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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전시] "몸 붙이고 빼고" 오를랑 테크노바디 50년展

성곡미술관, 6월 17일~10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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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2호 윤하나⁄ 2016.07.15 18:19:55

 

▲오를랑, '베이징 오페라 가면 #10'. 120 x 120cm, 파인아트 바리타지 위에 피그먼트 프린트, 흰 나무 프레임, 플렉시 글라스, 증강현실. 2014. (사진 = 성곡미술관)


눈썹이 있어야 할 자리에 광대뼈 같은 혹이 솟아나 은색 반짝이가 빛난다. 그것이 2016년 오를랑의 얼굴이었다. ‘성형수술 퍼포먼스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오를랑은 지난 50년간 아홉 번의 성형수술로 자신의 신체를 조금씩 변형시켜 왔다. 성형 수술실은 작업실로, 수술을 받는 자신의 몸이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작동하길 바라며 진행한 그의 50년 작업세계를 아우르는 회고전이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AI 시대의 예술이란? 오를랑, 새로운 인류를 모색하다

 

올해 초 인공지능 알파고와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과의 5연전에서 알파고가 4승  1패라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알파고와의 승부가 치러지기 50여 년 전부터 오를랑은 인류가 기술 앞에 선 연약한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오를랑의 작업은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열패감과 구태의연한 정체성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인류를 모색하는 것이 오를랑 예술의 핵심이다.

 

 

▲오를랑, '수술 전 시식하는 오를랑'. 165 x 110cm, 시바크롬 프린트, 1991. (사진 = 성곡미술관)


1947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오를랑은, 스스로에게 오를랑이란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며 몸과 정체성을 주제로 일생동안 작업해왔다. 17세의 나이에 바쁘게 걷는 거리의 사람들 사이에서 일부러 매우 느리게 걸음으로써 사회적 규범에 대항하는 느리게 걷기퍼포먼스로 데뷔했다. 또한 같은 해 사랑하는 자아를 출산하는 오를랑을 이어 제작하며, 몸을 이용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자신의 성기에서 팔이 없는 마네킹이 나오는 이 사진 작품은 오를랑이 자신의 이름을 새로이 만들어냈듯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스스로 탄생시킨다는 의미를 지닌다.

 

오를랑은 과거의 정치, 사회, 종교가 우리의 몸, 특히 여성의 몸과 정신에 가해온 낡은 정체성을 벗어던지고 첨단 기술시대의 신개념 신체를 제시한다.

 

이번 회고전은 오를랑의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나누지 않았다. 오를랑은 해를 거듭하며 반복적으로 신체, , 사회의 문제를 짚어내기 때문이다. 동어반복이 아니라 일관된 주제를 끊임없이 새로운 기법으로 파고드는 오를랑의 작업세계를 들여다보자.

 

 

▲오를랑, '자동 - 글쎄, 거의 - 판매기'. 148 x 205cm, 흑백 프린트. 1977. (사진 = 성곡미술관)


계급과 규범으로부터의 해방

 

1관의 1층 전시장은 오를랑의 초기 흑백사진 작업과 리믹스 영상으로 채워졌다. 순결한 성녀에서 창부로의 변화를 18개의 사진으로 기록한 혼수용 천으로 벌인 우연한 스트립 쇼가 대표적인 예다.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규정된 여성성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천만 남겨진 장면이 마지막으로 연출됐다. 리믹스 영상에는 우리 모두 섞이자구요란 말과 함께 칵테일 쉐이커를 흔들며 오를랑이 등장한다. ‘리믹스란 말 그대로, 종이 다른 생명체들을 비롯해 시간과 공간 같은 추상적 개념까지 섞이는 세계야말로 차별과 계급이 없는 세상이라고 주장한다.

 

2층 전시장의 한편에는 당대의 첨단기술을 활용한 영상 작업들이 설치됐다. 그중에서 피신처, 유배은 이주 증명서가 없는 난민들과 이미 국적을 취득한 마르세이유 이민자 24명의 인터뷰다. 자신이 떠나온 본국의 국기는 각각의 얼굴 위로 지나가는데, 이를 통해 피부색과 인종도 함께 변한다. 한 개인을 사회가 받아들이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오를랑, '구름을 배경으로 한 오를랑'. 119 x 180cm, 시바크롬 프린트. 1983. (사진 = 성곡미술관)


표준을 만드는 기준에 반기를 들고, 자기 몸을 이용해 장소를 측정해 나가는 작업 분노 측량시리즈도 함께 전시됐다. 이는 작가가 바닥에 누워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길이를 오를랑-바디라는 단위로 사용해 세 곳의 미술관을 측량해 나간 기록물이다.

 

2층 전시장의 왼쪽에는 성녀와 창부 시리즈의 컬러 사진 작업과 성형수술 퍼포먼스가 담긴 영상작품이 설치됐다. “피부라는 껍질은 기만적인 것이다등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는 영상에는, 실제 그의 몸에 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선 모양대로 주사를 맞거나 지방을 빼내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수술대 위에서 수술을 받는 오를랑은 할리퀸(피에로)을 연상시키는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은 채 능청맞게 책을 읽고 있다. 피부를 옷처럼 자유롭게 갈아입고 싶어 한 오를랑은, 예술가로서 인간의 신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정면으로 질문한다.

 

9번의 수술을 거치면서 더 이상 성형수술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물리적 신체 변화 대신 보다 적극적으로 디지털 합성 기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하이브리드시리즈에서 오를랑은 자신의 얼굴에 아프리카, 마야, 아즈텍 등 다른 문명권의 얼굴을 혼합했다. 비서구 문명을 열등하게 바라보는 서구 문명의 태도를 비판하고,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미의 다양성을 제시한다.

 

 

▲오를랑, '라 그랑드 오달리스크'. 205 x 146.5cm, 흑백 프린트. 1977. (사진 = 성곡미술관)


AI 시대의 예술 - 끊임없이 진화하는 신인류 

2관의 전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면 이제부터 또 다른 오를랑의 작업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실체를 작업의 재료이자 캔버스로 활용하던 작가는 이 시점부터 최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작업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베이징 오페라 가면시리즈는 순식간에 가면을 벗겨내 얼굴을 바꾸는 연기술인 중국 전통 가면극 '변검'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작품은 최근 유행하는 포켓몬고(Go) 게임처럼 증강현실(AR)을 활용했다. 오그먼트(Augument)라는 스마트폰 앱을 다운받아 베이징 오페라 가면 시리즈 중 한 점을 스캔하면 작품 앞 허공에 작품 속 오를랑이 3D로 나타난다. 실제로 눈앞에 보이진 않지만 기계를 통해 만나는 오를랑과 앱을 이용해 사진도 찍을 수 있다.

 

2층에서는 오를랑의 최신작인 ‘MYO 팔찌를 찬 오를랑의 양방향 게임 실험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오를랑은 3D 비디오 게임을 작업에 접목했다. 따라서 단지 보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 작품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 로봇이었던 오를랑의 아바타가 인간이 되기 위해 여러 미션을 수행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내용이다. 아바타는 얼굴과 팔, 다리, 피부 등 신체의 조각들을 찾아내 완전한 인간의 몸을 완성해야 한다. 양 팔에 MYO 팔찌를 끼고 흔들며 직접 게임을 즐겨보자. 게임을 작동하기가 처음엔 쉽지 않지만, 전시장 도우미의 손길로 어느새 게임을 즐기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오를랑, 'MYO 팔찌를 찬 오를랑의 양방향 게임 실험'. 120 x 120cm, 비디오 게임, MYO 팔찌. 2015. (사진 = 성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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