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디자인 - 눈먼고래] 제주돌집이 두 마리 고래로 환생
▲제주 조천 바다에 접해 있는 ‘눈먼고래’의 해질녘 풍경. 사진 =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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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안창현 기자) 제주도 내에서도 사람 발길이 많지 않은 조천. 오랜 역사를 지닌 이곳에 100여 년의 시간을 버텨온 제주 전통 돌집이 ‘눈먼고래(Blind Whale)’로 새 단장했다. 조천 바다에 면해 있는 두 채의 돌집이, 마치 바다에서 표류한 두 마리 고래가 뭍으로 올라온 느낌이라 눈먼고래란 이름이 붙었다.
눈먼고래는 조용한 조천의 마을 분위기와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모습이다. 고래를 닮은 제주 돌집에 제주 전통의 가치와 돌집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눈먼고래의 공간 디자인을 담당한 크리에이터 그룹 지랩(Z_lab)은 제주 전통 돌집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고자 노력했다.
지랩은 “제주도에서 여러 돌집을 봤지만 이렇게 바다와 바로 접해 있는 돌집은 처음이라 놀랐다. 바다도 바다지만 병풍처럼 오름과 한라산의 조망이 돌집 주변을 감싸고 있어 이곳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눈먼고래 중 한 채인 숲고래의 내부 인테리어 모습. 사진 = 김재경
▲해질녘 바다를 배경으로 한 운치 있는 눈먼고래. 사진 = 김재경
최대한 제주 돌집의 원형은 지키고자 했고, 낮은 층고와 울퉁불퉁하지만 자연스런 돌벽도 그대로 살렸다. 주변 마을과 바다 경관을 위해 창을 냈고, 대문이나 마루 등의 옛 건자재는 테이블과 침대 등 가구로 재탄생시켰다. 눈먼고래는 이런 노력들을 통해 제주 전통 돌집이 주는 매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눈먼고래가 위치한 조천은 제주도에서 ‘육지로 나가는 사람이 순한 바람을 기다리는 곳’으로 통했다. 800년 전부터 서서히 마을이 형성돼 육지와 가까운 포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과거 제주도에 유배 온 사람들이 임금과 가족이 있는 북쪽을 그리워하며 육지와 가까운 조천에 모였다고도 한다. 북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연북정’이란 정자도 지었다. 지금도 연북정은 잘 보존돼 남아 있고, 눈먼고래에서도 바로 보일 만큼 지척 거리에 위치해 있다.
▲내부 공간으로 돌담을 들여와 바다고래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진 = 김재경
오랜 역사를 지닌 이곳 조천에는 그만큼 오래된 제주 돌집이 있다. 지금은 ‘눈먼고래’라고 불리는 이 돌집은 과거 제주 돌집의 원형을 그대로 살려 제주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성 공간으로 탈바꿈됐다. 눈먼고래를 설계한 지랩은 “시간의 흔적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이를 현대적으로 살려내는 것이 목표였다”고 소개했다.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 우영팟(텃밭)과 통시(화장실) 등 제주 전통 돌집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조천이란 지역이 지닌 장소적 특성도 드러내고자 노력했다.
▲해안 산책로에서 바라본 눈먼고래. 사진 = 김재경
▲벽을 걷어내 내부 공간의 쓰임새를 확장했다. 사진 = 김재경
“기획 초기부터 제주의 오름을 닮아 있는 둥그스름한 지붕의 형태와 오랜 세월을 버텨온 돌집의 원형은 최대한 지키고 주변 마을과 바다의 경관을 최대한 끌어들여 제주다운 감성을 담아내는 데 온전히 집중했다.”
자연 속에 녹아든 야외 욕조까지
돌집 지붕의 둥근 모양을 그대로 살려내는 것이 중요했다. 눈먼고래라는 이름도 둥그스름한 지붕 모양이 마치 고래의 등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지랩은 이 집의 첫 인상이 고래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듯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는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그물 지붕이라는 것을 사용한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이라 초 대신 새라고 하는 억새나 대나무 등을 엮어 지붕을 올리고, 비가 스미지 않도록 검은색 천을 씌우는데 그 모습이 흡사 고래 등 같은 인상을 줬다.”
▲눈먼고래에는 ‘바다고래’와 ‘숲고래’ 두 채의 집이 있다. 사진 = 김재경
지랩은 알루미늄 징크로 소재를 삼아 전통 그물을 재현했고, 돌집 지붕의 자연스런 곡면을 재연해서 고래등 모양의 지붕을 형태적으로 복원했다. 지붕 아래 현무암으로 쌓인 벽은 그대로 유지한 채 내부에서 바다와 마을을 내다볼 수 있게 창을 만들었다.
그렇게 눈먼고래는 둥근 지붕과 실내 돌담, 바다를 향해 열린 마당과 대나무 숲, 노천 욕조 등이 어우러져 기존에 볼 수 없던 독특한 느낌을 자아냈다. 실제로 둥근 지붕과 현무암 벽, 내부의 옛 건자재 등 100여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눈먼고래는 조천 주민들에게도 인기였다.
눈먼고래에는 두 채의 집이 있다. ‘바다고래’와 ‘숲고래’로 불린다. 바다고래와 숲고래 모두 집 가운데 마루가 있는 거실과 양쪽 방으로 이뤄져 있다. 내부에 방을 나누는 벽은 모두 거둬냈다. 지랩은 “벽을 철거하고 나니 시간의 켜가 그대로 살아있는 서까래와 기둥, 보가 드러났다. 최대한 원형 그대로 지켜내고자 했고, 썩은 나무는 제주 삼나무로 교체해 이질감이 없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 노력”
벽 철거해 나온 옛자재는 실내 가구에 재활용
벽을 철거한 대신 낮은 돌담을 기존 벽이 있던 자리에 쌓아서 그 경계는 유지했다. 방은 침실, 소파, 테이블, 식당 공간으로 재탄생했고, 경계를 지어준 돌담은 창을 통해 보이는 외부 돌담과 연결되면서 내부와 외부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했다.
바다고래 집 밖으로 욕조가 하나 놓여 있다. 원래 이 장소에는 화장실을 겸한 돼지우리가 있었다. 이제 소프트 욕조가 배치돼 바다가 보이는 전망대인 동시에 힐링을 위한 장소로 바뀌었다.
숲고래는 특히 길고 좁은 공간이 주는 비례미가 좋다. 벽을 터서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되 기존에도 분리돼 있던 욕실 공간은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공간을 구분했다. 유일하게 변화를 준 것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 창을 내고 소프트 욕조를 배치한 것이다.
▲해질녘 자연스런 조명이 인상적인 눈먼고래 전경. 사진 = 김재경
집을 철거하며 나온 대문과 마룻바닥은 세월이 만든 시간의 켜가 그대로 묻어나도록 살려 눈먼고래의 테이블과 침대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거친 현무암과 옛자재가 드러난 내부에 따스한 감성을 불어넣었다.
단순히 옛자재의 재활용에 그치지 않고 지난 세월의 가치를 의미 있게 드러내기 위한 노력이었다. 결과적으로 눈먼고래는 조천이란 지역과 자연 환경에 잘 녹아들었다. 지역적 특색과 오랜 세월의 흔적을 존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