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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그림 길 (43) 행주산성 ①] 행주산성의 ‘행(幸)’과 웅어 유래…
(CNB저널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겸재의 양천팔경첩에는 행주산성 주변을 그린 두 점의 그림이 있다. 두 그림은 행주나루 앞 언덕에 있던 정자를 그린 그림으로, 낙건정(樂健亭)과 귀래정(歸來亭)이다. 그런데 이 두 그림은 물론 이곳 행주 지역을 더 넓게 그린 그림이 있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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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상 법과 유학] 사건배당 이면에 비친 전관예우 - 전화변론, 구두…
(CNB저널 =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조국 전 법무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약 2개월 간에 걸친 검찰의 사냥몰이 식의 집요한 수사 끝에 구속되었습니다. 그 과정에 심각한 국론 분열이 초래되었고 그로 인해 국민들은 마음속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하루빨리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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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그림 길 (42) 선유봉] 선유봉이 선유도 된 사연
(CNB저널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지하철 2호선과 9호선이 만나는 한강 서쪽의 역 이름이 당산(堂山)이다. 9호선은 여기에서 김포공항 쪽으로 달리는데 다음 역은 이름도 아름다운 선유도(仙遊島)역이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무언가 관심을 끄는 이름들이다. 오늘은 지하철 2호선, 9호선 당산역에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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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재미있는 법률이야기] 인터넷 ID에 욕을 해도 처벌될…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바야흐로 스마트폰 시대이다.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지혜가 있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었다. 이른바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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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그림 길 (41) 양화진] 절두산 옛 이름은 ‘들머리’의 이두…
(CNB저널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겸재의 그림을 담은 책들을 보면 양화진(楊花津: 양화나루)을 담은 두 점의 그림을 만난다. 하나는 양화진이며, 하나는 양화환도(楊花喚渡)라는 그림이다. 양화진은 양천팔경첩에 있고 양화환도는 경교명승첩에 포함돼 있다 한다. 이 두 그림은 겸재가 양천현령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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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그림 길 (40) 개화산] 행복했던 겸재가 그린 편안한 개화사
(CNB저널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겸재는 65세 되던 해 1740년(영조 16년) 종5품(從五品)인 양천현령(陽川縣令) 직(職)을 제수 받아 12월 부임하였다. 사실 겸재는 나이 40이 되도록 어찌된 일인지 생원(生員)이나 진사(進士)도 되지 못한 유학(幼學)의 상태였는데, 김조순의 제겸재화첩(題謙齋畵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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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그림 길 (39) 안산 백련산 ⑤] 부하들이 ‘수도 땅’ 헤맬 때 리…
(CNB저널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겸재 그림 안현석봉(鞍峴夕峰)처럼 안현(안산)에 언제나 평안의 횃불 하나 피어 오르면 좋으련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전호(前號)에 소개했듯이 청장관 이덕무의 글처럼 안현에서는 치열한 전투도 있었다. 인조 2년(1624년) 일어난 이괄의 난 때 이곳 안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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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그림 길 (38) 안산 백련산 ④] ‘평화의 봉홧불 네 줄’, 다시 오…
(CNB저널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오늘은 안산(鞍山, 안현鞍峴) 정상에서 뒤편(북쪽) 길로 내려가 홍제천을 건너 백련산으로 가 보리라. 옛 지도에도 이 길이 잘 그려져 있다(아래 사진 1). 안현에서 내려 가면 사천(모래내, 홍제천)을 만나고 상암(裳巖, 치마바위)를 만난다.이윽고 정토(淨土)와 정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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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상 칼럼]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 시대의 출범과 기대
(CNB저널 =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류하혜(柳下惠)는 춘추전국시대의 대표적인 성인군자로서 노(魯)나라의 대부로 있다가 이후 은둔 생활을 했으며 덕행이 있고 예의를 중시한 정인(正人) 군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은 전(展)이고 이름은 획(獲), 자가 금(禽)입니다. 그가 사는 집에 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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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그림 길 (37) 안산 백련산 ③] 아베는 아나, 현저동 101번지를?
(CNB저널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이제 다시 독립문 앞에 선다. 이 일대는 독립공원이다. 영은문을 철거하고 독립문을 세운 이래 이 지역은 독립을 상징하는 지역이 되었다. 독립협회를 이끌었던 서재필 선생의 동상도 여기에 있다. 무악재를 바라보면서 좌측에는 모화관을 본떠 지은 독립관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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