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빵·과자·라면 등 집에서 해 먹는 밥을 제외한 대부분의 외식 기초 원료인 밀가루. 지금까지 이 밀가루 가격이 점차 인상됨에 따라 자장면도 3000원에서 3500원, 4000원으로 올랐고, 빵·과자·라면 등도 지난 2년 동안 큰 폭으로 상승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06년 대한제분·CJ제일제당 등의 밀가루 담합을 적발하여 무거운 과징금을 물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가루 업체들은 제품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올해 들어 패스트푸드, 제빵·제과업체들은 물론 중국집·분식점 등에서 밀가루 가격을 핑계로 가격을 인상했다. 특히 지난 6월에는 한 제과점에서 빵값을 한 달 동안 세 차례나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CJ제일제당의 한 관계자는 “일부로 내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릴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경기불황으로 이어지면서 곡물 유통원가가 높아졌고, 남미와 미국 등 원맥 산지에 이상기온으로 인한 흉년과 곡물 메이저들의 담합 등으로 원맥의 가격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거기에 석유가격 인상으로 공장 가동비까지 오르면서 전체적으로 밀가루 제품 생산원가가 높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제분업계 줄줄이 가격 인하 하지만 밀가루 업체들은 밀가루 2차가공업체들의 이 같은 책임전가에 대해 공정위의 밀가루 담합 적발경력 등으로 인해 특별한 반대의견을 내세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경기불황의 시기에 서민들의 쌈짓돈을 빨아들인다는 비난에 곤혹스러워하던 제분업체가 이달 1일부터 밀가루 가격의 인하를 전격 단행했다. 그것도 3~4%가 아닌 무려 9%씩 인하했다. 대한제분은 평균 9.6%의 가격인하를 단행했다. 업소용 납품을 위한 20kg 대형 포장제품은 중력분이 8.8%, 고급분이 12.3% 인하됐다. 가정용 소포장 제품도 1kg은 9.9%, 2.5kg은 9.6% 인하를 단행했다. 대한제분에 이어, 밀가루 제조업체 2위인 CJ제일제당은 평균 9.3%의 인하폭을 단행했다. 업소용 20kg 제품의 경우 중력분은 8.2%, 박력분은 8.0%, 강력분은 9.1%, 고급분은 11.8% 인하를 단행했다. 또 가정용 1kg 소포장 제품은 중력분 10.0%, 박력분 8.0%, 강력분 10.0%, 찰밀가루 10.0%씩 인하했다. 밀가루 전문 제조업체 동아원은 지난 1일부터 자사 밀가루 출고가격을 평균 9% 내렸다. 동아원의 한 관계자는 “최근 환율 및 국제 원맥 가격이 안정돼 가격인하 요인이 생겼다”며 “서민경제를 조금이나마 돕는다는 의미로 이번 기회에 가격인하를 단행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동아원은 업소용으로 납품하는 20Kg 제품의 경우 중력분을 8.5%, 강력분은 8.9%, 박력분은 8.2%로 각각 인하했다. 또 가정용 소포장 제품은 중력 1Kg을 현행 1170원에서 1050원으로 10.2% 인하했다. 제과·제빵업체는 “인하불가” 이와 관련, 제분업체는 “빵·과자·햄버거·피자 등 외식 및 간식 제품의 주 원료인 밀가루 가격은 이미 인하했다”며 “이제 서민 가계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책임은 우리에게서 제빵·제과 등 2차 가공업체들에게로 넘어간 셈”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제빵·제과업체들은 가격인하를 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했다. 이와 관련, 제과업체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그동안 밀가루 가격 인상 및 환율 등으로 인해 몇 번이나 가격인상 요인이 있었지만 인상하지 않고 참아왔다”며 “이제 겨우 여러 가격인상 요인 중 하나가 해결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원재료 값이 올라 가격을 내리기 어렵다는 푸념이다. 이와 관련, 농심 측의 관계자는 지난해 2월 곡물가격의 급등으로 모든 제품을 평균 200원 가량 인상해야 했지만 고통분담 차원에서 100원만 올렸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가격인상은 고통분담으로 떠안았던 100원 분 인상요인의 일부에 해당되는 만큼 실질적으로 추가적인 가격인하는 어렵다고 말했다. 롯데제과의 관계자는 “국내 밀가루 가격은 1일을 기점으로 평균 9%가량 내렸다고는 하지만 카카오를 비롯한 다른 원재료들이 계속 상승하고 있어 가격인하는 힘들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정부가 물가안정 차원에서 밀가루 가격 인하를 유도했지만 제과·제빵업체들이 가격인하 불가 방침을 천명한 상태라 이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에게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부의 조치로 밀가루 업체만 잡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롯데제과·농심·크라운·해태제과·SPC그룹 등 관련업체들의 인하불가 입장이 워낙 완강한 상태여서, 소비자 물가 안정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 대한제분을 포함한 제분업체는 “그동안 빵과 과자·패스트푸드 등의 가격이 오른 원인이 우리 탓이라고 성토를 받았지만, 이번 일로 그 같은 인식은 오해에서 비롯됐음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제분업체들, “빵·과자 비싼 원인 우리 탓 아냐” 사실 이같은 시각은 무리도 아니다. 롯데제과·농심·파리바게트에서 빵과 과자를 만드는데 밀가루와 설탕은 필수 재료이다. 때문에 밀가루 가격이 뛰면 당연히 빵과 과자 값도 오를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제분업체 관계자는 “논리와 상식선에서 생각한다면 그 같은 지적이 일리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밀가루와 빵의 가격 변동 추이를 본다면 오해라는 점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밀가루 값이 인상될 때 빵값도 같이 인상되면서 원료 가격만 탓한다”며 “그런데 우리가 밀가루 값을 내릴 때 빵 값이 내린 적이 있느냐”고 성토했다. 현재 밀가루 값 인하에도 불구하고 카카오 등 다른 원료 가격의 인상을 이유로 가격인하를 거절하는 제빵업계의 입장은 예전에 비춰 특별한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제분업체들은 지난해 양 업계의 실적을 예로 들며 소비자 부담의 주원인이 제분업체가 아닌 2차가공업체임을 강변한다. 실제로 2008년에 제분업체들은 환율 및 원자재 급락을 전망하며 밀가루 가격을 20% 인하하여 대부분 영업이익과 순이익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제과·제빵 등 2차가공업체들은 2008년에 충분한 이익을 가둬들였다는 것이 제분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