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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에바 알머슨의 일상에 녹아든 ‘서울’과 ‘제주 해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근작 포함 150여 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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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19호 김금영⁄ 2018.12.12 12:33:53

에바 알머슨 작가.(사진=(주)디커뮤니케이션)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방긋 미소 짓고 있는 인물의 얼굴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전시장 처음부터 끝까지 곳곳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주치는 건 해맑고 순수한 미소가 가득한 얼굴들이다. 찡그린 표정이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요즘 풍경 속 오히려 눈길을 끄는 미소다.

스페인 화가 에바 알머슨의 개인전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내년 3월 31일까지 열린다. 전시명에서도 알 수 있듯 작가는 행복을 담은 그림으로 알려졌다. 그는 “전시를 준비할 때 내가 과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생각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집(home)이었다”며 “내게 그림은 집과 같이 편안함을 주는 안식처이자 열정의 매개체이며 행복을 주는 존재다. 그림에 대한 열정을 관객들과 나누고 행복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꽃들로 둘러싸인 에바 알머슨 작가의 초상을 담은 ‘만개한 꽃’.(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가 특히 눈길을 끄는 건 큰 규모다. 유화, 판화, 드로잉, 대형 오브제 등 작가의 초기작부터 서울을 주제로 한 최근 작품까지 총 150여 점을 전시한다. 전시장 벽 곳곳에 그려진 작가의 벽화도 볼 수 있다. 이 방대한 양의 작품을 하나로 모으는 주제가 ‘집’이고, 세부적으로는 8개의 방이 구성됐다. 관람객들이 작가의 예술의 집에 초대돼 방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콘셉트다.

첫 번째 방은 작가 에바 알머슨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작가는 초상화 작품들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리는 동시에 관람객들을 반갑게 집으로 초대한다. 아름다운 꽃들로 둘러싸인 초상을 담은 ‘만개한 꽃’ 작품은 초대에 응한 이들에게 환영하는 의미를 담았다. 작가는 “아름답기만 한 화면이 현실에서 도피하는 측면도 있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웃는 얼굴을 보면 마음이 열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상대방의 내면으로 초대받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웃는 얼굴의 힘을 믿고, 꾸준히 웃는 얼굴을 그려 왔다”고 말했다.

 

에바 알머슨은 서울을 주제로 한 작업한 최신작들을 선보인다. 그림 속 남산타워가 눈길을 끈다.(사진=김금영 기자)

두 번째 방은 작가가 한국 전시를 기념해 서울을 주제로 한 작업한 최신작들을 선보인다. 어느덧 작가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서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림 속에서 작가는 가족과 함께 남산타워를 찾기도, 맛있는 한식을 먹기도 한다. 작가가 수십 차례 서울을 방문하며 봤던 서울의 풍경, 음식, 건물, 사람들의 모습이 작가의 화풍으로 표현됐다.

작가는 “10년 전 한국에 첫 방문한 뒤 매년 한국을 찾았고, 최근엔 1년에 4~5번 정도로 더 자주 온다. 서울의 거리를 걷는 걸 좋아한다. 올 때마다 빠른 속도로 달라지는 모습에 놀란다. 특히 건축물,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빨리 변하는 걸 느낀다”며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인은 환상적인 문화를 가졌고, 자신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 점이 내 예술 작업에도 많은 영감을 줘 꾸준히 한국에 오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가 한국에 애정을 가진 만큼 한국 또한 작가의 작업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 그의 전시가 꾸준히 열리고, 아트 상품도 많이 개발돼 친숙한 이미지가 됐다. 작가는 “한국에서 특별히 사랑받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오히려 여쭤보고 싶다. 다만 많은 한국인 분들의 피드백으로 유추해보자면 내 그림에서 자신의 어릴 적 소중하게 간직했던 감정들이 연상돼 좋다고 하더라.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매우 좋다”고 말했다.

소소한 일상이 바로 특별한 것이다

 

에바 알머슨의 작품 속 인물들은 평범하게 밥을 먹고 산책을 한다. 그 평범한 일상 속 행복이 있음을 작가는 이야기한다.(사진=김금영 기자)

세 번째, 네 번째 방, 그리고 다섯 번째 방에서 이 감정들이 가득하다. 조금 더 커진 일상을 담은 이 공간은 각기 다른 삶과 인물들이 맺는 관계 속에서 발견하는 특별함과 행복을 이야기한다. 작품 속 인물들이 아주 특별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거나 함께 길을 걷고, 때로는 양팔로 서로를 꼭 감싸 안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행동들을 하는 인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이건 작가가 오랜 작업 세월 동안 꾸준히 담아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우리는 각자의 일상을 살아간다. 내 그림에 웃는 얼굴이 가득해 항상 재미있고 신나게 살 것 같지만, 내 삶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평범하다. 갈등도 힘든 일도 있다”며 “아티스트는 자신이 겪는 일을 바탕으로 세상에 다양한 시각을 보여준다. 나는 희망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특히 우리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고 즐거운지 이야기하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고 말했다.

 

에바 알머슨이 바르셀로나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순간부터 오랜 시간 관심을 갖고 연구한 판화, 드로잉 작업이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복잡하게 머리 굴리지 않고 그저 뛰어노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순수한 내면의 감정, 작가는 이 감정들을 끌어낸다. 동물의 가면을 뒤집어 쓴 인물을 담은 작품의 경우 동물 가면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내면엔 선한 모습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누구나 내면에 행복을 바라는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시간을 갖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앞선 방들이 유화와 대형 오브제, 벽화로 가득했다면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방은 작가가 바르셀로나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순간부터 오랜 시간 관심을 갖고 연구한 판화, 드로잉 등을 연대기 순으로 보여준다.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마지막으로는 ‘해녀 프로젝트’ 방이 기다린다. 이 방 또한 한국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드러낸다. 작가는 제주 해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기 전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그는 “해녀들과의 경험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경험 중 하나다. 상하이 호텔에서 관광 잡지를 보다가 제주 해녀 사진을 봤는데, 마치 야생동물을 본 것 같은 강렬한 힘을 느꼈다. 직접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동생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일부러 제주도로 갔다”고 말했다.

작가는 제주 올레길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해녀들의 모습을 봤고 빠르게 스케치를 했다. 그렇게 개인적인 감명으로 끝날 줄 알았던 경험은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에 스케치가 같이 실리면서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졌다. 작가는 “고희영 감독이 내게 이메일을 보내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 홍보를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내용을 보니 해녀들에 관한 이야기였고 흔쾌히 돕겠다고 답했다”며 “영화를 보고 또 바로 해녀들과 사랑에 빠졌다. 고 감독은 내가 해녀를 긍정적인, 행복한 여성의 모습으로 그린다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더라. 그리고 그 행복의 기운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에바 알머슨이 제주 해녀들과 함께 보낸 기록(위)과 동화 ‘엄마는 해녀입니다’의 내용으로 구성된 영상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직접 해녀들과 만나고 그들의 집에 머물기도 했다. 고 감독이 직접 해녀를 만나볼 것을 제안해 우도로 여행을 떠났다. 이때 상하이 호텔에서 봤던 잡지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 김영선도 동행했다. 작가는 “해녀들이 서로 돕고 보살피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특히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또 관계에 대해서도 배웠다. 해녀들은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자연이 주는 만큼만 물질을 했다. 단지 물질하는 방법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지혜를 아름답게 전해줬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고 감독이 지은 동화책 ‘엄마는 해녀입니다’를 통해서도 전해진다. 작가는 이 책의 삽화를 그렸다. 전시장에서는 작가가 해녀들과 함께 생활하며 받은 영감으로 그린 작품들을 원작과 함께 영상으로도 감상할 수 있다.

작가는 “한국에 올 때마다 하나씩 꼭 얻어간다. 서울의 거리에서 아름다움을 느꼈고, 해녀들의 삶에서 진실과 행복을 느꼈다”며 “예술에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표현하는 순수한 시각이 강한 이미지보다 오히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게 더 낫거나 못하다고 따지는 게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고 배우는 데서 행복이 시작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해녀 프로젝트’ 공간. 영화 ‘물숨’의 고희영 감독이 지은 동화책 ‘엄마는 해녀입니다’의 원작 삽화가 전시됐다.(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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