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원 칼럼 - 중국에서 벤처창업 ①]“정말 필요해?” 중국인 입장서 생각하라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신동원 네오위즈 차이나 지사장) MBA 수업 시간에 가장 많이 나오는 두 단어가 있다. 하나는 ‘고객’ 이고 다른 하나는 ‘가치’ 이다. 고객 가치, 비즈니스의 처음이자 끝이다. 창업 또한 그래서 고객 가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객의 관점에서
창업자들이 브레인 스토밍을 하고 많은 고민을 하면서 자칫 실수하기 쉬운 게 있다. 바로 자신의 입장에서, 공급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점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나 제품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남들도 이 제품을 꼭 필요로 할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치가 있을 거라고 여겨지는 제품도 남들이 보기에는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어떤 아이디어가 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바로 시장 조사이다. 내가 생각하는 고객이 정말 있는지, 있다면 시장이 얼마나 큰지, 현재 유사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있는지 등 조사할 것이 참 많다. 막연하게 내 아이디어가 기똥찬 발명품이라도 되는 양 고무되어,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을 조사할 생각조차 못할 수도 있다.
새로운 고객 가치의 창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다. 삼성도 카피이고 샤오미도 카피라고 한다. 애플만이 창조인 것 같지만 실은 애플의 기술도 이미 나와 있던 터치 기술에 디자인을 씌운 조립품이었다. 창업자는 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새롭게 창출될 수 있는 고객 가치는 몇 가지 경우로 나눌 수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현재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 고객이 불편해 하는 pain point로부터 찾을 수 있다. 고객들이 현실 세계에서 불편해 하는 지점을 발견했다면 이는 명백히 비즈니스 기회이고,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바로 창업의 과정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고객 가치의 창출이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라는 세이의 법칙이 있다. 경제학에서 쓰던 용어지만, 현실 세상에는 이렇게 기존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가치가 나와 모든 사람들이 편리하게 사용하는 상품으로 포지셔닝되기도 한다. 애플의 제품들이 처음엔 그러했고, 애플의 불편한 점을 보완하는 삼성이 새로운 혁신으로 그 자리를 대체했고, 가격 경쟁력을 가진 샤오미 제품이 또 다시 삼성의 자리를 빼앗았다.
현대 자본주의 상품 사회는 혁신의 연속이고 새로운 고객 가치의 전쟁이다.
향기를 판 스타벅스, 와플을 판 만커피
스타벅스는 커피를 파는 게 아니라 향기를 판다는 광고 카피가 유행했었다. 고객 가치는 ‘핵심 가치’와 ‘서브 가치’로 나뉜다. 갈수록 서브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다. 즉, 스타벅스는 분명히 커피 가게이고 커피 맛이 핵심가치이지만, 사람들이 굳이 스타벅스를 고집했던 시절에는 커피라는 상품 속성 이외에, 스타벅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서브 가치들이 있었다. 세련된 분위기, 오래 머물 수 있는 자리, 공짜 와이파이 등. 사람들은 실제로 커피보다는 이러한 서브 가치 때문에 스타벅스에 중독되었던 것이다.
▲한국산 화장품 샘플을 보내주는 벤처를 미국에서 창업해 큰 히트를 친 미미박스의 홈페이지.
하지만 영원한 1등은 없는 법. 스타벅스를 이기기 위해 더 좋은 탁자와 숲 같은 분위기와 와플로 무장한 커피숍이 등장했다. 만커피. 스타벅스처럼 큰 자본으로 프랜차이징을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한인 타운에서는 그 가치를 입증하고도 남았다. 유사한 가치를 가지고 2선, 3선 도시까지 진출한 카페베네의 프랜차이징 전략도 있었다.
우리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려할 때, 이처럼 남들과 차별화가 어려운 핵심 가치보다는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서브 가치의 발굴이 중요하다. 이미 확실히 선점을 한 경쟁자를 이길 수 있는 무기는 이런 서브 가치로부터 나온다.
쉬워야 한다
새로운 고객 가치는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워야 한다. 설명이 필요 없이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면 최고다. 생각이 많은 창업자는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설명하기 위해 진땀을 뺀다. 너무 많은 기능과 가치를 다루다보니 스스로도 요약하기 어려운 복잡한 물건이 돼버리고 만다. 듣는 사람은 하품을 하게 되고, 실제 고객들이 원하는 가치일지 아리송하게 된다.
대박을 친 제품이나 서비스들은 의외로 간단하고 쉬웠다. 미미박스(memebox)라는 벤처가 있다. 창업의 메카 미국에서 글로벌 창업을 해서 제리 양 등 유명 미국 투자가들로부터 350억 원 투자를 유치해 한국의 벤처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업체다. 아이디어는 의외로 간단했다. K스타일을 내세워서 고객들에게 화장품 샘플 패키지를 저렴하게 제공해준다는 콘셉트였다.
신문과 잡지를 받아보는 것처럼, 한 달에 1만 6천 원에서 3만 5천 원 정도를 결제하면 매달 신상 화장품 제품을 정기적으로 보내준다. 더 경이로운 것은 화장품 공급은 제휴 기업에서 무료로 제공 받고, 그 대가로 제휴 회사의 제품들을 홍보해 준다는 점이다. 고객을 확보하고 있기에 가능한 봉이 김선달 식 장사다. 우리는 이것을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카카오톡도 그냥 메신저였고 복잡하지 않았기에 유저들이 쓰기 시작했다. ‘배달의 민족’도 전화보다 간편했기 때문에 주문을 시작했고, 이런 앱 서비스들의 실제 가치는 사실 개별 오프라인 기업으로부터 나왔다. 배달의 민족 앱은 음식점들의 수익을 플랫폼이 소개비로 거둬가는 모델이다. 0
요즘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이 유행이다. 기존 온라인 업체는 수익의 한계를 느끼고 오프라인으로, 전통 산업들도 유통 채널이 모바일로 바뀌고 있음을 감지하고 온라인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온오프의 결합은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가치와 시너지를 창출하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상품이나 콘텐츠가 유리
많은 사람들이 플랫폼을 생각한다. 플랫폼이 최후의 승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랫폼이 벤처 아이템이라면 길고도 지리한 자본 싸움을 각오해야 한다. 중국 시장에서는 적자를 감수하고 적을 전멸시키는 돈의 전쟁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으로서 중국 창업을 생각한다면 상품이나 콘텐츠를 고려하는 것이 좀 더 확률이 높아 보인다. 상품이나 콘텐츠가 잘 팔려서 고객이 충분히 확보된다면 자연스럽게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다. 처음부터 자칫 소모적인 플랫폼 싸움에 뛰어들었다가는 총알(자본)이 부족해 전사하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신동원 네오위즈 차이나 지사장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