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수⁄ 2024.11.08 11:55:00
한미약품을 모체로 하는 한미그룹은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를 중심으로 한미약품과 중국 현지법인 북경한미약품, 원료의약품 전문기업 한미정밀화학, 헬스케어 유통 전문회사 온라인팜, 약국 자동화 시스템 선도 기업 제이브이엠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미약품은 단순 정제 위주로 형성돼 있던 한국 의약품 시장에서 창립 초기 좌제와 연질캡슐, 발포정, 고품질 유산균 제제 등을 선제적으로 개발하며 제형 다변화를 통한 차별화 전략으로 성장해 왔다. 이후 마이크로에멀젼 등 독창적 기술을 통해 당시 한국 최초, 최대 규모의 기술 이전 성과를 이뤄냈다.
의약분업이 시행된 2000년 이후에는 한국 최초의 개량신약, 복합신약을 기반으로 단숨에 업계 최정상급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이를 통해 축적한 자금을 혁신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한국형 R&D 전략’으로 2015년 한국 최대 규모 신약 라이선스 계약을 잇달아 성사했다. 2015년 당시 이룬 한미약품의 성과는 한국 제약산업 생태계가 R&D 중심으로 전환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2015년 이후 한미약품은 라이선스 계약 체결 신약들이 반환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반환된 신약의 질환 타깃 적응증을 바꿔 또 다른 글로벌 제약기업에 다시 기술 수출하거나 경쟁력 있는 자체 개발 신약으로 포지셔닝을 전환하며 ‘반전의 혁신’ 성과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있다.
올 하반기 연구 성과 대거 발표
지난 9월, 한미약품은 한척추신경외과학회가 주최한 '제38차 국제 추계학술대회' 산학세션에 참여해 한미약품의 근골격계 질환 치료제의 임상적 이점에 대한 발표를 진행했다. 또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ESMO Congress 2024)와 미국 호놀룰루에서 열린 세계약물연구학회(ISSX)에서 HM97662에 관한 다양한 연구 성과를 포스터에 담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국비만학회(Obesity Week)’에서 체중 감량과 근육 증가를 동시에 실현하는 ‘신개념 비만치료제(HM17321)’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발표, 근 손실이 불가피한 GLP-1 기반 약물들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서의 잠재력을 입증했다.
한미약품은 지난 11월 3일부터 6일까지 미국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미국비만학회에 참가해, HM17321을 통한 체중 감량의 양적·질적 개선 효능과 차별화된 개발 전략을 확인한 비임상 연구 결과 2건을 포스터로 발표했다.
한미약품 최인영 R&D센터장은 이 학회에서 “HM17321은 R&D센터에 내재화된 최첨단 인공지능 및 구조 모델링 기술을 활용해 근육은 증가시키면서, 지방만 선택적으로 감량하도록 설계된 혁신적인 비만 신약”이라며 “단독요법으로도 비만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기존 치료제와의 병용요법에서도 양적·질적으로 우수한 체중감량 효력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엄청난 잠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 센터장은 이어 “펩타이드 기반 물질로 개발된 만큼 항체 모달리티 기반 근육 보전 치료제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까지 갖출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HM17321은 GLP-1을 비롯한 인크레틴 수용체가 아닌 ‘CRF2(Corticotropin-Releasing Factor 2) 수용체’를 타깃 해 지방만 선택적으로 감량하면서 동시에 근육은 증가시키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현재 GLP-1 기반 비만치료제는 15~20% 수준의 효과적인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이지만, 감량 체중의 최대 40% 수준이 근육 손실에 기인한다는 한계가 있다. 또 식욕을 억제하는 작용 기전으로 약물 중단 시 기초 대사량 감소, 지방 재축적(요요 현상)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번 학회에서 한미약품은 비만 동물 모델에서 HM17321 투약 시, GLP-1 기반 약물인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와 유사한 체중 감량 효과를 나타내면서도 제지방량과 근육량을 증가시키는 차별성을 확인한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비만 동물 모델에서 매달리기를 통해 근육 기능을 평가한 결과, HM17321의 단독요법에 의해 근 기능이 정상 동물 수준으로 회복되는 효과를 확인했다.
또 한미약품은 비만을 모사한 지방세포에서 HM17321 투약 시, 지방 분해를 촉진하고 지방세포의 표현형을 정상 수준으로 개선하는 것을 확인했으며, HM17321이 인간 근육세포에도 직접 작용해 근육의 양적·질적 개선에 기여하는 것을 증명했다.
다른 발표에서는 HM17321이 한미의 차세대 비만치료 삼중작용제(LA-GLP/GIP/GCG, 코드명 : HM15275) 및 세마글루타이드와의 병용요법에서도 각각의 단독요법 대비 체중과 지방량의 유의미한 감소는 물론, 불가피한 제지방 감소를 보호하는 결과를 소개했다.
이 같은 결과는 HM17321이 지방 특이적 체중 감소, 근육량 증가 및 근 기능 개선을 통해 체중 감량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계열 내 최초 신약(First-in-Class)’으로 개발될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며, 단독 및 병용요법 모두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췄다는 점도 입증한 것이다.
최인영 센터장은 “올해 한미약품은 H.O.P 프로젝트 선두 주자인 에페글레나타이드의 혁신을 이어갈 ‘차세대 비만치료 삼중작용제 HM15275’와 ‘신개념 비만치료제 HM17321’을 글로벌 학회에서 잇따라 발표하며 비만 치료 분야에서의 선도적 입지를 확고히 구축했다”며 “앞으로도 흔들림 없는 신약 R&D 의지와 집념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영역에서 세상에 없는 혁신을 기필코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다.
한미 연구 성과 결실...사상 최초 완제품 중동 수출
중동·북아프리카를 일컫는 MENA는 약 6억 명에 이르는 인구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시장이다. 그중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는 높은 소득 수준을 기반으로 의약품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어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꼽힌다. MENA 지역 선두 제약회사인 타북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 등 17개국에서 탄탄한 영업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0월, 한미약품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표 현지 제약사 ‘타북(Tabuk Pharmaceuticals)’과 한미의 대표 품목들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 수출하기 위한 독점 라이선스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한미약품과 타북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 제약·바이오 박람회(CPHI 2024)에서 파트너십 체결을 기념하는 공식 사이닝 세레머니를 진행했다. 사이닝 세레머니에는 한미약품그룹 임주현 부회장과 한미약품 글로벌 본부 관계자, 타북 CEO 이스마일 쉐하다(Ismail Shehada)와 최고사업책임자(CBO) 위삼 알 카팁(Wisam Al Khatib) 등 이번 파트너십을 이끈 주역들이 참여했다.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타북은 한미약품이 개발한 혁신 전문의약품 여러 품목을 현지 허가를 받아 본격적으로 판매할 계획이다. 비뇨기 분야 제품, 항암 분야 바이오신약 등이 우선 진출 품목이다. 이를 시작으로 양사는 최첨단 연구개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주요 의료 문제를 해결할 선도적 치료법을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타북 CEO 이스마일 쉐하다는 “한미약품의 대표적 고부가가치 제품들을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에 소개할 수 있게 돼 매우 기쁘다”며 “양사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더 혁신적 치료법을 제공해 MENA 지역 의료 시스템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타북과의 사이닝 세레머니에 참석한 한미약품그룹 임주현 부회장은 “이번 파트너십은 중대한 의료 문제를 해결하고 환자들에게 더 나은 치료 결과를 제공하려는 양사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며 “한미의 R&D 전문성과 타북의 강력한 지역적 입지가 만나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MENA 지역 환자들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문화경제 이윤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