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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이 본 서울 건축] “대로 무섭고 골목 따뜻해”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는 ‘다이내믹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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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1-482호 안창현⁄ 2016.04.29 17:26:01

▲4월 29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울프 마이어의 ‘서울 건축 100년’ 강연이 열렸다. (사진=안창현 기자)


(CNB저널=안창현 기자) “서울은, 독일의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쾰른보다도 오랜 역사를 가졌다. 쾰른은 기원전 38년 로마 제국에 의해 설립됐다. 또 서울은 베를린보다 무려 3배나 앞서 형성된 도시다. 그런데 이런 서울의 역사가 도시 건축에 크게 반영되지 않은 점이 흥미롭다. 서울 안의 건물 대부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해 말 ‘서울 속 건축’이란 책을 펴낸 울프 마이어(Ulf Meyer)가 4월 29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서울 건축 100년’을 주제로 강연회를 가졌다. 독일인인 울프 마이어는 객관적이고 냉정하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서울이란 도시와 건축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고 한국 전통이나 문화에 대해 깊은 식견을 지녔다고 할 수도 없는 그의 서울 이야기들은, 오히려 우리가 그간 ‘서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를 되묻게 한다.

울프 마이어
“건축으로 보는 서울 안내서”

한국에서 서울은 지역 이름을 넘는 특별한 영향력을 지녔다. 수도일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한국에서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고 해야 할 정도로, 좋든 싫든 주어진 현실이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의외로 서울에 대해 잘 모른다. 특별히 서울이란 도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를 못 느끼거나 너무 친숙한 탓이다.

이방인의 시선은 이럴 때 도움을 준다. 더구나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접시에 담긴 스파게티”가 연상됐다는 울프 마이어의 시선으로 서울을 본다면, 익숙했던 풍경을 낯설게 다시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울프 마이어의 ‘서울 속 건축’ 책 표지. (사진=안그라픽스)

그의 책 ‘서울 속 건축’도 서울과 인근 지역의 건축물 216점을 사진과 함께 소개한 서울 건축 아카이브이자 건축으로 보는 서울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건축 전문 작가이자 비평가, 교육자로서 그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이방인의 입장에서 서울 건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독일인인 그가 어떻게 한국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까? 이는 우선 그가 건축을 대하는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그는 “대학원 시절 ‘건축과 영화’를 주제로 논문을 작성하려고 했는데, 지도교수가 이 주제는 아카데미 영역에서 다뤄질 만한 주제가 아니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건축은 학문적인 주제이기 이전에 일상의 영역에서 다뤄져야 할 삶의 문제라고 봤다”고 했다. 이런 그의 태도는 이후 건축 저널리스트로서 현장에서 활동하게 활동하는 계기가 됐다.

그가 여러 도시들의 건축 가이드를 제작한 것도 각각의 건축을 일상적인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 속 건축’ 이전에 헬싱키, 도쿄, 대만 등의 건축 가이드를 제작한 바 있다.

물론 또 다른 계기도 있었다. 바로 평양 건축에 대한 가이드북이었다. 울프 마이어는 “평양의 건축에 대한 책이 발간된 적 있다. 두 권으로 구성됐는데 재미있게도 하나는 공식적인 기록이, 다른 하나는 비공식적인 기록이 수록돼 있었다. 아무래도 북한에 대한 관심으로 그 책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성격이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서 준비한 책이 ‘서울 속 건축’ 영문판이었다.

“외국인으로 이런 가이드 책을 쓴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모든 건축을 다 다룰 수는 없는 만큼 건축물을 선택해야 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건축을 선정할 때 건축물의 미적 관점을 선정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한 나라의 역사적 관점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건축물이 가진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김수근에서 자하 하디드까지

오늘날 서울은 높은 인구 밀도와 고층 건물이 대표하는 대도시가 됐다. 울프 마이어는 “일반적으로 주택이라고 하면 비교적 낮은 높이의 공동주택을 떠올리는 독일과 달리 서울은 고층 주택을 선호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 번의 서울 방문을 통해 조금씩 책을 준비해갔는데, 서울 중구에서 시작해 구별 대표 건축물과 인천·안양 등 주변 경기도 일부 지역 대표 건축물의 설립연도, 설계 건축가, 상세 주소와 기법 등을 조사했다. 하지만 약 2400만 명의 인구가 밀집해 있는 세계적인 도시에 대한 건축 정보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라 조사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특히 그는 서울이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받은 일본의 영향에 흥미를 느꼈다고 했다. “서울이 근대화, 서구화하는 과정이 흥미로운 것은 그 영향이 서쪽에서 온 것이 아니라 동쪽, 그러니까 일본에서 왔다는 점이다.”

‘서울 속 건축’이 발간된 다음 서울시에서도 ‘서울 건축 가이드’를 출판했는데, 그는 거기에 일본 건축가들의 건축물이 수록돼 있지 않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이 남긴 건축물을 싫어하거나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건물들이 건축적인 관점에서는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런 답사와 수집 과정을 거쳐 그는 개화기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의 근·현대 건축의 전개 양상과 더불어 서울의 민낯을 보여줬다. 총 216개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건축물은 그만큼 다양한 건축가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수근부터 승효상, 김종성, 조민석 등 국내 건축가뿐 아니라 렘 콜하스, 자하 하디드, 구마 겐고 등 국외 건축가까지 서울의 건축에 관여된 건축가를 모두 포괄했다.

▲최근 타계한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사진=DDP)


“한국 건축에 큰 영향 끼친 일본 건축가들을 완전 무시하는 태도에 놀라”

울프 마이어는 “유럽인의 관점에서 보면, 서울은 처음 접했을 때 두려운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서울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 많고 너무 크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서울의 도로는 거의 대부분 굉장히 넓고 교통량도 대단하다. 대부분 일종의 공포감 같은 것을 갖게 되는 게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주요 도로를 벗어나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면 매우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또한 서울이라고 지적했다. 거기서 도시의 풍성한 문화적이고 건축적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외국인으로서 거대한 도시의 외관을 조금만 벗어나도 안도감과 함께 서울의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은 이렇게 다면적인 모습을 가졌다. 북촌과 한옥, 중구 중심지의 스카이라인, 또 강남의 거대한 비즈니스 빌딩들까지 건축에서 드러난 모습 또한 다양하다.

“서울 건축물을 하나하나 둘러보면 천주교 박해라는 역사 위에 세워진 절두산 천주교순교성지와 백남준아트센터와 같은 문화시설, 해체주의 건축을 선보이는 선타워, 서울국제금융센터 같은 비즈니스 빌딩, ‘도시 안의 또 다른 도시’인 전쟁기념관 같은 기념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적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 매력”이라고 울프 마이어는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유명 건축가들의 영향 또한 서울 곳곳에 스며있다. 물론 항상 긍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유명 건축물들 또한 서울의 공간을 구성하는 한 요소가 분명하다. 그는 얼마 전 타계한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한 사례로 언급했다.

“분명히 관광객을 유혹하고 유치하는 데 자하 하디드의 건축이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서울 고유의 특성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보기는 힘들다. 이 건물은 세계 어디에 있어도 어색할 것이 없는 건축물이다.” 당연하게도 유명하고 크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울프 마이어가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탄허대종사기념박물관’. (사진=위키미디어)


울프 마이어는 서울의 주요한 도로와 거리에서 벗어나 ‘일상의 건축’을 느낄 수 있는 골목길로 들어가 보길 권했다. 특히 서울과 같이 규모를 자랑하는 다이내믹한 도시에선 특히 그럴 것이다.

건축가 이성관이 설계한 서울 자곡동의 탄허대종사기념박물관을 제일 좋아한다는 울프 마이어는 “내 책도 그렇고 건축 가이드북은 전체 건축의 1%도 다루지 못한다. 어느 건축 책이든 선택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나머지 99%가 아닐까? 그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건축들이다. 또 우리가 평소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고, 정작 도시 생활에서 흥미로운 부분도 그런 작은 곳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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