
정부, 의료진, 국민 삼위일체 협력해야
향후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신종 감염병이 출현할 수 있다. 감염병 유행을 막으려면 한 사람의 노력으로는 역부족이다. 정부, 의료진, 국민 모두 삼위일체가 돼야 한다.
그 동안 병원 감염으로부터 환자를 지키기 위해 병원과 의료진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와 같이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나 주변 사람들의 협조가 없으면 안전장치들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
감염병이 의심되는 경우, 당국의 방침에 따라야 하고 공공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항공기나 대중교통 이용은 자제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교훈으로 삼아 더 이상 시행착오는 없어야 할 것이다.
(정리 = 안창현 기자)
한복순 강북삼성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