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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리뷰 - ‘디셈버’전] 일찍 불러내진 12월의 습관적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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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2호 김연수⁄ 2016.12.02 16:51:44

▲(앞)최하늘, '일필휘지조각, 4(8)폭 병풍, '희설(喜雪)''. 각목, MDF, 합판, 스티로폼, 핸디코트, 190 x 60 x 164cm. 2016. (뒤) 최하늘, '기설조각 2'. 철제좌대, 케이블타이, 소형DC모터, 스티로폼, 40 x 40 x 300cm 좌대, 높이 30cm. 2016. (사진=오제성)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을 문득 공기의 냄새로 알아챌 때가 있다. 특히 고요한 새벽 공기에서 계절의 냄새가 짙게 묻어날 때가 있는데, 아마도 거리의 가로수가 계절마다 모양새를 달리하며 밤새 모아뒀다가 뿜어내는 향취라고 짐작해본다. 사계절 중 어떤 이유에선지 몰라도 겨울의 냄새는 옛 기억을 감성으로 상기시킨다. 서촌의 통인시장 옆 주택가 안쪽에 자리 잡은 예술 공간 ‘시청각’에서 열린 전시 ‘디셈버’엔 그런 겨울의 정취가 듬뿍 묻어났다.


올해 12월 마중은 특히 덥고 길었던 여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으슬으슬 추우면서도 가슴 시큰하게 다가오는 겨울의 아침 공기는 아직 느껴보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한옥에서는 계절의 변화가 또 다르게 다가온다. 서울 도심의 한옥은 뻥 뚫린 중정에서 보이는 하늘이 제 맛이다. 한옥 구조를 그대로 살린 공간 시청각의 기획자 현시원은 공간 구조의 특이성 때문에 전시를 열 때마다 날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이곳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은 언제나 날씨와 작품을 함께 감상했을 듯하다.


날씨는 현실이다


디셈버 전은 기상, 기후, 날씨 등으로 불리는 공기의 흐름-변화, 즉 대기 상태를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시선과 생각을 작품과 글 등으로 제시한다. 기획자 안인용과 함께 이번 전시를 공동 기획한 현시원은 “불안하고 어두운 미래를 얘기하기 이전, 현실에 대한 해석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날씨에 관한 이야기는 대화에서 가장 표준적인 소재 중 하나”라고 전한다. 대기 상태를 객관화된 수치로 나타내는 것이 ‘기상’이라면 ‘기후’는 지역이 중심이 되는 것이고, ‘날씨’는 일반적이면서도 감성마저 담아낼 수 있는 개념이라며 작품 이해를 위한 팁을 줬다.


별로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글로 이번 전시에 참여한 예술가까지 총 17명(팀)의 작품이 알차게 들어차 있었다. 모든 작품들이 현재 미술계에서 눈에 띄게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작가들의 결과물이지만 그 중에서 몇 작품을 골라 소개해 본다.


▲박미나, '8월 하늘'. 캔버스에 유채, 140 x 345cm, 31부분, 각각 30cm. 2016. 부분 이미지. (사진=오제성)


박미나와 옵티컬레이스는 대기 상태를 데이터와 함께 제시한다. 대신 그 제시는 숫자보다 시각적 기록으로 이뤄진다. 통계자료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진행해 온 옵티컬레이스는 이번 전시에서 100년 동안의 12월 기상 관측 자료를 한 권의 책으로 모으는 시도를 했다.


메인 전시 공간 제일 안쪽 안방 같은 공간은 박미나의 작업이 양쪽 벽면을 가득 채웠다. 그는 비마저 드물게 오며 혹독하게 더웠던 올해 여름, 8월 1~31일 사이, 같은 시각 연희동 하늘의 색을 물감으로 재현했다. 하늘을 동그랗게 잘라온 듯한 촘촘히 걸린 하늘빛은 같은 색이 하나도 없다. 맞은 편 벽에는 아무리 촘촘히 나뉜 색상표에도 찾기 힘들 듯한, 혹시 찾을 수 있더라도 숫자로 된 기호 이상의 이름이 붙지 않았을 하늘색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그대로 흔적으로 남은 종이 팔레트들이 역시 한 면을 메우고 있다. 눈이 예민한 시각예술가만의 대기 기록 방식이다.


▲호상근,(왼쪽부터) '기후1' '기후2' '기후3' '기후4' . 종이 위에 색연필, 각각 35.4 x 29.7cm. 2016. (사진=오제성)


디셈버: 11월에 생각하는 12월의 기억


시청각의 입구 쪽 외부 별실에 자리 잡은 호상근의 작품은 을지로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 창문에서 바라본 남산 타워의 모습을 차분한 색연필 소묘 4점으로 표현했다. 대기 중의 미세먼지가 많으면 빨간 조명을 밝히거나 맑고 화창한 날에는 영롱한 햇빛을 유리창에 반사하는 모습을 감상하고 있다 보면, 그의 그림 속 주인공은 남산타워가 아니라 남산타워와 작가 사이에 있는 공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당에 있는 욕실이나 화장실이었을 단칸 공간은 박민하의 영상 작업을 상영하고 있었다. 작가는 눈이 오지 않는 지역, 특히 영화 산업이 발달한 LA에서 가짜 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는지에 대한 다큐멘터리와의 교차 편집에 내레이션을 덧붙여 서사를 만들어낸다. 진짜 눈을 볼 수 없었던 장소에서 가짜 눈은 기억과 추억을 생산-판매 가능케 한 거대 산업 아이템임을 알 수 있다.


▲박민하, '당신의 영원한 눈'. 카탈로그 이미지, 비디오 설치, 2분 31초. 2016. (사진=오제성)


박민하의 전시 공간 옥상에는 최하늘의 조각 작품들이 우뚝 서 있다. 우연찮게도 가짜 눈을 만드는 영상 작업 위 가짜 눈을 만들어내는 작품이 설치됐다. 기념비의 구조적 형태만 차용한 그의 조각 작품 ‘기설조각 2’엔 눈을 생산하는 기능이 추가됐다. 형태를 차용한 것은 병풍의 구조를 빌려온 '일필휘지 조각‘도 마찬가지다. 스티로폼과 케이블 타이, 각목 등 가공되지 않은 산업 재료들로 만들어진 조각들은 재료의 질감을 거칠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관객에게 평면적 이미지를 상상하고 덧씌우며 감상할 수 있게 만든다.


문성식의 작품은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최적화된 듯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날씨에 관련한 기억들을 소환했는데, 소박하면서도 빈틈없는 손길로 표현된 계절마다 다른 공기와 분위기가 느껴진다. 추상적 개념을 공간과 같은 실체가 있는 단위로 끌어내 다양한 실험을 하는 최해리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공간의 변형을 시도했다. 바닥에 눕힌 벽면에는 벽지와 그림 액자, 벽 등 벽임을 짐작케 하는 장치들이 설치돼 있고, 액자 안의 그림 역시 물속의 물고기와 육지의 나뭇가지가 한 공간에서 좌우, 위아래 없이 표현돼 있다. 그의 작업을 볼 때면 인식 속의 기억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구체화되기 전, 과연 지구의 중력과 시간성을 반영한 체계적 모습일지 궁금해지곤 한다. 


현시원은 전시 제목을 ‘디셈버’라고 지은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12월이 되면, 사람들은 당연하게 기억을 환기시키며 1년을 되돌아보곤 한다. 하지만 11월에 열린 이 전시는 12월과는 다른 날씨와 분위기에서 새로운 기억과 시각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밝혔다. 전시는 4일까지. 


▲최해리, '협곡벽'. 숭어를 그린 금박회화 2점, 벽지, 2개의 벽등, 금박과 은박 버섯, 가변 크기. 2016. (사진=오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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