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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재현한 인공물…관계의 역전 시도하는 한경우 작가

갤러리 퍼플서 개인전 ‘자연스러운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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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32호 김금영⁄ 2019.03.25 11:25:12

한경우, ‘리버스드 릴레이션즈 – 클라이밍 홀드(Reversed Relations - Climbing Hold)’. 돌. 2019.(사진=갤러리 퍼플)

익숙해 보이는 돌과 목재. 하지만 정체를 알면 순간 혼란스럽다. 인공적으로 배치된 모습에 당연히 인공물일 것이라 예측했지만, 실상은 인공물을 재현한 자연의 일부다. 이는 고정관념의 시선을 탈피하고 관계를 역전시키며 본질을 보고자 한 한경우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됐다.

작가는 인간의 불완전한 시각을 주제로 작업한다. 작업 초창기 때는 우리에게 익숙한 도상을 이용해 카메라가 포착하는 기계적인 시각과 관람하는 주체 사이의 괴리를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였다. 대표적으로 2009년 ‘그린 하우스(Green House)’와 2016년 ‘플라스틱 로르샤흐(Plastic Rorschach)’ 작업을 통해 고정된 인식의 틀을 깨는 작업들을 지속해 왔다. 이런 작업들을 통해 작가는 사물-대상 그리고 현상-실체를 구분 짓는 틀을 해체한다.

 

한경우, ‘리버스드 릴레이션즈 – 우드 그레인 테이블(Reversed Relations - Wood Grain Table)’.(사진=갤러리 퍼플)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돌, 나무 등 자연적 소재를 대체한 인공물들을 예술적인 재현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로 인해 오히려 자연이 인공물을 재현하게 돼 눈길을 끈다. ‘리버스드 릴레이션즈 – 클라이밍 홀드(Reversed Relations - Climbing Hold)’에서 작가는 우레탄으로 만들어진 인공 암벽 홀드를 자연의 돌로 구현해냈다. 암벽 홀드는 자연의 암벽을 재현한 인공물이지만, 실제 암벽의 모양과는 매우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인공물을 더 이상 자연의 재현물이라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예술적 대상으로 바라봤다.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인공 암벽 홀드는 우레탄으로 돌의 형상을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만들어 자연 상태에서의 암벽 등반을 실내에서 간편히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스포츠 용품”이라며 “인공 홀드는 자연의 돌을 원본으로 한 복사물(copy)이지만 자연에서는 인공 홀드와 유사한 돌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사람을 기준으로 손으로 잡고 오르기 용이하게 형태가 변형됐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한경우, ‘프로젝티드 스페시맨 - 피존(Projected Specimen – Pigeon)’. 디지털 프린트, 페이스 마운트, 100 x 100cm. 2019.(사진=갤러리 퍼플)

그는 이어 “인공 홀드가 인공 벽에 붙어 있는 위치나 간격도 매우 친절하게 적재적소에 위치해 있다. 이 또한 자연의 암벽을 그대로 재현했다고는 보기 힘들다”며 “인공 홀드는 암벽 등반의 돌의 개념을 재현한 것이지,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원본의 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작업 의도를 밝혔다.

인공 암벽 홀드가 된 자연의 돌과
시트지의 표상을 재현한 실제 원목

 

한경우, ‘프로젝티드 스페시맨 – 도그(Projected Specimen – Dog)’. 디지털 프린트, 페이스 마운트, 100 x 100cm. 2019.(사진=갤러리 퍼플)

또 다른 작품인 ‘리버스드 릴레이션즈 – 우드 그레인 테이블(Reversed Relations - Wood Grain Table)’에서는 실제 원목을 이용해 인테리어 용품인 무늬목 시트지의 표상을 재현했다. 시트지가 변질돼 자연의 형태에서 벗어날 때 시트지 본연의 모습이 드러남으로써 존재가 명확해진다. 작가는 “이 또한 재현의 소재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게 된다”고 봤다.

그는 “무늬목 시트지는 시트지에 자연의 나무 이미지를 입혀 벽이나 가구 등의 표면에 간편히 붙여 실제 목재를 사용하지 않고도 나무의 느낌을 줄 수 있는 인테리어 용품”이라며 “간혹 시트지 시공이 잘못되거나 시공 후 오랜 시간이 흐르면 시트지가 붙어 있는 표면과 시트지 사이에 틈이 생겨 공기가 유입된다. 이렇게 시트지 표면에 주름이 잡히면 완벽히 나무로 위장하고 있던 무늬목 시트지는 비로소 나무의 재현이 아닌 시트지로서의 위상을 회복한다”고 설명했다.

 

한경우, ‘프로젝티드 스페시맨 – 구스(Projected Specimen – Goose)’. 디지털 프린트, 페이스 마운트, 100 x 100cm. 2019.(사진=갤러리 퍼플)

이처럼 작가는 원본과 복제물을 구분 짓기보다는 그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작가는 “이제 원본의 복사물이 아닌 그 자체로 독자성을 가진 인공 홀드와 무늬목 시트지는 예술의 재현적 소재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이로써 나는 인공 홀드와 무늬목 시트지를 재현할 당위성을 얻고 이것은 재현의 재현이 아닌 원본의 재현이 된다”고 밝혔다.

또한 “재현의 재료는 인공 홀드의 원형인 돌과 무늬목 시트지의 원형인 나무를 사용한다. 한때 인공 홀드와 무늬목 시트지의 원본이었던 돌과 나무는 이제 그것들을 재현하는 재료로 전락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한경우, ‘프로젝티드 스페시맨 – 디어(Projected Specimen – Deer)’. 디지털 프린트, 페이스 마운트, 100 x 100cm. 2019.(사진=갤러리 퍼플)

갤러리 퍼플 측은 “인공물들이 자연의 모습을 온전하게 재현했을 때는 단순한 모방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본 모습을 드러내거나, 자연의 원본에서 거리감을 형성할 때 더 이상 자연의 대체재가 아닌 그 자체로서 비로소 예술의 재현 소재로 전환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어 “여기서 더 나아가 독립적인 가치가 부여된 인공물을 오히려 자연을 재료로 재현하면 원본과 인공물의 입장이 역전됐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본질의 가치에 대해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한편 남양주 와부읍 월문리에 위치한 갤러리퍼플(G.P.S: Gallery Purple Studio)은 ㈜벤타코리 아의 후원을 받아 2013년 1기를 시작으로 재능 있는 작가들을 발굴해 왔다. 또한 작가들에게 스튜디오를 2년 동안 제공해 창작 활동에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등 창작 공간과 전시 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왔다.

1기 작가 9명, 2기 작가 8명, 그리고 지난해부터는 3기 작가 8명(김성윤, 김신일, 배윤환, 유의정, 이배경, 이완, 조현선, 한 경우)이 입주한 상태다. 그리고 3기 작가 중 한경우 작가의 개인전 ‘자연스러운 전시’를 5월 4일까지 선보인다.

 

한경우, ‘프로젝티드 스페시맨 – 래빗(Projected Specimen – Rabbit)’. 디지털 프린트, 페이스 마운트, 100 x 100cm. 2019.(사진=갤러리 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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