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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 ‘온전한 초상’] 외모지상주의 시대에 여성의 무표정 응시하기

작가 주황의 사진전, 플랫폼-엘에서 12월 1일~2017년 1월 22일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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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2호 윤하나⁄ 2016.12.02 17:40:41

▲‘온전한 초상’ 전시 포스터. (사진 =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맑고 깨끗하고 자신있게’. 밝은 피부를 앞세운 미백 화장품 광고로 보이지만, 이내 보인 모델의 얼굴이 낯설다. 하지만 순백색 의상과 배경, 단아하게 정리한 머리 스타일, 강렬한 조명과 윤기 도는 피부 표현으로 사진 속 일반인 모델에게서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는다그저 이와 같은 콘셉트로 10여 개의 사진들이 반복적으로 걸린 전시장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따름이었다.

 

온전한 초상 / her portrait


대통령의 미용에 대한 욕망이 정치적 이슈와 맞물려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는 요즘이다외모 지상주의와 페미니즘의 고리는 오래된 화두이지만, 최근의 여성 혐오 이슈와 혼란한 시국이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재점화하고 있다그런 와중에 지속적으로 사회적 맥락 속 여성 이미지를 초상 사진으로 담아온 작가 주황의 전시 온전한 초상 / Her Portrait(허 포트레이트)'가 최근 열려 주목을 끌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작가가 지속해온 작업의 한 갈래인 동시에, 최근 격동하는 페미니즘 이슈를 드러낸다.

 

주황은 초상과 풍경 사진을 오가며 작가만의 독특한 페미니즘 시각을 보여 왔다. 최근에는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2016에 여성 감정노동자를 소재로 한 의상을 입어라를 출품해 주목받기도 했다. 작가는 대부분의 작업에서 연작화와 무표정한 응시를 방법적으로 활용한다. ‘의상을 입어라연작에서 유니폼을 입은 감정노동자들의 사진을 라이트 박스로 나란히 설치한 모습을 통해 (여성노동의 상품화를 상기시킨 것처럼, 작가는 연작화를 통해 일상의 단면을 계열화하고 규칙적으로 반복함으로써 현대 사회 속 사물화된 인간을 드러낸다


이렇게 계열성이 드러난 작가의 사진 속에는 무표정한 인물이 자리했다. 무표정 사진(Deadpan Photography)이라고 불리는 이 사진 양식은 감정을 배제한 얼굴을 통해 일체의 판단을 중지시키는 동시에 원초적인 정체성을 드러낸다.

 

▲주황의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 연작의 설치 모습. (사진 =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두 가지 연작을 선보인다. 첫 번째로 화장품 광고 사진을 차용해 일반인을 광고모델처럼 탈바꿈시킨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 미국 SF 작가 테드 창의 동명 소설에서 제목을 딴 이 연작에서 작가는 획일화된 아름다움을 통해 낯선 접촉점을 드러낸다. 소설 속의 사회는 외모 지상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아름다움 자체를 배제시킨다. 사람의 겉모습을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장치를 통해 이 사회의 사람들은 아름다움은 물론 외양의 기본적인 다름마저 인지하지 못한다. 테드 창의 소설은 일차적으로는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이야기지만 더 깊숙이는 인종과 계급의 문제를 이야기한다고 주황 작가는 지적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일반인 모델을 섭외해 기초화장품 광고의 전형성을 모방했다. 비슷한 모습의 사진 작품이 나란히 걸린 전시장의 풍경은 더욱 낯설었다. 반복적인 연작 사진들은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복제된 인간의 몰개성을 기묘하게 연상시킨다. 재밌는 것은 광고사진처럼 모공 하나까지 지운 작품을 접한 모델들이 저마다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사진에 만족스러워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질감을 느껴 낯설다는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주황, '출발 #0155 (Departure #0155)'. 170 x 113cm, 디지털 C-프린트. 2016. (사진 =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떠나는 자의 무표정한 초상, '출발'


두 번째 '출발(Departure)' 연작은 요즘의 연예인 공항 패션 사진을 연상시킨다. 이 같은 공항 사진은 공항 터미널로 진입하기 전 도로에서 찍힌 사진으로 주로 유명 연예인의 패션 때문에 화제가 된다. 헌데 주황의 사진 속 여성들은 이와 대조적으로 편안한 차림의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너무 담담해서 처연해 보이기도 한 여성들은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했거나, 이미 긴 여정을 마친 상태다. 저마다 이민, 유학, 출장 또는 여행으로 짧고 긴 이주의 경험을 간직한 이들은 공항이란 출구를 앞에 두고 카메라/관객을 응시하고 있다. 과연 모두가 이 힘든 한국이 싫어서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일까? 작가는 이에 대해 힘들어서 출구를 찾아 떠나는 게 아니라 개척의 정신이 드러나는 당당함도 볼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공항은 과거 남성의 공간이었다. 공항이란 경계선에 닿은 현대 여성의 모습이 비장하게 전장으로 나가는 전사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만우 플랫폼-엘 관장은 전시 제목 온전한 추상에 대해 갓난아기에게 엄마의 얼굴은 생애 최초로 마주하는 풍경이라고 설명하며 이 원초적인 풍경이 바로 온전한 추상일 수 있다고 전한다. 여성 인물사진과 인터넷 시대의 페미니즘 담론을 주제로 한 아티스트 토크가 123일 토요일 오후 4시에 플랫폼-엘의 4층 렉쳐룸에서 열린다. 이날 아티스트 토크는 주황 작가와 함께 미학가 양효실이 패널로 참여해 박만우 관장의 사회로 진행된다. 자세한 사항은 플랫폼-엘의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2017년 122일까지.


▲주황, '출발 #0745(Departure #0745)'. 105 x 70cm, 디지털 C-프린트. 2016. (사진 =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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