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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미술관 앞마당에 불시착한 폐선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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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1호 안창현⁄ 2016.07.08 10:57:3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 설치된 신형철 건축가의 파빌리온 ‘템플(Temp'L)’. (사진=연합뉴스)


(CNB저널=안창현 기자) 35년 전 모래와 컨테이너 박스를 싣고 전 세계를 누비던 60톤 화물선이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마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화물선 앞 일부분만 옮겨왔지만, 그 크기는 상당했다. 뜨거운 여름철, 미술관을 오가는 사람들이 잠시 햇볕을 피해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도 그만일 것 같다.

이 웅장한 크기와 낯선 형태의 구조물은 신스랩 아키텍처의 신형철 건축가가 선보인 파빌리온 건축 조형물 ‘템플(Temp'L)’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매년 공동 주최하는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Young Architects Program, YAP)’의 올해 당선작이다.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은 1998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확장된 신진 건축가 육성 프로그램이다. 아시아에선 최초로 2014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이 뉴욕현대미술관과 공동으로 이 프로그램을 진행해오고 있다. 현재 로마국립21세기미술관(MAXXI), 이스탄불현대미술관, 칠레 컨스트럭토 등 세계 유수의 기관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그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쉼터’ ‘그늘’ ‘물’이라는 주제로 서울관 마당을 관람객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2014년에는 건축가그룹 문지방(권경민, 박천강, 최장원)이 작품 ‘신선놀음’을, 지난해에는 SoA(이치훈, 강예린)이 ‘지붕감각’이란 작품을 선보여 주목 받았다.

올해 YAP 당선작에 신형철 ‘템플’

7월 6일 일반에 공개한 올해 당선작 ‘템플’은 신형철 건축가가 ‘템포러리(temporary)’와 ‘템플(temple)’을 합성해 만든 신조어로, 기능과 수명이 다해 폐기된 선박을 활용한 파빌리온 형태의 건축물이다. 폐선박에 예술적인 상상력을 더해 형태를 변용하고, 사물 본래의 기능을 친환경적인 건축 설계를 통해 생태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6’ 전시에 앞서 신형철 건축가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작품은 현대미술의 독특한 창작 방식인 ‘레디메이드(ready-made, 일상적인 사물을 변형하고 그 사물의 본래 용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현대 미술의 창작 방식)와 동시대 미술의 화두인 ‘재활용’ 개념을 접목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신 건축가는 “실험적인 건축 설계 과정이었다. 보통의 경우 도면 설계를 거친 후에 시공 단계에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정반대였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버려진 선박을 찾는 일이 먼저였고, 이후에 거기에 맞춰 디자인했다. 현대미술에서 마르셀 뒤샹이 했던 작업처럼 버려진 쓰레기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건축 영역에서 시도해보고 싶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특히 예술적이면서도 건축적 가치를 내포한 선박에 주목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를 떠올렸다. “르 코르뷔지에의 저서 ‘건축을 향하여’에 소개된 피리의 건축물과 그 뒤에 등장하는 대형 여객선의 그림자 모습, 베네치아의 작은 건물 사이를 통과하는 거대한 배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

신 건축가는 이처럼 20세기 산업화 시대의 대표적인 부산물인 선박에 건축적 개념을 접목했다. 여기에 환경의 중요성도 환기시켰다. “사실 대형 선박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각종 오염물질이 바다에 배출돼 극심한 환경문제를 낳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

작품에 활용된 폐선박은 체계적인 해체 작업으로 환경오염 발생을 줄이고, 해체된 선박으로부터 재활용이 가능한 부분을 기술적으로 분리해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환경의 중요성을 관람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작품에 사용한 폐선박의 내부는 관람객이 쉴 수 있는 정원처럼 꾸며졌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템플’ 내부의 2층에서 바라본 미술관 모습. (사진=국립현대미술관)


“건축의 매력은 (건축물의) 내부와 외부가 서로 다르다는 것에서 온다”고 말하는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내부와 외부를 다르게 접근했다. 전남 목포에서 가져온 폐선박의 선수 부분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신 건축가는 선체에 변형을 가하지 않고, 외관을 가능한 그대로 유지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미술관이 세워지기 훨씬 이전부터 그 장소에 있었던 과거의 거대한 유물처럼 비춰지길 원했다.

“외부의 상처와 흔적은 그대로 살리는 대신, 내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꾸몄다. 흰 페인트로 내부 공간을 칠하고 나무를 심었다. 아늑한 정원처럼 사람들이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재활용-친환경 등 동시대 문제를 환기

신 건축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스스로 새로운 건축적 경험을 했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능동적으로 구조물을 설계하고 제작했다기보다는 버려진 선박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는 것이다. “내부를 꾸밀 때도 선박의 형태와 구조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임의대로 형태를 변경할 수는 없었다. 이미 그 형태에서 나올 수 있는 모양이 정해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략적인 계획은 있었지만 작업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많은 것이 결정된 것은 이 때문이다. 작품의 제목 ‘템플(Temp'L)’도 제일 마지막에 정해졌다. 어떤 작품이 될 지 알 수 없던 상황에서 마지막에 나온 결과물을 보니 오래된 사원(temple) 같이 느껴졌다.

▲폐선박의 선수 부분을 활용한 작품 외부는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올해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심사위원들은 신 건축가의 작업을 건축과 현대미술의 경계를 확장했다고 평가했다. 재활용 개념을 작품의 중심 주제로 설정한 제작 의도와 현대미술의 창작방식인 레디메이드를 파빌리온 건축 설계에 접목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심사에 참여한 뉴욕현대미술관 현대건축 큐레이터 션 앤더슨(Sean Anderson)은 “올해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에 뛰어난 건축가들이 많이 참여해 최종 건축가를 선정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특히 올해의 당선작은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른 독창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고 언급했다.

폐선박의 독특한 형태를 볼 수 있는 파빌리온 건축물 ‘템플’은 10월 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 설치, 전시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서울관 제8전시실에서는 최종후보군에 오른 5개 팀을 포함해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의 국제 네트워크 작품들을 조망하는 전시가 동시에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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