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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人 - 박형진 작가] "함께 발걸음 맞추는 것부터 시작"

반려견을 통해 돌아본 살아가는 관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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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5호 김금영 기자⁄ 2016.10.14 09:14:07

▲박형진, '너와 함께 - 바다'. 캔버스에 아크릴릭, 72.7 x 90.9cm. 2016.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최근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다. 실종된 반려견 하트를 마을 주민들이 몰래 잡아먹고도 “주인이 강아지 관찰을 잘 못했다” “원래 시골에서는 죽은 개를 주워다 잡아먹는다”는 등 뻔뻔한 태도로 일관해 분노를 샀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사람과 개라는 종(種)을 떠나 이기적인 속성과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 태도는 안타까움과 동시에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줬다.


현 사회에서 동물은 가축의 의미를 벗어났다. 과거엔 집을 지키기 위한 역할로 개를 키웠으나, 이제는 인생을 함께 하는 가족이라는 의미에서 반려견이라 부른다. 소유물이 아닌 가족이기에 서로간의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박형진 작가는 이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에이루트 아트플랫폼에서의 개인전에서 풀어내고 있다.


▲박형진, '너를 위한 크리스마스 트리'. 캔버스에 아크릴릭, 60.5 x 72cm. 2015.

전시명은 ‘너와 함께’다. 바로 전 전시 ‘너에게’의 연장선상이다. 두 전시 모두 자신만 등장하지 않고 너, 즉 상대방의 존재를 함께 이야기한다. 혼자 잘난 맛에 사는 게 아니라, 자신과 관계 맺은 존재들에 대한 고마움과 배려를 되새기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이번 전시는 작가와 소중한 인연을 맺었고, 지금 맺고 있는 소라와 유시진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둘 다 작가의 반려견이었고, 또 현재 반려견인 존재들이다.


“원래는 화면에 강아지들이 부수적으로 약간씩 등장하고는 했어요.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화면 속 아이와 함께 강아지가 떡하니 크게 등장했죠. 최근 1년 사이에 제가 겪고 느낀 것들이 많이 반영됐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박형진, '너와 함께 - 산'. 캔버스에 아크릴릭, 72.7 x 90.9cm. 2016.

작가의 부모는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를 많이 키웠다. 작가는 솔직히 강아지를 아주 많이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늘 곁에 있는 당연한 존재이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라와 만나게 됐다. 소라는 매우 수줍은 아이였다. 그래도 작가를 잘 따랐다. 그랬던 소라가 이사를 하고 나서 새 집에 잘 적응을 못했다. 소라를 위한다는 마음에서 부모님 집에서 새 집으로 데려왔는데, 소심했던 성격이 더 소심해지고 원래 있던 개들과 문제도 생겼다. 그래서 다시 부모님 집에 데려다 놓아야겠다고 생각한 그날, 소라는 동네 큰 개에게 물려 세상을 떠났다. 이번 전시 개막일인 10월 6일은 소라가 떠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정말 가슴이 아프고 놀라기도 했어요. 처음엔 먹먹하기만 했죠. 그래서 그림을 그리며 상처를 치유한 것 같아요. 소라와 함께 가보고 싶었던 곳, 해보고 싶었던 일을 매일 상상하면서 그림을 그렸죠. 그때마다 가슴이 아렸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화면 안에서 소라가 행복한 모습을 보니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 것 같아요.”


섞여서 살아가는데, 존중과 배려는 어디에?


▲박형진, '너와 함께 - 발맞추어 걷기'. 캔버스에 아크릴릭, 45.5 x 60.6cm. 2016.

처음엔 이렇게 소라를 그리워하고 기리는 마음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점점 소라를 그릴수록 작가는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느끼게 됐다고. 여기서 ‘너에게’ ‘너와 함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소라를 생각하다보니 소라의 모습에서 공감 가는 게 있었어요. 소라는 개들 사이에 잘 섞이지 못했어요. 사회성이 부족했죠. 그런데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사람과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존재와 섞이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존중과 배려가 필요해요. 개나 인간이나 다를 게 없죠. 같이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즉 공존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이 생각도 그림에 담았습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는 얼굴과 팔이 시커멓게 타 있다. 왜인가 했더니 새근새근 잠을 자는 강아지에게 커다란 나뭇잎을 씌워주고 있다. 자기의 얼굴은 햇살에 빨갛게 익어갈지언정 나뭇잎을 두 손에서 놓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의 표정은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행복한 듯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자신의 사랑스러운 존재가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약간의 불편은 감수한다. 강아지 또한 아이를 잘 따른다. 아이가 외롭게 않도록 꽉 안아주고, 늘 곁을 지킨다. 아이와 강아지는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배려하고, 노력한다. 그 노력은 손해도 아닐뿐더러 거창하지도, 힘들지도 않다.


▲박형진, '새싹'. 캔버스에 아크릴릭, 32 x 41cm. 2016.

“이전 전시 ‘너에게’에서는 반려동물이 제게 준 사랑을 주로 그렸어요. 그림 속 강아지가 아이에게 선물도 주고, 마음도 주죠. 그렇다면 이번 ‘너와 함께’전에서는 한쪽만이 아닌, 양쪽이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노력이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것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저 주어진 여건 아래에서 마음을 다해 최선을 다 하면 그게 시작이라고요.”


이 의미가 사람들에게 닿고 더욱 공감이 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화면 속 아이를 자신, 강아지를 소라라고 이름 지어놓진 않았다. 작품명은 ‘너와 함께 - 산’ ‘너를 위한 크리스마스트리’ 식이다. 산책을 하기도, 바다를 보기도, 함께 크리스마스를 즐기기도 하는 아이와 강아지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자신과 반려견의 모습을 투영할 수도, 아니면 ‘작가 이야기 겠구나’ 추측할 수도 있다. 틀을 지어놓지 않았다.


둥근 선과 파스텔 톤 색감으로 그린 따뜻한 세상


▲박형진, '우리가 좋아하는 것'. 캔버스에 아크릴릭, 45.5 x 60.6cm. 2016.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그려진 선은 작가의 이 따뜻한 마음, 그리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더욱 느끼게 해준다. 파스텔 톤으로 그려진 색감은 마치 동화를 보는 듯 순수한 느낌이다. 작가는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에 교감과 소통의 방식을 이야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라에 이어 가족이 된 유시진은 현재 작가의 삶의 활력소다. 본래는 자신의 개가 아닌, 마을을 떠돌아다니는 유기견이었다. 쫓아내고 쫓아내도 찾아오던 유시진은 작가의 반려견과 정분이 나기도 했다. 가족을 찾아줘야겠다는 생각에 계속 주인을 함께 찾아다녔지만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유기견 센터에 신고를 했는데, 일정 기간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안락사에 처할 상황에 직면했다.


결국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작가가 새로운 가족이 됐다. 이미 정이 들어버린 존재를 외면할 수 없었단다. 그 관계를 놓아버리는 대신 붙잡기를 택했다. 당시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 캐릭터 이름이 새로운 반려견의 이름이 됐다. 사람들이 이름을 듣고 웃곤 하는 이 개는 붙임성 좋은 애교쟁이다. 소라에 이어 화면에 등장한 유시진은 작가가 소라와 미처 다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함께 하고 있다. 같이 산책도 하고, 화실 또는 마당에서 작가를 기다리기도 한다.


▲박형진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뭐 이렇게 개 타령을 하냐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원래 소소한 일상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공감 요소가 아닐까요? 저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그려요. 그리고 소라와 유시진을 통해 관계의 중요성, 그리고 그 관계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그 진심이 전달될 수 있도록, 거짓말은 하지 말자는 마음에서 그림을 그렸어요. 최근 벌어진 하트 사건은 매우 가슴이 아프고 충격적이었어요.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차갑게 느껴졌죠.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지기 위해서는 모두 조금씩 노력을 해야 해요. 그래야지만 ‘너와 함께’ 갈 수 있죠.”


작가는 본인이 특별하게 투철한 동물 보호 정신을 가진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단지 자신과 함께 해주는 존재와 눈을 맞추며 서로를 바라봤고, 발걸음을 맞춰서 걸었으며, 따뜻하게 이름을 불러준 정도다. 그 작은 배려도 힘든 세상에 작가의 그림은 다시 한 번 주위를 돌아보게 만든다. 전시는 에이루트 아트플랫폼에서 10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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