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발칸 반도] 코카서스 산중낙원에서 시간을 잊다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1일차 (고리 및 우플리스치헤 왕복)
고리 인근 지역 탐방
오늘은 고리(Gori)와 인근 지역 탐방에 나선다. 디두베 버스터미널에서 미니버스로 고리로 향한다. 넓은 초원, 온화한 기후, 그리고 카스피해 유전 등 러시아가 카프카즈 남쪽에 수백 년 눈독을 들여온 이유를 충분히 알겠다. 1시간 20분 걸려 도착한 고리는 트빌리시 서쪽 76km 지점, 바투미 가는 고속도로에 접해 있다.
소비에트 시절에는 공업 중심지였으나 연방 해체 후 경제 몰락과 인구 유출로 초라한 모습으로 쇠락한 도시가 나타난다. 2008년 남오세티아 전쟁(South Osetian War) 때는 러시아 공군의 폭격으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고 남오세티아 군과 러시아 군에 의해 도시가 일시 점령당하기도 했다.
스탈린 박물관
먼저 스탈린박물관을 찾는다. 고리 시내 중심에 위치한 스탈린 박물관은 스탈린(Joseph Stalin, 1878~1953)의 생애에 관한 방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마침 한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전시물들을 진지하게 탐구하며 지나간다. 일종의 ‘공산주의 투어’인 것이다.
▲고리 시내 중심에 위치한 스탈린 박물관 내 스탈린 흉상. 고리 시청 앞에 서 있던 스탈린 동상은 주민들의 철거 반대가 부담스러워 2010년 어느 심야에 몰래 철거한 뒤 모처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사진 = 김현주
독일 트리에르(Trier) 소재 칼 마르크스 생가가 중국인들의 해외 인기 방문지로 부상하고 있다는 시사주간지 ‘타임(TIME)’ 기사를 읽었던 것이 생각난다. 연해주 한인의 중앙아시아로의 강제 이주부터 남북 분단 결정, 한국전쟁 사주 등 우리나라와는 온갖 악연으로만 맺어졌고 무자비한 철권 통치자로만 기억되는 스탈린이 그들에게는 어떠한 인물로 평가되는지 궁금하다.
박물관 바로 바깥에는 스탈린 전용 객차가 있다. 비행기 타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가 모스크바에서 크림반도 얄타까지 타고 갔던 객차라고 소개돼 있다. 박물관 바깥마당에는 스탈린이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생가가 보존돼 있다. 매우 초라한 집이다. 원래 이 지역은 고리의 빈민가 지역이었으나 그의 생가만 남기고 모두 철거됐다. 생가 자리에는 박물관이 들어섰다. 변방의 초라한 빈민가에서 태어나 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자란 스탈린이 세계 초강대국의 절대 권력자로 성장했다는 사실은 불가사의에 가깝다.
▲카즈벡산 꼭대기에 게르게티 교회가 보인다. 높은 곳에 자리 잡은 교회가 주변 풍경에 압도당한다. 사진 = 김현주
스탈린에 대한 애착
스탈린 박물관은 그의 사후 이뤄진 니키타 흐루시초프(Nikita Khrushchov)의 탈(脫)스탈린 프로그램의 와중에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기념물 중 하나다. 고리 시청 앞에 서 있던 스탈린 동상은 주민들의 철거 반대가 부담스러워 2010년 어느 심야에 몰래 철거한 뒤 모처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향후 스탈린박물관 앞으로 가져와 복원할 계획은 있으나 아직 실현되지는 않고 있다.
시장 부근 버스터미널에서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행 버스에 오른다. 과연 이 버스가 움직일 수 있을까? 수십 년은 되었을 낡디 낡은 버스는 그러나 운전기사의 솜씨가 보태져 우렁찬 시동을 걸며 출발한다. 약 30분 걸려 도착한 우플리스치헤는 조지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기원전 16세기에 형성돼 번성하며 코카서스 지역의 종교 의식의 중심이 됐었다. 그러나 12~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쇠락한 후 15세기까지는 실크로드의 중간 기착지로서 명맥을 유지했다.
▲카즈벡산에서 천상풍경을 맛봤다. 해발 1740m 지점에 위치한 산중 마을 카즈베기는 코카서스 트레킹과 클라이밍의 거점이다. 사진 = 김현주
사라진 고대도시
낮은 산언덕을 끼고 오르니 헬레니즘식 원형극장부터 신전과 공연장, 그리고 수많은 동굴이 펼쳐진다. 먼 옛날 이곳이 사람들로 북적이던 고대 도시였음을 말해 준다. 곳곳에 파놓은 둥그런 웅덩이는 빗물을 받는 용수 저장시설이거나 곡식 혹은 약초를 담았던 보관소이고 심지어 와인 셀러(wine cellar)까지 있다.
지은 지 1000년 됐다는 교회 하나가 덩그러니 황량한 바위 언덕 위에 서 있다. 절벽 아래 흐르는 므츠바리(Mtkvari) 강과 드넓은 스텝 초원은 여행자에게 스펙터클한 풍경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 옛날 수천 명이 살았을 마을은 역사의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주춧돌만 남아 이곳의 한때를 말해 준다. 아득한 옛날 이곳에 꽃피웠던 영화가 새삼 덧없다.
아까부터 하늘이 꿈틀거리더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걸음을 재촉해 큰길에 나오니 마침 지나가는 택시가 있어 무사히 고리 시내까지 나온다. 곧바로 마슈르트카로 옮겨 타 트빌리시로 향한다. 갑작스런 폭우로 작은 시골마을에는 홍수가 났다. 가깝게는 스탈린부터 멀리는 고대까지 시간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다. 호텔로 돌아와 내일 먼 곳 카프카즈 산중 카즈베기(Kazbegi)에 간편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작은 여장을 준비한다.
12일차 (트빌리시 → 카즈베기)
밀리터리 하이웨이의 장관
카즈베기 가는 길, 일명 밀리터리 하이웨이(Military Highway)는 트빌리시와 러시아 국경을 잇는 남북 방향 도로로서, 바쿠와 바투미를 연결하는 동서횡단 도로만큼 중요하다. 도로는 높은 산을 여러 번 넘는 험준한 산길이지만 풍치 좋은 언덕마다 크고 작은 교회들이 예쁜 자태를 뽐내고 서 있으니 눈이 쉴 틈이 없다.
카프카즈의 험준한 산들이 자꾸만 가까워 오는 사이 어느덧 차창 밖 생태계는 고산 식생대로 바뀌어 있다. 이 세상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기묘한 생김새의 산들이 이어지더니 마슈르트카는 곧 해발 2379m의 츠바리 고개(Tsvari Pass)를 넘는다. 30분 더 달려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 일명 카즈베기)에 도착하니 트빌리시 출발 3시간, 거리로는 157km 지점이다. 러시아 국경을 불과 10km 앞둔 지점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사라진 고대도시의 흔적. 낮은 산언덕을 끼고 신전과 공연장, 수많은 동굴이 이곳이 사람들로 북적이던 고대 도시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 김현주
지상에서 만난 천상풍경에 감격하다
해발 1740m 지점에 위치한 산중 마을 카즈베기는 코카서스 트레킹과 클라이밍의 거점이다. 마을에서 차량으로 앞산 꼭대기에 있는 게르게티교회(Gergeti Trinity Church, 일명 Tsminda Sameba Church)로 오른다. 내가 자동차를 타고 올라가 봤던 산악험로 중에서 가장 험한 길이다.
일제 미츠비시 4륜구동 미니밴은 그러나 너끈히 430m의 고도를 극복하며 해발 2127m 높이에 있는 교회에 닿는다. 우리나라 한라산 백록담보다 높은 위치다. 그 높은 곳에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멀고 가까운 주변 풍경에 압도당한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지상인지 천상인지 알 수 없는 황홀한 풍경에 감격해 몇 분간 그 자리에 부동자세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트빌리시 도시 풍경. 현대와 역사가 공존하는 도시는 몽환적인 분위기다. 사진 = 김현주
신의 조화를 찬미하다
해발 5047m의 카즈벡(Kazbeg) 산이 조지아와 러시아의 경계를 이루며 멀찌감치 구름에 갇힌 채 버티고 서 있고 교회에서 난 오솔길은 해발 3000m 게르게티 빙하로 이어진다. 이름 모를 산들은 모두 만년설을 한아름 이고 있고 낮은 풀이 자란 고원의 초원에는 목동이 한가로이 소떼와 양떼를 몰고 간다. 신의 조화에 경외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다. 하염없이 기다리게 내버려 둘 것 같지 않은 운전기사의 졸라대는 듯한 눈치가 야속하다. 높은 산 너머는 러시아의 최남단 영토로서 오세티아(Osetia), 체첸(Chechen), 잉구세티아(Ingusetia) 등 자치공화국들이 연이어 붙어 있는 곳이다.
아쉬움을 남기고 산을 내려오니 저녁 5시밖에 되지 않았다. 내일 아침 이 마을을 떠날 때까지 산골마을의 정취에 묻혀 보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에 저녁식사와 아침식사를 맞춰 놓았으니 무엇을 먹어야 할지 기웃거릴 필요도 없는 편안한 밤이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공룡처럼 거대한 산들이 빽빽이 둘러싼 이곳은 더 이상은 찾아들어갈 곳 없는 지구의 마지막 마을처럼 느껴진다. 속세를 떠난 것 같은 조지아 코카서스(카프카즈) 산중에서 바깥세상의 복잡다단한 시름들은 잠시 잊는다.
13일차 (카즈베기 → 트빌리시)
인간의 초라함을 일깨워 주는 자연의 신비
트빌리시행 아침 9시 마슈르트카는 만석이라서 다음 차를 기다린다. 그러는 사이, 카즈벡산이 웅장한 자태를 온전히 드러냈다. 어제부터 계속 구름에 갇혀 있다가 이제야 잠깐 귀한 모습을 인간에게 허락하는 것이다. 9시 차를 놓치기 참 잘했다. 설산의 위용 앞에 인간은 얼마나 초라한가? 그 초라함을 깨닫게 하는 자연의 가르침에 목이 멘다. 카즈벡산을 바라보며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한 줄 모른다. 그러는 사이 카즈벡산은 원래 그랬던 것처럼 구름 속에 사라져 버렸다. 아주 잠깐 사이였는데도 말이다.
▲트빌리시 올드타운에 위치한 사메바 성당. 땅거미가 깔리고 화려한 조명을 받은 성당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트빌리시 탐방
10시에 출발한 마슈르트카는 속력을 내어 달리더니 곧 트빌리시에 도착했다. 올 때 3시간 걸렸던 길을 예사롭지 않은 운전 솜씨로 2시간 30분 만에 주파한 것이다. 곧이어 트빌리시 탐방을 계속한다. 아블라바리(Avlabari)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메테히(Metekhi) 교회부터 찾는다. 여타 조지아정교회당과 다를 바 없지만 므츠바리강 절벽 위에 세워진 우람한 교회는 차라리 요새에 가깝다.
바로 앞 유럽 광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나리칼라(Narikala) 요새를 찾는다. 요새가 있는 언덕 위에는 마더 오브 조지아(Mother of Georgia) 상(像)이 있다. 4세기 페르시아인이 처음 건설한 요새는 왕국의 강력했던 한때를 증명하듯 난공불락의 성이다. 언덕 아래 도시에서는 수많은 교회들이 서로 더 높은 언덕을 차지하려고 경쟁하는 듯 서 있다. 신께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마음일 것이다.
올드타운 골목길을 따라 호텔로 돌아온다. 시오니(Sioni)교회, 모스크, 유대교당에 유황온천(Sulfur Bath)까지 있는 올드타운은 트빌리시의 아이콘 같은 거리다. 해질 녘을 기다렸다가 사메바(Sameba) 성당을 찾아간다. 서늘한 여름 저녁 날씨가 상쾌하기 그지없다. 조지아에서 가장 큰 성당(2002년 건축)의 위용이 대단하다. 땅거미가 깔려 성당은 화려한 조명을 받고 언덕 아래 도시가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현대와 역사가 공존하는 도시가 뿜는 몽환적인 불빛은 지금 여기가 대륙과 대륙이 만나는 코카서스 지방임을 잊게 한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