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8 재보궐 선거에서 ‘선거의 남자’로 활약한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 그는 수원 장안 선거 승리의 기쁨이 채 가시지도 전에 춘천으로 돌아갔다. 정치권은 이번 재보선 승리로 손 전 대표의 정치 복귀를 점쳤지만, 정작 손 전 대표는 모든 기대를 뒤로 한 채 재보선 다음날인 10월 29일 부인과 함께 수원 장안을 떠났다. 지난해 7월 당 대표직을 내려놓은 뒤 춘천에서 닭을 기르며 칩거해왔던 손 전 대표는 지난 4·29 재보선에 이어 10·28 재보선까지 활발한 선거 지원으로 존재를 증명했다. 정치권에선 수도권 내 영향력을 재확인하고 ‘화려한 부활’의 발판을 마련한 손 전 대표가 지방선거를 앞둔 내년 초쯤 ‘구원투수’로 재등판할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10·28 재보선에서 손학규가 얻은 성과 그는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직을 내려놓은 뒤 칩거 생활을 이어왔다. 지난 4·29 재보선과 이번 재보선에서 선거 지원에 나선 것을 빼면 그동안 여의도와는 거리를 둬왔다. 정치 무명인 이찬열 후보가 상대 후보보다 20% 이상 뒤처졌던 지지율을 뒤바꿔 6% 이상 앞서는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한 배경에는 ‘손학규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하지만 “반성이 끝나지 않았다. 좀 더 깊이 고민하고 내가 나설 자리와 때를 생각해보겠다”며 춘천으로 사라졌던 그는 이번 선거 이튿날인 10월 29일 수행비서도 없이 직접 차를 몰고 또 한 번 홀연이 춘천으로 떠났다. 단, 그 이튿날인 10월 30일 오전에 손 전 대표는 다시 수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찬열 당선자의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손 전 대표를 비롯해 지역 인사들과 선거사무소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조촐하게 치러진 선대위 해단식에서 손 전 대표는 “지역 구민과의 약속을 잊지 말 것”을 강조하고 “국회의원은 대한민국의 일꾼이다. 나라 일꾼으로 커 나가라”는 말을 남겼다.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 10·28 재보선으로 손 전 대표가 얻은 것은 뭘까? 이미 지난 ‘4·28 재보선’에서 손 전 대표의 영향력이 입증됐지만, 그는 이번 재보선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위치를 각인시켰다. 손 전 대표의 당 내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옮긴 전적에 대한 당내 일부 부정적인 시각도 종식시켰다. 이를 반영하듯,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활약한 정치 거물들에 대해 악평을 하면서도 유독 손 전 대표에 대해서는 호평했다. 이 의원은 “이번 재보선에서 손 전 대표가 자신의 정치철학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며 “나설 자리와 나서지 말아야 할 자리를 잘 아는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사실 이번 재보선에서 정세균 대표에 대한 반감으로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던 의원들이 손 전 대표의 전화를 받고 수원 장안 선거 유세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손 전 대표가 얻은 것은 이 같은 당내 지지뿐이 아니다. 그는 차기 대권주자로서 자신의 면모를 부각시키는 효과도 얻었다. 한 인터넷 신문이 여론조사기관인 ‘모노리서치’에 의뢰하여 11월 1일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손 전 대표는 3위를 차지했다. 손 전 대표가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이처럼 상위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처음 있는 일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31.3%로 선두를 유지했고,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10.2%로 2위를 차지했다. 3위를 차지한 손 전 대표의 대선후보 지지도는 8.5%였다. 이 밖에,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 무소속 정동영 의원,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등이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1.9%로 8위를 차지했다. 손 전 대표는 특히 전라권에서 21.6%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박근혜(20.0%)·정동영(16.9%)·유시민(4.8%) 등을 모두 제치고 지역 1위를 차지했다. 서울권에서도 11.2%로 박근혜(28.1%)에 이어 2위였다. 본격 정계복귀 “시작됐다” 시작도 이번 재보선에서 손 전 대표는 수원 장안 이찬열 당선자의 선대위원장으로 적극 선거운동에 나서 민주당에 승리를 안겨주는 정치력을 유감없이 과시해 간접적으로 정계에 복귀했다가 다시 칩거에 들어갔다. 손 전 대표의 정계 복귀는 당내 차기 대권주자 사이의 경쟁 및 지형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어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현 상황에서 손 전 대표의 복귀 시기를 점칠 수는 없다. 무소속 정동영 후보의 당 복귀에 대해 침묵하는 정세균 대표가 손 전 대표의 복귀를 반길지 미지수인데, 손 전 대표의 복귀는 곧 정 대표와의 차기 대선후보 경쟁의 ‘신호탄’이라는 점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특히 손 전 대표가 지난 9월20일 수원 장안 불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민주당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의 지지와 신뢰다. 어려울 때일수록 정도를 가야 한다”고 한 말에 주목하고 있다. 이것은 민주당에 대한 주문이 아니라, 정 대표를 향한 ‘경고 메시지’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손 전 대표는 지난 9월 30일 기자들과 만나 “계룡산 밑에서 1년이나 지내면서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는데 그 결과가 기껏 ‘정세균 체제 흔들자’라면 되겠느냐”면서 “그렇게 옹졸하지 않다. 그런 생각을 했다면 산에 갔던 것 반납해야 한다. 진심으로 야당이 튼튼한 체질을 갖기를 원하는 충정을 말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일각에서 제기하는 정세균 대표와 손 전 대표의 반목은 실현성이 낮다”며 “이미 정 대표와 손 전 대표는 이번 선거를 통해 손 전 대표의 정계 복귀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었고, 구체적 시점에 대한 논의만 남겨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결국 손 대표의 복귀 시점은 이제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손 전 대표는 이찬열 후보의 당선으로 편안하게 자신의 향후 진로를 심도 있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손 전 대표의 정계 복귀와 시점은 본인 의사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손 전 대표의 복귀 시점을 지방선거를 앞둔 내년 초쯤으로 보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손 전 대표가 지방선거를 앞둔 내년 초쯤 정치활동을 재개해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내년 7월 초로 예정된 차기 당권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현재 1심이 진행 중인 한나라당 박진 의원의 지역구 ‘종로’도 손 전 대표의 복귀 무대로 점치기도 한다. 손 전 대표가 지난 총선 때 박 의원에게 패배한 지역이지만, 손 전 대표는 패배 이후에도 ‘종로’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과시하고 있다. 손 전 대표는 이번 수원 장안 불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종로구를 찾아 지역 지지자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재보선 이후 다시 춘천으로 돌아가는 등 여의도와 거리를 두고 있지만, 이번 선거 승리로 사실상 그가 정치판에 다시 발을 들여놓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 정치력을 입증받은 손 전 대표를 찾아 춘천으로 가는 정치권 인사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그 과정에서 손 전 대표의 정치적 발언이나 현안에 대한 의견 개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손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정치적인 고민을 좀 더 하겠다고만 하셔서 구체적인 생각이나 복귀 시기를 알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