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훈⁄ 2022.05.30 11:13:30
서울 서초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심부름에 늦었다는 이유로 후배 경찰관을 폭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서초서는 해당 주장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내부 게시판 폴넷에는 지난 29일 ‘이런 경찰관이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을 작성한 A 씨는 피해자 B 경장의 아버지로 현직 경찰관인 것으로 알려졌다. A 씨의 주장에 따르면, 아들 B 경장은 같은 경찰서 소속인 C 경위에게 지속해서 폭행당했다.
A 씨는 “C 경위가 아침 당직 근무가 끝난 후 B 경장에게 김밥을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라고 글을 시작했다. 이어 A 씨는 " B 경장이 10분 늦게 도착하자, C 경위는 B 경장을 CCTV가 없는 곳으로 끌고 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약 30회 때렸다"라며 C 경위가 B 경장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려고도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A 씨의 주장에 따르면, C 경위는 지난 4월 조수석에 타고 있던 B 경장의 얼굴과 머리를 여러 차례 가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C 경위는 폭행에 대해 B 경장에게 일말의 사과도 없었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A 씨는 “다른 직원들에게도 폭언과 폭행, 인격을 모독하는 등 과거에도 직원들의 갑질과 폭행이 있었는데 반성은 하지 않고 지속해서 폭행과 갑질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폴넷에서 A 씨의 글을 본 동료 경찰관들은 “피해 경찰관이 어떤 피해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지 말라” 등의 반응을 보이며 C 경위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한편 30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가해자로 지목된 C 경위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업무상의 이유로 5월 회식 자리에서 B 경장에게 손찌검을 한 사실은 인정한다”면서 “감찰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B 경장과 C 경위는 현재 업무상 분리 조치된 상태로 경찰 관계자는 “진정이 접수돼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이라며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보도됐다.
최근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피해 경찰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미온적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2월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실이 공개한 경찰 조직 내 갑질과 괴롭힌 관련 접수 및 처리현황에 따르면, 2018년 11월부터 2021년 3월까지 경찰청 내부비리신고센터에 접수된 건수는 총 106건이다. 이 중에서 34건이 불문 처리 됐다. 불문의 경우, 진정을 올린 비위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징계나 주의 ·경고 조처 없이 종결된 것이다.
나머지 72건도 대다수가 경징계 처분이 내려졌다. 취하 17건, 경고 14건, 확인 중 9건, 주의 8건, 직권경고 7건, 소관기능 통보 3건, 불문경고 2건, 조치완료·제도개선·부서장 교육·불수용이 각 1건이다. 중징계인 정직은 고작 3건이었다.
관련해 권 의원은 지난해 2월 중앙일보에 “100여 건의 갑질 신고 중에서도 불문과 경징계에도 못 미치는 조처가 대다수라는 건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라며 “경찰이 일반 기업과 달리 가볍게 처벌하는 것은 큰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보도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도 경찰관들에게 적용이 안되는 점도 이런 상황을 부추긴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근로자를 위한 법이다. 그러나 고용 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공무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 했다. 공무원 행동강령(제13조의3 직무권한 등을 행사한 부당 행위의 금지) 만으로는 갑질 피해를 막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일보 해당 보도에서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경찰 조직이 폐쇄적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경우 외부 중재가 필요할 것"이라면서도 “경찰을 비롯한 공무원에 대한 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행정 해석은 독소적 행정해석”이라고 비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경찰 문화에 자리 잡고 있는 갑질에 대한 통념도 바뀌어야 한다”며 “갑질과 관련한 양정기준이 명확하게 만들어져야 하고, 적극적인 교육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바뀌지 않는다면 신고센터가 있다고 할지라도 문턱을 넘는 사건 중 태반은 불문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