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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결혼 계약제' 이야기하던 조재현의 '블랙버드'는?

인간 사이의 관계와 갈등의 폭발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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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기자⁄ 2016.10.21 15:47:57

▲연극 '블랙버드'에서 우나 역의 옥자연(왼쪽)과 레이 역의 조재현이 열연 중이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배우 조재현이 인터뷰에서 한 발언으로 한동안 떠들썩했었다. 조재현이 감독으로 변신해 선보인 영화 ‘나홀로 휴가’는 10년 동안 옛 사랑 곁을 맴돈 한 남자의 사랑과 집착을 그렸다. 특히 극중 나온 ‘결혼 계약제’ 이야기는 뜨거운 감자였다.


극 속 인물은 10년간 의무적으로 산 뒤 5년 단위로 재계약하는 부부 사이의 결혼 계약제를 주장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조재현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조재현은 언론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부부가 5년 주기로 재계약을 하고, 자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에게 ‘너네 부모님은 재계약 했니?’라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정도로 정착화 돼야 한다”는 생각을 비쳐 눈길을 끌었다.


결혼 계약제의 의중에는 정말 소중할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사랑이 당연해져서는 안 되며, 꾸준히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도가 녹아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의 행동은 단지 불륜을 미화하는 게 아니냐며, 결혼 계약제 또한 불륜을 옹호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조재현은 “관객이 판단할 몫”이라며 의견을 열어뒀다.


그랬던 조재현이 이번엔 더욱 파격적인 소재의 연극에 출연해 눈길을 끈다. 연극 ‘블랙버드’에서 15년 전의 과거를 잊고 새 출발을 하려는 레이 역을 맡았다. ‘블랙버드’는 2005년 영국 에딘버러 국제페스티벌 공식개막작으로 초연된 후 10여 년 동안 영국, 호주,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스페인,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공연됐다. 국내에는 2008년 추상미, 최정우 주연으로 소개됐고, 올해 새로운 프로덕션과 캐스팅으로 8년 만에 돌아왔다.


8년 만에 돌아왔다는 소식도 그렇지만, 이 공연에 유독 눈길이 가는 건 다소 불편한 소재를 다루기 때문. 등장인물은 50대 남자 레이와 20대 여자 우나다. 겉으로 볼 땐 그저 평범한 성인 남녀인데, 이들은 재회하는 순간부터 불꽃이 튄다. 경계와 원망의 불꽃이 활활 타오른다. 15년 전 이들에겐 평범하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겨우 12살이었던 우나와 중년 남성 레이는 성 관계를 맺었다. 이야기는 우나와 레이가 사랑의 도피를 하기로 한 날, 한 모텔에서 관계를 맺은 뒤 벌어진 일, 그리고 그로부터 15년 후 이들의 재회를 그린다.


우나는 레이가 특별하다고 느꼈다. 그와의 대화가 즐거웠고, 늘 만나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레이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고, 무엇이든지 주고 싶었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다 줬다. 그런데 영원히 함께 하기로 한날 레이는 자신을 모텔 방에 버리고 도망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12살 소녀는 그냥 울 수밖에 없었다. 레이는 마을을 떠났지만, 우나는 계속 그곳에 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 속에 삶이 고통스러웠고, 15년이 흐르고 어느 날 우연히 본 책자에서 레이의 사진을 발견하고는 그가 일하는 사무실로 찾아간다.


레이의 원래 이름은 피터였다. 이름을 바꾸고 새 삶을 살려 했다. 레이는 우나를 사랑했다고 말한다. 처음엔 자신의 마음을 자제하려고 했지만, 처음 본 순간부터 우나는 무언가 특별한 존재로 각인됐다. 그리고 점차 머릿속에서 우나가 떠나질 않았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공원 덤불 속 사람들 눈을 피해 우나와 첫 관계를 가졌다. 그리고 우나와 비밀 암호로 계속 만나다가 함께 떠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도무지 불안한 마음이 잡히지 않는 가운데 모텔에서의 그날이 시작되고, 레이는 우나를 모텔 방에 버리고 간 게 아니라며 기억을 맞추기 시작한다.


“내 다리 사이” 직설적 대화 속
진실과 거짓이 섞인 모호한 관계


▲우나(오른쪽, 채수빈 분)와 레이(조재현 분)가 기억하는 15년 전의 사건은 다르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폭발하면서 부딪히는 모습을 보여준다.(사진=김금영 기자)

두 성인 남녀가 나누는 대화는 매우 직설적이다. “다리 사이로 피가 흘렀다” “내 상의 단추를 푸르고 가슴을 만졌다” “내 다리 사이에 입을 맞췄다” 등 15년 전의 기억이 오가는 언쟁 속에 펼쳐진다.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우나는 레이가 소아 성애자가 아닐까 의심하고, “또 누가 있었니?” 하고 쏘아붙인다. 이에 레이는 “너를 처음 만난 날 나는 꽉 붙는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섰으면 티가 났을 것”이라고까지 변명하기도 한다.


이야기가 이렇다보니 쟁점이 소아 성애에 빠질 수도 있다. 관객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사랑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들 하지만, 성적으로 미성숙한 소아가 대상이 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아에 대한 이상 성욕을 지니는 로리타 콤플렉스, 그리고 이 로리타 콤플렉스가 단순 욕망에 끝나지 않고 실제로 벌어지는 소아 성범죄는 범죄 중에서도 특히 금기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라는 요상한 논리 아래 로리타 문화가 생기기도 했다. 특히 일본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은 표정의 순수한 소녀가 살짝 신체의 일부를 드러내는 식의 로리타 콘셉트가 상업적으로 많이 이용됐다. 변태적인 욕망이 아닌, 순수함에 대한 욕망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쏘아보는 시선이 많다. 지난해 아이유의 ‘스물셋’ 뮤직비디오는 로리타 콘셉트가 아니냐는 지적으로 숱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설리는 절친인 구하라와 함께 찍은 화보 사진을 올렸다가 로리타 의혹에 휩싸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성범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속 로리타와 함께 이야기되는 소아 성애는 굉장히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다.


하지만 조재현은 “주목할 부분은 소아 성애가 아닌, 관계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조재현은 “만약 이 이야기가 소아 성애에 관해서 다루는 이야기라면 굳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연을 할 때 도저히 못하겠으면 거절한다. 이전엔 자신의 딸을 비닐봉투로 죽이는 장면이 들어있는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전체적으로 작품은 좋았지만 도저히 그 장면을 연기할 수가 없어서 거절했다. ‘블랙버드’의 경우 소아 성애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부딪힘을 이야기하는 극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거기서 발생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조재현이 선보인 영화 ‘나홀로 휴가’와도 맞물린다. ‘나홀로 휴가’에서 관계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함을 이야기했다면, ‘블랙버드’를 통해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맺는 타인과의 관계 속 오해와 갈등이 어떻게 폭발하고, 부딪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


이 관점에서 캐릭터 분석도 이뤄졌다. 조재현은 “극중 레이가 소아 성애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로서 그 인물에 대해 애정을 가져야 하는데, 내가 바라본 레이는 소아 성애자가 아니라 정말 우나를 사랑했다. 우나와 도망가고 싶었지만, 도망가면 사회적으로 바로 문제가 될 것을 알기에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레이가 겪는 그 갈등을 잘 연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윤삼화 연출, 배우 조재현, 채수민, 옥자연. 연극 '블랙버드'를 8년 만에 국내에 올린다.(사진=김금영 기자)

우나 역으로 같이 호흡을 맞추는 채수빈과 옥자연은 “극을 읽고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소아 성애가 포커스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나와 레이의 15년 동안의 기억이 만나는 지점, 그 이야기가 중심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핵심이 있다. 작품의 번역과 연출을 맡은 윤삼화 연출은 관계 사이에 발생하는 모호함에 흥미를 느꼈다. 윤 연출은 “배우들은 본인이 극 속의 바로 그 인물이 돼서 연기를 하고, 나는 그 배우들을 믿어야 한다. 배우들을 바라보면서 느낀 것은 기억이 왜곡되는 우나와 레이의 모습이다. 갈등이 깊어지면서 기억의 왜곡은 더 깊어지지 않을까”라며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서로 잘못이 없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우나와 레이의 이야기는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다. 그 모호함에 원작 작가가 관심이 있다고 느꼈고, 이에 집중해서 번역, 연출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극은 끝까지 모호한 상태로 끝난다. 속된 말로 ‘X 싸다 끊긴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바닥에 주저앉은 우나처럼 한동안 멍해진 상태가 될 수 있다. 후의 일을 판단하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돌린다.


조재현은 “이 극은 기승전결이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관객들은 혼란스럽고 ‘저게 뭐야?’ 식으로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꼭 이야기가 명확해야 할까”마려 “우리는 어느새 부터인가, 꼭 명확하게 갈등이 풀리거나 결론이 나는 이야기를 좋은 극이라 여기는 습관이 생겼다. 그런데 모호하게 여러 방면으로 결말을 열어 두는 이런 스타일의 연극도 좋은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머리 아프게 분석하려 하지 말고, 단지 재밌고 흥미롭게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번에는 ‘나홀로 휴가’로 떠들썩했다면 이번엔 ‘블랙버드’가 떠들썩해질지 모르겠다. 공연을 보고 극 속 인물의 궤변이라 하며 욕을 할 수도 있고, 어느 부분에서는 공감을 할 수도 있다. 원작자인 데이비드 해로우어조차 “드라마, 영화를 볼 때 그 인물에 몰입하지만, 정작 내 희곡을 쓸 때는 멀리 떨어져서 쓴다”며 “결말에 대해서도 방향을 명확하게 알고 쓴 게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은데 죄송하지만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조재현은 단순히 편하게 보라고 했지만, 이 공연을 마냥 편하게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공연은 DCF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11월 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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