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천경자의 미인도부터 이우환의 위작 사건까지 미술계가 ‘위작 논란’으로 들끓고 있는가운데 정부가 적극 미술시장 개입을 위해 칼을 꺼내 들었다.
6월 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이음센터에서는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주최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 이날 자리에는 신은향 문체부 시각예술디자인과장이 미술품 투명화와 관련된 정책에 관해 발표한 뒤, 이와 관련해 미술 전문가가 의견을 나누는 시간으로 구성됐다.
큰 틀은 ▲미술품 유통업 허가·등록 기준 마련 ▲미술품 등록 및 거래이력 신고제 도입 ▲미술품 유통단속반 운영 ▲특별사법경찰 도입 ▲위작 유통 관련 범죄처벌 명문화 ▲미술품감정사제도 또는 감정기관 인증제도 도입 ▲(가칭)‘국가미술품감정연구원’ 설립 ▲미술품 거래 표준계약서 개발 및 보급이다. 정부는 7월 7일 다시 한 차례 관련 세미나를 갖고 8월부터 법률 제정을 본격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미술 전문가들은 이에 관해 큰 틀에서는 공감하지만, 세부적인 사항에 우려를 표했다. 그리고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옥션·K옥션 “큰 틀에서는 공감, 거래이력신고제는 글쎄…”
옥션 측은 문화부의 방안에 큰 틀에서는 공감의 취지를 밝혔지만, 거래이력신고제에 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거래이력신고제는 유통하고자 하는 미술품을 화랑, 경매 업체 등이 문체부에 작품·작가·판매자 정보와 거래이력 등을 신고하는 방식이다.
최윤석 서울옥션 이사는 “정부의 힘을 빌려서 미술시장의 활성화에 큰 틀을 마련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한다. 경매가 됐든 화랑이 됐든 정부의 이런 노력을 충분히 새겨들어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장이 자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정부의 정책적인 개입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거래이력신고제에 대한 우려도 있다.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작품을 정부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 정확한 취지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모든 작품들의 유통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이고, 작품이 A에서 B로 가고, B에서 C로 가는 과정도 중요하긴 하지만 작품의 진가를 판단하는 것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중간에 미술 전문가의 기록이나 법인 등의 과정이 있다면 도움이 되기는 한다”고 말했다.
이상규 K옥션 대표도 우려의 의견을 밝혔다. 이 대표는 “전반적으로 다 동의하나, 화랑업 등록, 경매업 허가 등의 기준 마련에 대해서는 반대다. 이보다는 미술계 진입을 자유롭게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대신 여기서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을 부여하는 게 효율적일 것으로 보인다. 규칙을 지키지 않았을 때 퇴출시키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거래이력신고제의 경우 오해가 없도록 운영돼야 한다. 정작 여기에 작품 구매자, 보유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빠져 있다. 민감한 부분은 선택적으로 신고를 할 수 있게 해주고, 거래이력신고제를 잘 이행하는 화랑에게 어드밴티지를 주는 방식이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신 과장은 “거래이력신고제의 경우 구매자 개인 정보가 올라가는 것에 대해 어디까지 등록해야 하는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정준모 미술평론가 “화랑 자격 제도 필요”
정준모 미술평론가 화랑 자격에 관해 주장을 펼쳤다. 이 대표의 의견과 달리 화랑 자격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준모 평론가는 “이번에 이우환 위작 문제는 3년도 안 된 작은 화랑에서 불거졌다. 자격을 갖추지 않은, 엄연한 짝퉁 시장이 존재한다”고 짚었다.
이어 “그리고 미술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용산, 장안평, 청계천 등에 있는 짝퉁 시장에 가서 박수근의 작품을 1000만원에 산다. 그리고 나중에 위작 논란이 불거지면 미술계 거래가 불투명하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미술계가 이런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화랑의 자격을 검토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력한 처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짚었다. 정준모 평론가는 “위작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들이 두 번이나 집행유예 돼서 또 활발하게 활동하며 다시금 위작 사건을 일으켰다. 이런 일이 빈번하다”며 “법제화를 통해 위작을 생산, 판매, 유통하는 이들을 중벌에 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위작을 전문으로 단속하는 특별사법경찰 도입에 관해서는 확실히 개념 정리를 하고 진행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진수 교수·박우홍 한국화랑협회장 “미술 시장 위축 우려”
정부의 개입이 미술 시장의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는 “미술 시장이 오랜만에 좋아지고 있다. 미술 시장이 무너졌다고 보는 의견이 많은데, 건강한 쪽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갑자기 짧은 시간 내에 다양한 법들을 만들어 지금 도입하는 게 미술 시장의 위축을 불러오진 않을지 염려된다. 우리 미술 시장은 이제 막 2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250년 역사를 지닌 서구 미술 시장의 제도를 한꺼번에 도입해서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 중 우리나라에 맞는 제도들을 가려서 첨삭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우홍 한국화랑협회장도 “빠른 제도 도입보다 미술계 유통 관여 주체자들이 각자 해야 할 일을 주체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의견을 같이 했다. 그는 “서로 간 상생하고 자율적으로 발전해야 할 미술시장은 자정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유통 관리에 대한 제도를 제정하는 것에 앞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토양 마련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우선되고 흐트러진 시스템을 정비해 나가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8월 주요 정책 발표는 시급하다. 물론 시의성이 필요한 정책도 있겠지만, 올해 8월보다는 내년 8월까지 많은 논의를 거쳐 의견을 수렴하고, 실질적으로 입법화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이 있었으면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한국미술품감정협회·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등 “감정사 양성이 시급”
유통뿐 아니라 감정에 관해서도 의견이 오갔다. 감정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정책 마련보다 제대로 된 감정사 양성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문체부는 ‘미술품 감정 전문화’ 전략으로 미술품감정사를 국가자격 또는 국가공인민간자격으로 도입하는 방안과, 국가가 일정 자격 기준을 가진 기관을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서성록 한국미술품감정협회장은 이와 관련해 현실적인 시간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는 “감정 연구원의 필요성이 제기됐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미술계가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여기엔 동의한다. 그런데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국의 감정재단은 180시간 강의를 듣고, 1800시간은 실습시간을 거친다. 하루에 평균 6시간 씩 350여 일이 돼야 감정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이것을 바로 실행하기엔 아직 지원도 노력도 부족하다. 외국은 30~40년을 전문 연구를 해서 감정의 능력을 키우고 사회적 합의에 의해 현재에 이르렀다. 우리는 지금 기구를 세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감정에 관한 중장기적인 노력과 기반 마련에 힘써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송향선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감정위원장은 감정사 양성의 중요성과 환경 개선을 짚었다. 그는 “미술시장이 늘어나고 그림 가격이 커지니 갑자기 감정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며 “평가원에서 10여 년 간 쌓은 진작/위작 관련 자료는 1만 4000여 점 정도다. 그런데 감정위원은 고작 40~50명에 불과하다. 차세대 감정인을 10명 모아 5년 간 실습을 시켰는데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새로운 기구를 설립하기보다 현재 잘 하고 있는 것을 지원 및 보충해줬으면 한다. 감정인들의 처우 개선도 필요하다. 감정 평균 비용이 10~20만원인데 생활을 이어나가기도 힘든 수준이다. 또 감정이 잘못됐을 때 쏟아지는 비난과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현재 소수 인원이 다 감당하고 있다.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며 “환경 개선을 시급해야 후학 양성에도 힘쓸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올바른 감정인이 양성될 수 있겠는가” 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은 착착한 마음부터 드러냈다. 그는 “먼저 작품 감정의 신뢰를 얻지 못해 이 자리가 마련된 것에 대해 미술계에 몸담은 한 사람으로서 죄송하다. 모든 것은 자율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오늘 현실을 직시하면 부정적인 게 사실”이라며 “2005년부터 올 1월까지 국가기관으로부터 의뢰 받은 진위 감정이 3000여 점이었는데 진품이 한 점도 없었다. 위작 논란은 보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올바르게 감정문화를 정착시키려 했던 사람들이 국내에서는 활동하기 힘들다. 신뢰를 얻지 못해 외국에 감정을 맡겨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외국에서 과연 한국 전통 회화를 그린 천경자에 대해 얼마나 자료를 갖고 있고, 무엇을 기준으로 감정을 하겠는가. 또 위작 논란이 생겨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넘어가는 현실”이라며 국내 감정계의 힘든 현실을 꼬집었다. 또한 “법의학이 있고, 법화학이 있는데 법예술학은 없다. 현재 우리는 감정의 힘을 키워야 한다. 후학 양성에 힘써야 이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김영석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이사장은 시가 감정과 관련해 국가미술품감정원을 구성하는 데 찬성하며 의견을 달리했다. 다만 “작가와 컬렉터들에게 도움이 되는 형태로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가 감정은 데이터를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미술품 진위 감정은 실질적 당사자를 포함해 전문가의 오랜 경험과 안목이 필요하다. 그래서 더 미술품 감정원이 필요하다. 또 미술품 감정원은 미술 시장 활성화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한국 미술 시장은 경매가 주도한다. 컬렉터들도 경매에 참가한 작품만 알고, 작가들은 경매에 나가지 않으면 작품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그래서 갤러리, 아트페어 등은 신뢰를 얻기 힘들어 활성화가 어렵다”며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미술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신용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 주길 바란다. 이를 바탕으로 한 미술품 감정원을 통해 올바른 정보가 제공된다면 유통 과정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이번 토론회를 마치면서 7월 7일 2차 정책토론회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1차 토론회에서 다양한 의견이 오간 데 이어, 2차 토론회에서는 또 어떤 의견이 오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