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사람들 ㉕ 동작서 수사지원팀 정광영 경사]“손금 봐주다 보니 어느덧 친절 경찰”
▲동작경찰서 수사과 수사지원팀에 근무하는 정광영 경사. 손금을 연구하는 파일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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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안창현 기자) 동작경찰서 수사지원팀에 근무하는 정광영 경사(47)는 손금 보는 경찰관으로 유명하다. 그는 경찰서에서 점심시간이나 일과 이후 자신을 찾아오는 동료나 의경들의 손금이나 타로, 사주를 보며 상담을 해준다. 재밌는 취미의 소일거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 경사는 손금을 그보다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의 꿈은 경찰청 과학수사과에서 범죄자들의 손금을 유형별로 연구해 보는 것이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지문처럼 손금도 실제 수사 과정에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손금을 이용한 과학수사라는 자신의 원대한 꿈이 꼭 실현되지 않는다 해도 주변 사람들을 상담해주면서 도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좋다고 멋쩍게 웃는 그를 만나봤다.
장광영 경사는 동작경찰서 수사지원팀에서 근무한다. 2003년부터 여기서 일했으니까, 한 부서에서 꽤 오랫동안 일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자신이 일하는 수사지원팀을 ‘수사과의 다양한 행정 업무를 보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튀지 않은 외모에 다른 경찰관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 그가 경찰서에서 유명세를 얻은 것은 손금을 잘 본다는 소문 덕분이었다. 장 경사는 “2010년 즈음부터 손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한 6~7년 정도 공부한 셈”이란다.
하지만, 손금만이 아니었다. 손금 이후에 타로와 사주도 배우게 됐다. “타로는 한 4년 정도 됐고, 사주는 2년째 배우고 있다. 손금을 공부하다 보니, 손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타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또 타로를 공부하면서 사주를 공부할 필요를 느꼈다.”
한 번 배우려고 마음먹으면 제대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는 손금이나 타로, 사주를 단지 취미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랬다면 이렇게 시간과 돈을 써가며 열심히 공부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직 국내에 적극적으로 도입되진 않았지만, 외국에서는 지문뿐 아니라 손금이 수사기법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손바닥에는 사람마다 고유한 특징이 겹겹이 새겨져 있다. 손금 모양과 그 사이로 퍼져 나간 미세한 주름의 방향, 주름 사이 거리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범죄 현장에서 지문뿐 아니라 손금이 발견될 경우 범인을 검거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실제로 경찰청에서 과거 손바닥 무늬인 장문을 수사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밝힌 바도 있다. 장문은 닿는 면적이 지문보다 넓어서 쉽게 포착되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단지 그동안 국내에서 자주 활용되지 않았고, 장문 채취 기술도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문제였다.
“손금이라면 미신이나 철학원을 먼저 떠올리지만, 해외에서는 이런 손금이 유죄를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강력범을 체포하면 손바닥과 손 측면 등 장문을 기록하기도 한다.”
손바닥 무늬인 장문이 지문처럼 재판에 정식 증거로 채택된 사례는 드물지만 수사 현장에서 피의자를 압박하는 간접 증거로 종종 쓰인다고 그는 설명했다. 실제로 예전에 국내 편의점에서 강도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장문이 범인을 검거하는 데 도움을 준 적이 있다.
편의점 CCTV에 범인 얼굴이 찍혔지만 화면이 흐릿해 수사가 난항에 빠졌다. 그런데 편의점 문에 찍힌 범인의 장문이 포착돼 용의자로 체포된 범인의 자백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지문이나 손금을 수사기법으로 활용하는 사례들이 있는 만큼, 과학수사의 한 방법으로 장문을 연구하고 싶다는 바람에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정 경사는 경찰서 내 동료들에게 타로 점을 봐주기도 한다. 사진 = 서울동작경찰서
물론 정 경사가 처음부터 과학수사를 위해 손금이나 타로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는 불확실한 미래가 궁금해 손금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사실은 무척 내성적인 성격이다. 가족들에게도 낯을 가릴 정도였으니까. 경찰 생활을 하면서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힘든 부분이 있었다.”
과학수사로 손금 연구하는 꿈도 꿔
당시로서는 앞으로 경찰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고 했다. 마땅히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는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손금이나 사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의 미래를 알았을까? 정 경사는 웃었다. “손금은 공부할수록 심오한 세계다. 지금도 계속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손금이나 사주를 공부하면서 의도치 않게 다른 쪽으로 효과를 봤다. 식구들도 그렇고 동료들도 내게 입이 트였다고 한다.”
정 경사는 다른 사람들의 손금을 봐주면서 내성적인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다른 사람들의 삶과 운명에 대해 말해주면서 말을 많이 하게 되고, 성격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바뀐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쪽으로 사태가 발전한 결과다.
그는 “지금은 경찰을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손금 공부를 통해서 경찰 업무를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도 됐다”고 말했다.
요즘은 방법순찰대 의경들에게 손금을 봐주며 따듯한 말을 건네는 것이 주된 업무 중 하나다. “이들에게 전역 후 진로나 애정운 등 상담해주는 게 좋다. 이들은 여기서 군대생활을 하는 것이니 얼마나 힘들겠나. 내게 손금이나 타로, 사주가 큰 위로가 됐듯이 이들에게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으로 손금을 봐준다.”
그는 바뀌지 않는 운명은 없다고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기회가 올 때 더 열심히 노력하는 삶이 가장 좋은 운명임을 배웠다고 했다. “의경들에게도 너무 조급해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면 좋은 행운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