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연수 기자) 이 시리즈에서 앞서 소개한 공간 중 하나인 ‘아카이브 봄’의 운영진인 석대범은 예술가들이 모이는 공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대안 공간’, ‘복합 문화 공간’, 최근에는 ‘신생 공간’이라는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왔다고 지적했다.
합정역과 상수역 사이, 이제는 각종 ‘핫’한 음식점과 술집으로 메워져버린 거리에 ‘요기가 표현 갤러리’가 있다. 이곳은 이름 없는 작가들의 데뷔를 책임지고,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여는 곳이다. 다양한 새 시도를 해왔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그 모든 명칭들에 걸맞은 공간이다. 2004년도에 처음 문을 열고 10년이 훌쩍 넘은 세월 동안 홍대 앞의 변화와 함께 했던 이 공간이 올해 3월 그 끝맺음을 예정해 두고 있다.
요기가 표현 갤러리(이하 요기가) 대표 이한주는 “그런 명칭들은 누군가가 글에서나 어디선가에서 만들어낸 것뿐 아니냐”며 웃어넘겼다. 12년 전 설립 당시 요기가의 이름은 ‘요기가 실험가게’였다. 현재 홍대앞 공항철도 환승역 근처의 6평 정도 공간에서 시작했다. 술도 팔았고, 당시에 설 자리가 없던 실험적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무대를 제공하는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였다. 또 다른 특징이 있었다면, 작은 공간들을 가게 안에 마련해 임대했다는 점이다. 알음알음 모인 작가들은 그 작은 공간 안에 미니 갤러리나 가게를 만들어 운영했다. 웹 호스팅의 오프라인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
이 공간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실험 음악을 하는 예술가이기도 한 그는 아예 전시장 겸 마음껏 공연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2년이 지나자 월세도 오르기 시작했고 그래서 자리를 잡은 곳이 현재의 요기가이며, 올해로 정확히 10년이 됐다.
빌딩 지하에 자리잡은 요기가의 공간은 항상 변한다. 공연을 위한 무대와 작가들의 작업이 설치되었다 없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기존 갤러리의 깨끗한 화이트 큐브(하얀 벽으로 나눠진 전시 공간) 같은 위압감은 여기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어린아이들의 자취를 간직한 초등학교 운동장처럼 예술가들이 놀다간 흔적들이 축적된 세월의 아우라만 뿜어낼 뿐이다.
기본적으로는 대관료 방식으로 운영되지만, 대관료 한 푼 안 받고 전시를 열어준 작가들도 있다. 포트폴리오를 들고 와서 들이미는 작가도 있었고, 작업이 좋아 그가 직접 연락한 경우도 있었다. 작가를 연결시켜주거나 작품이 팔린다고 수수료를 받지도 않는다. 운영이 괜찮았냐는 질문에 그는 “딱 현상유지 하는 정도”라고 했다.
▲요기가 표현 갤러리의 대표 이한주. 사진= 김연수 기자
그는 “사명감 같은 건 없다”고 했다. 기자가 보기에도 그렇다. 항상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해 실행에 옮기고, 더 많은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분주할 뿐이다.
이한주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이슈화된 작금의 현상에 대해, “결국은 돈 없는 사람이 쫓겨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홍대 앞은 원주민이라는 개념이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지역 주민이든 외부인이든 간에 결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없어진 것이 문제”라고 진단한다. “법과 문서를 앞세워 논리적으로 따지려 들면 이런 현상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법과 문서는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도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 서로의 존재를 필요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한주 - 가상공간으로 활동 범위 넓힐 것
이제 곧 요기가 표현 갤러리의 ‘전 대표’가 될 이한주의 앞으로의 계획은 두 가지 정체성으로 요약될 수 있을 듯하다. 그것은 사운드 아티스트와 콘텐츠 개발자다.
사운드 아티스트로서의 이한주는 다양한 실험음악을 하는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불가사리’라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가게를 운영하던 시절부터 지속돼온 이 프로젝트는 아티스트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자신들이 발견하고 개발한 소리들을 공개한다. 그가 공연에서 선보이는 악기들은 일상의 물건이나 폐품들을 조합해 만든 것들이다. 그 소리들도 흥미롭지만 검은 고무줄과 호스, 파이프, 페트병들을 조합한 형태가 그 자체로 조형작품처럼 보인다.
▲이한주가 자신이 만든 악기로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김연수 기자
한편, 그는 요기가 공간을 운영하면서 물리적인 공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손때가 묻고 세월의 흔적과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 물질적인 것인데, 그것이 자기 소유일 수 없다는 사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픔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들과 정을 나눌 수 있는 아지트가 될 공간이 완전한 소유가 될 수 없으면 펼치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
강화도로의 이주 계획을 세우고 있는 그는 이제 요기가에서의 활동을 온라인으로 옮길 예정이다. 그 첫 프로젝트는 지금의 요기가 공간을 증강 현실로 재현하는 것. 이 작업을 위해 현재의 공간을 벽의 얼룩과 쓰레기 하나까지 3D 스캐닝 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 다음 진행할 프로젝트는 예술가들로 하여금 ‘셀프 퍼블리싱’을 할 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 공간 안에서 그들은 자신의 작업을 자유롭게 배포하고 판매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현재의 유통 구조에 대해 “중간자의 권력이 너무 강해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조금만 노력하면 습득할 수 있는 지식으로 만든 콘텐츠로 자본과 권력을 쉽게 움켜쥘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는 중간자가 쳐 놓은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장막을 걷는 일이 온라인에서는 더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그런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판매해줄 거라 기대하는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마케팅 하는 등의 적극적인 자세가 생산자(예술가)들에게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이안 존 - 소통 없는 다수보다 소통 가능한 소수 필요해
이안 존은 2009년 처음 요기가와 인연을 맺었다. 사운드 아티스트로서 춘천에 거주하지만 불가사리의 공연이 있을 때마다 상경해 꾸준히 참여한다. 뉴질랜드에서 온 그는 학부 시절 사운드 아트를 공부했고 현재 한국에서 다양한 전시와 공연에 참가하고 있다.
그의 소리 작업은 주로 소음으로 구성된다. 요즘에는 하모니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춘천에는 빈 집들이 많은데, 그 빈집에서 망가진 하모니카 하나를 발견했고 거기서 재미있는 소리가 났다. 이를 계기로 망가진 하모니카에 우유팩과 바늘을 조합해 색다른 소리를 만들어 내기도 했고, 어디에선가 얻은 풍선 광고판(바람을 넣어 세우는 광고판) 안에 하모니카 여러 개를 설치하기도 했다. 풍선 광고판 안으로 공기가 불어넣어져 광고판이 불룩 솟아오를 때마다 안의 하모니카들이 울어대는 방식이다.
▲요기가 표현 갤러리에서 이안 존이 풍선 광고판으로 만든 악기를 실험하고 있다. 사진= 김연수 기자
그는 자신의 음악 작업이 이상하고 낯설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은 그에게 매우 중요하고도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불가사리 프로젝트의 공연은 관객이 있거나 없거나 항상 진행된다. 관객 숫자에 상관없이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흥미를 보이는 관객이 있으면 더 좋다.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예상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관객의 참여로 유발되는 통제력의 상실과 획득, 그리고 나눔이 그에게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얻는 기회가 되고, 작업이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이안 존이 만들어낸 소리는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들을 수 있다. ID: Ian-John Hutchinson
김덕영 - 놀이 속에 숨은 잔인한 현실
김덕영은 2008년 요기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한주 대표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와서 이뤄진 전시였다. 그는 미술대학의 역사가 짧은 학교 출신으로서, 당시만 해도 학연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한국 미술계에서 활동이 여의치 않던 그는 “요기가의 존재와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작업 활동에 커다란 버팀목이 됐다”고 했다. 이제 그는 미술계에서 꽤 촉망받는 작가가 됐고, 얼마 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독일 베타니엔 국제스튜디오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는 어떤 현상에 대해 막연한 질문과 영감을 떠올리는 것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그 질문은 은유적인 기법으로 영상, ‘장소 특정적’ 설치, 관객 참여 작업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예컨대 그가 예전 폴란드와 체코에서 진행했던 작업 중 하나는 전쟁이 일어난 국가에서 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모티브를 얻었다.
‘레드 닷 앤드 워 홀(Red Dots and War Holes)’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게임처럼 관객들이 빨간 색 레이저 포인트를 가지고 놀게 하는 방식이다. 관객들은 레이저 포인터의 빛으로 공중에 드로잉을 하기도 하고 서로의 얼굴이나 몸에 비추기도 한다. 얼굴에 비추는 레이저 포인터는 영화에서처럼 총을 겨누는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게임하듯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전쟁과 놀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김덕영, ‘워 홀(War Hole)’. 각재 나무, 합판, 페인트, 가변 크기. 2014.
이어서, 작가는 공간을 비추는 레이저 포인터 불빛을 따라 다니며 벽과 천정 등을 부순다. 부순 뒤 폐허가 된 공간에서 나온 폐자재로 작가는 공간을 다시 재구성하지만 다시 복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낸다. 작가는 “제목을 구성하는 red dot(빨간 점)과 war hole(전쟁 구멍)은 각각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과 결과를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의 상업화를 이끈 앤디 워홀을 떠올리는 발음을 차용해 자본 때문에 일어나는 전쟁과 미술계 현상의 닮은 점을 짚어내는 중의적인 의미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작업을 진행하면 할수록 모든 일을 ‘A=B’ 식으로 정의 내리기가 불가능함을 느낀다”고 했다. 개념 미술을 포함한 현대 예술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의 답처럼 들리기도 하는 발언이다. 작가들은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이 김덕영의 솔직한 감회에서 얻을 수 있는 미술 이해의 힌트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