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1월 19일 오전 청와대에서 가진 한미 정상회담은 미국이 북한을 향해 미·북 양자회담을 개시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힌 회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비록 미국과 북한 간의 양자회담이기는 하지만 대북 문제이니만큼 한국과 함께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끝난 뒤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그동안 관심을 모았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일정을 처음 공개했다. 그는 “미국은 6자회담 프로세스에 협력하면서 결정적이고 포괄적인 핵무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그 노력의 일환으로 보즈워스 대표를 내달 8일 북한에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곧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서로 돌아앉았던 미·북이 처음으로 고위급 대화에 나선다는 것을 의미하는 내용이다. 즉, 북한의 핵실험과 6자회담 불참이라는 강수에 역시 강하게 대응했던 미국이 ‘제재와 대화’라는 투 트랙(two track) 복합 국면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양국 정상은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핵 일괄타결 구상 등 북한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공감을 이루고 향후 공동 대처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곧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미가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음을 과시함으로써 일각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우려를 일축하고, 북핵 문제에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함을 부각시켜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대통령이 “한미 정상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본인이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으로 제시한 일괄타결이 필요하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하고 구체적 내용과 추진 방안에 대해 긴밀히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힌 데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읽혀진다. 이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이 조속히 6자회담에 복귀해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해 나가도록 여타 6자회담 참가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보즈워스 대북특사 12월 8일 평양 방문 사실 밝혀 이 대통령은 북핵 일괄타결 방안과 관련해 “지난 20년 동안 북한과 협상을 했지만 일보전진 일보후퇴하면서 오늘날까지 아무런 합의점에도 이르지 못했다”며 “그렇기 때문에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 언제까지 타결해야 한다는 목표를 두지 않고, 가능한 한 빨리 해결할 수 있는 ‘그랜드 바겐’이라는 제안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대통령은 그랜드 바겐 제안에 시한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북한에 핵 포기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기 위해 (그랜드 바겐) 제안을 했다”며 “북한 스스로 안전과 경제,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여러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6자 프로세스에 협력하면서 결정적이고 포괄적인 핵무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그 노력의 일환으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다음달 8일 북한에 보내겠다”고 밝혔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대해 한국과 미국 정부는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 대통령과 완전히 의견을 함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양국 정상은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핵 폐기’의 대가로 ‘정치·경제적인 보상’을 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내비쳐, ‘채찍’과 ‘당근’의 대북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나는 북한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북한의 안전을 확보하고 주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새로운 미래를 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북한이 만약 구체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조치를 통해 의무를 준수하고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한다면 미국은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북한이 국제사회와 완전히 통합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공언하는 등 ‘당근’을 던졌다. 반면, 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나는 핵우산과 확장 억지력을 포함한 한·미 안보태세를 재확인했다”며 “지난 6월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동맹 미래비전을 내실 있게 이행하겠다”는 북한 압박용 ‘채찍’을 던지기도 했다. ‘확장억지’는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한국에 대한 핵우산은 물론 재래식 전력도 함께 제공한다는 종합적인 방위동맹으로, 한국이 군사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은 자국이 공격을 당할 때와 같은 수준으로 대응 타격에 나선다는 개념이다. 즉, 지난 10월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서 명문화한 ‘확장억지’를 재차 강조함으로써, 북한이 계속 핵 개발에 나설 경우 한·미 군사동맹을 기반으로 한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경고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오바마, ‘그래드 바겐’ 언급하지 않아 아쉬움 이에 대해 청와대 한 핵심 관계자는 “양국 정상은 실질적인 비핵화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중국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한국과 미국이 힘을 합해 비핵화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외교 당국자가 한 가지 아쉬워하는 부분은, 이 대통령이 공동기자회견에서 ‘일괄타결’식 해법인 ‘그랜드 바겐’을 세 차례 언급했지만 오바마 대통령 입에서는 ‘그랜드 바겐’ 단어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본인이 제안한 그랜드 바겐에 (오바마 대통령이) 전적으로 공감했다”고도 주장했으나, 오바마 대통령은 “완전히 의견을 함께 한다”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면서도 ‘그랜드 바겐’이라는 용어는 끝내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랜드 바겐에 대한 양국 공조’ 물음에 답할 때도 “공동접근 방식(common approach)” “포괄적 해결책(comprehensive resolution)” 등의 용어를 사용했다. 외교 라인 당국자는 “방문국 정상에 대한 ‘립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오바마 대통령이 그랜드 바겐을 직접 언급했다면 더 깔끔했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사실 이 대통령이 9월 21일 미국 방문 때 연설에서 처음 ‘그랜드 바겐’을 언급한 직후, 커트 캠벨 미 국무부 차관보는 기자들의 질문에 “처음 들었다. 솔직히 말해 전혀 모르겠다”고 답해 ‘양국 간 사전 조율이 안 된 것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켰다. 심지어 이 대통령은 직접 9월 30일 캠벨에 대해 “미국의 ‘아무개’가 (그랜드 바겐을) 모른다고 하면 어떠냐”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뒤 미 당국자들은 아직까지 공식석상에서 ‘그랜드 바겐’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오바마 대통령이 ‘그랜드 바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북핵 문제의 일괄타결 방식에 대해서는 뜻을 같이하고 있음을 재천명했다는 점에서 공통된 접근 방식을 토대로 양국의 공동 대응이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미 FTA 의회 비준, 돌파구 못 찾아 이 같은 북핵 문제 공조와는 달리, 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타결 후 2년여를 끌어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빠른 의회 비준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서 한국의 자동차 부문 비관세 장벽을 없앨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며 난색을 표명했고, 이 대통령은 한미 양국의 교역이 현재 균형을 이루고 있다며 설득에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신속한 한미 FTA 비준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미국이 우려하는 부분은 엄청난 무역 불균형, 지난 10년 간 발생한 무역 불균형”이라며 “이 대통령과 담당자들에게 양국이 이 협정의 진전을 위해 노력하자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은 “많은 논의와 작업을 하고 있으며 팀을 구성해 장애가 되는 모든 문제들을 다 논의하고 있다”며 “마지막 비준까지 가는 여러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몇십 년 간 발생한 무역 불균형은 한국과의 관계에서 두드러지지 않지만 아시아 전체 차원에서 한꺼번에 보게 되는 관행이 있는 것 같다”며 “의회에서 볼 때는 일방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 대통령은 ‘자동차 시장 개방을 통해 FTA를 타결할 의향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미국에 문제가 있다면 다시 이야기할 자세가 돼 있다”고 답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유럽연합(EU)과도 FTA를 체결했지만 유럽은 한국에 1년에 자동차 5만 대를 수출하고 있다”며 “미국과도 문제가 된다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조금 전에 오바마 대통령과 충분히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런 자세가 돼 있다”며 “이것은 양국에 도움이 되는 일인 만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10년, 20년 전 한국이 미국의 보호를 받을 때는 무역 격차가 있었지만 지금은 적다”며 “중국·일본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FTA 문제에 대해 매우 솔직하고 전향적인 말을 했고 이 점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미국 기업인이나 미국은 한미 FTA가 한국에 유리하고 미국에 불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FTA(에 대한 반응은) 산업별로 차이가 있다”며 “한국에서도 서비스나 무역을 하는 분들이 반대를 하고 있지만 정부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체 균형을 보면 양국에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 대통령의 설명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중국·일본과 함께 아시아 전반에 대한 무역 역조 현상 때문에 한국에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미국에 돌아가서 의회에 잘 설명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인과 미국 기업, 그리고 또 미국 사람들이 각 국가를 따로따로 장단점을 평가해 우리가 원하는 그런 윈-윈 상황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한국과 중국·일본 간의 무역 역조 현상에 대한 이해를 달리해 각 국가별로 다른 전략을 짜서 한미 FTA 비준을 위한 대 의회 프로세스를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은 “미국도 국내에 정치적 이유가 있고 의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공개적으로 다 드러내서 표현할 수는 없었으나 오바마 대통령은 FTA 추진에 확고한 의지를 밝혔고, 여러 측면에서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고 밝혔다. 성공적인 G20 한국 개최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또 다른 성과는 내년에 한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한 것과, 기후변화·녹색성장·비확산·대테러 등 범세계적 문제에 대해 공동 대응하기로 협의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우리 두 정상은 피츠버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성과를 평가하고 강력하고 지속가능한 균형 성장을 위한 프레임워크의 이행을 위해 계속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며 “〃내년 11월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우리는 G20을 통해 세계경제를 구출했고 좀 더 균형 잡히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유지할 것”이라며 “그 노력에서 한국은 G20을 내년에 주최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기후변화·녹색성장·비확산·대테러 등 범세계적 문제에 대해서도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며 “나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며, 내년 4월에 미국이 개최하는 핵 안보 정상회의에 참여하여 회의의 성공을 위해 적극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재건팀(PRT) 파견 결정에 대해 “아프간에 PRT을 보내기로 한 결정을 환영한다”면서 “한국의 이런 중요한 기여는 아프간의 능력 배양에 도움이 될 것이며, 아프간에서의 우리의 목적 달성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청정 에너지와 기후변화에 대해 협력할 것”이라며 “이 대통령에게 저는 한국이 최근에 발표한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신흥경제국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 머문 시간은 불과 20시간 20분으로 길지 않았지만, 실제로 만나서 얘기한 시간은 과거 어느 때보다 길었다”면서 “특히 마음을 연 대화를 통해 깊은 교감을 가졌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