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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블랙리스트 ③] "그런 거 없다" vs "우리가 겪은건 뭐고?"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현장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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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9호 김금영 기자⁄ 2016.11.11 09:44:09

▲'블랙리스트의 시대,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토론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관심을 보였다.(사진=연합뉴스)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블랙리스트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도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정부는 블랙리스트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만, 현장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다르다. 이들은 몸소 겪은 사례를 증거로 들었다.


① 신현식 앙상블 시나위 대표 “리허설 한 번 안 오고”


신현식 앙상블 시나위 대표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노가 느껴졌다. 그는 지난해 국가기관인 국립국악원에서 공연을 못하게 됐던 이야기를 전하며 “나라의 음악을 담당하는 국악원에서 권력을 휘둘러 특정 장르나 인물을 배제하라는 지시가 행해진 사례”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11월 공연을 불과 2주 앞둔 시점에서 전화 한 통이 왔다. 당시 박근형 연출과 연극과 음악 간의 융합을 보여주는 공연을 준비 중이었는데 연극적인 요소를 빼라는 것. 이유는 들을수록 이상했다. 연극적인 요소가 들어가면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고, 혹은 배우들의 가사가 묻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 대표는 “직접 와서 리허설을 보고 판단하라”고 했지만 지시를 내린 관계자들은 한 번도 공연장을 찾지 않았다. 말만 반복됐다. "연극적인 요소를 빼라고~."


박근형 연출은 언론 보도에 나온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인물이다. 박근형 연출은 2013년 연극 '개구리'를 올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후 2015년 선보인 박 연출의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선정에서 배제됐다. 이에 대해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미 박근형 연출은 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여러 차례 지원을 받았었다. 탈락이 정치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의혹의 눈초리는 완전히 거둬지지 않았다.


“연극적인 요소를 문제 삼기에 '그러면 박근형 연출과 연극이 아닌 무용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무조건 연출을 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공연 자체를 포기하겠다고 하니, 바로 국립국악원 내부 사람들의 공연으로 하루 만에 공연을 대체해 버렸습니다. 제도권에 속하지 않은 예술가들이 큰 상처를 입은 사건입니다.”


당시 국립국악원은 "공연장의 특성상 연극은 대사 전달 등에 문제가 있어 올리지 않기로 한 것"이라며 "특정 연출가 탄압이나 예술 검열과 관련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② 김미도 연극평론가 “더욱 교활해진 검열”


▲'검열 논란'이 불거진 박근형 연출의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공연 모습.(사진=남산예술센터)

김미도 연극평론가는 문화계 검열 사태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진행된 ‘검열각하’ 릴레이 공연에 참여했다. 22개 극단이 5개월에 걸쳐 부당한 검열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를 전했다. 릴레이 공연의 직접적 계기는 앞서 신 대표가 언급한 박근형 연출과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것뿐이 아니다. 김 평론가는 문학창작기금 지원에서 심사위원이 뽑은 이윤택 연출가의 작품 ‘꽃을 바치는 시간’이 탈락됐고, 다원예술창작지원 심사에서는 세월호를 다뤘다는 이유로 윤한솔 연출의 ‘안산순례길’이 제외됐음을 강조했다. 올해엔 배우 오현경이 50주년 기념 공연으로 ‘봄날’을 선보이고 싶었는데, 연출가인 이성열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정부 지원에서 배제됐고, 대신 ‘언더스터디’를 선보이게 됐다고도 김 평론가는 말했다.


이런 과정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언론이 보도한 블랙리스트는 수년 전부터 인터넷 등에 공개돼 돌아다니던 명단을 단순히 짜깁기한 자료”라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김 평론가는 이 모든 사례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듯 다시금 언급하며 “문화계 검열이 점점 더 교활하고 교묘해졌다”고 짚었다.


“심의위원회가 검열을 자제하는 게 아니라 더 교활하게 검열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말 잘 듣는 심의위원들을 모아, 문제가 안 될 작품들만을 심의하는 거죠. 또한 아예 지원 사업 자체를 없애거나 변질을 시킵니다. 박근형 연출이 지원받던 사업도 이름을 바꾸는 등 여러 방법으로 변질돼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작품을 올릴 수가 없었어요. 이 공연은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서울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됐는데 매진 사례 속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원을 해준 서울문화재단 자체도 상위 기구인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또 어떻게 지원이 교묘하게 끊길지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에요.”


무대에 올리지 못하고 묻힐 뻔한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3월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의 초연 이후 최근엔 일본 ‘페스티벌/도쿄 2016’에 공식 초청돼 10월 27~30일 무대에 올려졌다.


③ 연상호 감독 “독재국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세월호 참사 관련 영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은 2014년 부산시가 영화제 조직위원회에 상영 중지를 요구하면서 논란이 됐다.(사진=시네마달)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 논란 속에 열렸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영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상영 중지를 부산시가 영화제 조직위원회에 요구하면서 논란이 됐다. 그럼에도 상영이 이뤄지자 부산시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고발했다. 예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야기가 들끓었다. 입을 다물고 있던 부산시는 이후 기자간담회를 통해 “우리 역시 감사원의 감사를 받는 기관”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많은 영화인들이 부산국제영화제를 보이콧 했고, 영화 ‘부산행’을 흥행시킨 연상호 감독도 여기에 함께 했다. 특히 그는 안타까움을 많이 드러냈다.


“여러 설왕설래가 있는데 다이빙벨 상영에 따른 보복성으로 부산시의 고발이 이뤄졌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고, 또 눈에 보이죠. 서병수 부산시장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있든 없든 별로 상관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서 부산국제영화제와 같은 국제적인 행사를 다시 처음부터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영화인을 위한 자리가 단지 정권에 거슬린다고 사라져야 할까요? 예술을 뭐로 보는 건지 어처구니없습니다.”


▲김곡, 김선 감독이 만든 정치 풍자 코미디 영화 '자가당착'은 2011년 6월과 2012년 9월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었다. 2015년 다시 심의를 신청했고, 청소년관람불가로 심의가 완료됐다.(사진=서울독립영화제)

또한 연 감독은 영화계에 존재하는 검열의 손으로 ‘제한상영관 판정’을 들었다. 성인관람가가 만 18세 이상인데, 제한상영관은 이 성인조차도 관람이 불가한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다. 하지만 국내엔 제한상영관이 없다. 윤 감독은 김곡, 김선 감독이 만든 영화 ‘자가당착’이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었다고 꼬집었다.


“한국에서 제한상영가를 받으면 영화를 선보일 기회조차 없어요. 보여주지 말라는 거죠. 주로 포르노를 합법화하지 않기 위해 둔 게 이 제한상영가 등급인데, ‘자가당착’이 MB정권 시절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습니다. 요즘엔 웬만큼 폭력적인 게 나와도 성인관람가가 나오는데 말이죠. 다만 ‘자가당착’엔 호돌이가 스톱모션으로 나오고, 쥐떼, 또 대통령을 연상케 하는 마네킹이 나왔습니다. 김곡, 김선 감독은 개인 소송을 진행했고, 최근 대법원에서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이 부당하다는 결정이 났어요. 실질적으로 문화계에 정치적 검열이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팩트예요. 문제는 이 정국에 대해 정부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이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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