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은⁄ 2023.02.24 15:20:41
전방위 압박을 이기지 못한 구현모 KT 대표(61)가 결국 차기 대표 후보에서 사퇴했다. 차기 대표 지원자로는 윤진식(76)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KT는 23일 이사회에서 구 대표의 사퇴 의사를 수용해, 차기 대표 후보군에서 그를 제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구 대표는 3월 정기 주주총회를 끝으로 대표이사직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24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구 대표는 이사회에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27일부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박람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에도 예정대로 참석해 기조연설자로 나선다.
내부 승진한 수장인 구 대표는 KT에서 경영지원총괄, 경영기획부문장, 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을 지내고 2019년 12월 이사회의 전원합의 결의로 3년 임기의 KT 대표에 선임됐다.
선임 당시 김종구 KT 이사회 의장은 "구 후보는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췄다"며, "4차 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민첩한 대응이 가능하고, 확실한 비전과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해 KT의 기업가치를 성장시킬 최적의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선임 배경을 밝혔다.
실제로 3년간 구 대표가 이끌어온 KT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며 역대급 호실적을 기록했다.
특히 2021년은 KT가 기존 통신 사업과 더불어 디지털플랫폼(DIGICO)으로 사업 전환을 가속하면서 B2B 사업 실적을 크게 성장시키고 미래 성장 기반을 만든 해로 평가된다. 당해 KT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연결 기준 매출 24조 8980억원, 영업이익 1조 6718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매출 4.1%, 영업이익은 41.2% 증대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KT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 25조 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KT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3.0% 증가한 25조 6500억 원이다. 영업이익은 1조 6901억 원으로 전년 대비 1.1% 증가했다.
KT는 구 대표 취임 직전인 2019년말 영업이익이 기준 1조 1510억 원에서 취임 3년 후인 2022년말 기준 1조 6901억 원으로 46.8% 성장하며 체질 개선과 함께 고수익 기반을 마련했다.
이에 구 대표는 노조를 포함한 내부의 지지를 받으며 연임에 도전해 지난해 단독으로 최종 후보로 선정된 바 있다. 하지만 KT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선정 과정이 불투명하다”며 연임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며 부침을 겪었다.
이날 아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8일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소유분산기업의 합리적 지배구조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나 논의가 활발하지 않았다. 이제는 소유구조가 광범위하게 구축된 기업의 건강한 지배구조 구축을 검토할 때"라며 KT·포스코 등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개입 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이같은 국민연금의 입장에 구 대표는 KT측에 단독 후보가 아닌 복수 후보로 경쟁을 거치겠다는 뜻을 전달하며 "복수 후보와 함께 다시 심사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사회는 지난해 12월 28일 복수 후보 없이 구 대표를 차기 CEO 단독 후보로 확정했다. 당일 국민연금은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이 1월 30일 국회 세미나를 통해 “구 대표의 연임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투명하지 않은 결정 과정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며 KT의 대표 선임 절차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도 같은 날 금융위원회 보고 자리에서 금융지주를 비롯해 KT, 포스코 등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강조하며 국민연금의 행보에 힘을 실어줬다.
이에 2월 9일 KT 이사회는 차기 CEO 선임 절차를 공개 경쟁 방식으로 바꿔 진행하기로 했으며, 구 대표를 비롯해 총 34명이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23일 구 대표는 스스로 후보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업계에서는 연임을 시도했던 금융지주 수장들이 잇따라 교체된 데다 최근 검찰과 경찰,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구 대표 재임 중 일어난 각종 의혹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상황이 구 대표의 고심을 깊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연임 과정에서 10.13%의 지분을 확보한 국민연금을 비롯한 대주주들의 주주총회 추인을 받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KT는 현재 진행 중인 차기 대표이사 선임 절차는 그대로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20일 접수를 마감한 KT 차기 대표이사 후보 지원자 접수에는 외부 인사 18명과 사내 인사 16명을 포함해 총 34명이 지원했다. 구 대표가 빠지면서 사내 인사 후보는 15명으로 줄었다. 외부 후보자 대부분이 여당 정치인 출신이거나 여권과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 구성되면서 민영화된 기업이 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린다는 관치 우려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윤 전 장관 외에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등 관계 출신 인사들도 출사표를 던졌다.
여권 안팎에선 KT의 차기 후보로 재선 국회의원 출신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장관은 충북 충주를 지역구로 의원직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에선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정책실장을 역임했다. 재선 의원 출신으로 국회의원 임기 2년을 남겨두고 2014년 충북지사 선거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외부 활동을 자제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대선 캠프에 참여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특별고문으로 활동했다.
한편, KT와 포스코, 금융지주사 등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정부의 혁신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지난 해 우리금융지주는 손태승 회장이 정부 압박에 용퇴를 결정한 바 있다. 대신,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우리금융지주 차기 회장 내정자로 선임됐다.
우리금융그룹은 지난 해 2022년 3조169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시현하며 당기순익 3조 시대를 열고 이를 이끌어온 손 회장의 3연임이 가시화 돼왔다. 하지만 2019년부터 금융권을 달군 라임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하여 금융당국의 전방위적 압박이 지속되자 손 회장이 회장 연임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며 물러났다.
차기 우리금융 회장으로는 내외부 출신을 대표하는 이원덕 은행장이 유력히 거론되며 임 전 위원장의 양강 구도를 예상해왔으나, 결국 현 정부와 금융당국의 암묵적 지원을 받고있는 임 전 위원장이 최종 후보로 내정됐다.
지난해 12월, 3연임이 유력했던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 역시 후배들에게 길을 내주며 용퇴를 선언한 바 있다. 이에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린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지주회사를 포함해 이른바 '주인 없는 기업'으로 불리는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다음달에 출범시킨다는 방침이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