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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문화 별천지②] 멈춰 서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세상이

SK케미칼·수원시, 인문학 문화공간 ‘지관서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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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96호 김응구⁄ 2025.05.26 13:36:01

SK케미칼과 수원시는 4월 24일 인문학 문화공간 ‘지관서가’를 개관했다. 전국 지관서가 중 열 번째다. 사진=김응구 기자
 

서울 한남동에서 8800번 직행버스를 탑니다. 대략 33㎞ 거리인데, 두 정거장만 가면 내립니다. 대부분 경부고속도로에서 시간을 보내거든요. 도착지인 ‘연무동·서광교파크스위첸’까지는 30분쯤 걸린 듯합니다. 여기서 모바일 지도 앱(애플리케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5분 정도 걸으니 눈앞에 ‘수원시 평생학습관’이 들어옵니다.

‘텍스트 힙’ 내지는 ‘디지털 디톡스’

‘텍스트 힙(Text Hip)’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글자를 뜻하는 ‘텍스트’에 쿨하다는 의미의 ‘힙’을 합친 신조어입니다. 책 읽는 행위를 멋지다고 느끼는 것이죠. 주로 젊은이들 사이에 번진, 일종의 트렌드입니다. 그래선지 각종 소셜미디어(SNS)에는 이를 인증하는 사진이 한창입니다. 독서 모임이나 서점 찾아다니기 같은 일상을 공유하고, 때로 마음에 드는 한두 문장을 필사(筆寫)해 소개하기도 하죠. 책 한 권 소비하는 게 트렌드화 됐다니, 참 재밌는 요즘입니다.

한편으론 디지털 홍수 속 잠시 쉬어가는 ‘쉼표’ 역할로 책을 손에 쥐게 된 건 아닌가 싶습니다. 디지털 기기 사용을 잠시 중단하고 심신을 회복하는 ‘디지털 디톡스(detox)’ 현상이 아닐까 하는 것이죠.

 

‘수원 지관서가’는 노출콘크리트 구조다. 1층과 2층 가운데를 통으로 터 개방감을 좋게 했다. 사진=김응구 기자
 

멈춰 서서 나와 세상을 되돌아보다

지관(止觀). 글자 그대로 ‘멈추어 바라보다’라는 뜻입니다. 천태종(天台宗)에선 ‘잡념을 버리고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켜, 바른 지혜로 그 대상을 비춰 보는 일’이라고 한답니다.

SK그룹은 이 멈춰 서서 바라보는 공간을 전국 이곳저곳에 하나둘 늘려가고 있습니다. 대개 지방자치단체의 유휴(遊休) 시설을 인문학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킵니다. 이름은 ‘지관서가(止觀書架)’입니다. 분주한 일상 속 잠시 멈춰 서서 나와 세상을 되돌아보며 삶의 지혜를 발견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SK그룹은 그간 울산에만 여섯 곳, 안동·여주·울진에 한 곳씩 지관서가를 세웠습니다.

4월 24일에는 ‘수원 지관서가’가 문을 열었습니다. 지관서가로는 수원이 열 번째입니다. 이곳은 SK케미칼이 힘을 보탰습니다. 수원시가 평생학습관 공간 일부를 제공하고, SK케미칼이 12억원 규모의 리모델링 비용을 부담했습니다. 24일 열린 개관식에는 안재현 SK케미칼 대표와 이재준 수원시장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수원시 평생학습관 터는 원래 연무중학교 자리였습니다. 이 학교가 광교로 이전하면서 2011년 평생학습관이 들어섰고, 그중 일부를 리모델링해 지금의 지관서가로 만들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수원은 SK그룹 모태인 ‘선경직물’이 자리했던 지역입니다. 그래서 더 뜻깊죠.

안재현 SK케미칼 사장은 “SK의 태동기를 함께하고 그룹 성장의 토대가 된 수원시에 시민들을 위한 지관서가를 개관하게 돼 의미가 크다”며 “단순히 운영만 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에 기여하거나 더욱 다양한 기회를 모색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2층에는 창가를 따라 열람 테이블이 놓여있다. 독서도 좋고 노트북을 펼쳐 놓아도 좋다. 사진=김응구 기자


다시 한번 소개하자면, 지관서가는 시민의 마음 건강과 행복한 삶을 위해 마련한 인문학 문화공간입니다. 서가(書架)답게 1000권 가까운 서적을 갖추고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책 냄새보다 커피 냄새가 먼저 인사합니다. 생각해보니 책과 커피, 떼려야 뗄 수 없겠다 싶습니다. 여름철 국민 음료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들고 자리를 찾습니다. 그제야 공간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SK케미칼에 따르면 740㎡ 규모의 복층 구조인데, 전국 열 개 지관서가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합니다.

내부 인테리어는 노출콘크리트 구조입니다. 자연스럽게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건축의 본질을 드러내는 노출콘크리트 기법으로 자신의 건축 철학을 보여줬죠. 흔히 보는 구조인데도 서가라는 느낌과 맞닿으니 묘한 분위기를 냅니다.

1층과 2층 가운데 공간은 통으로 뻥 뚫려 있습니다. 개방감이 ‘장난 아니게’ 좋습니다.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입니다. 서가에 들어설 때 기준으로 왼쪽은 온통 창으로 연결했습니다. 편안한 라운지체어와 테이블 세 세트가 널찍널찍하게 자리하고 있고요. 마주 보이는 끝쪽에는 조약돌처럼 생긴 크고 작은 소파들이 모여 있습니다. 반쯤 몸을 뉘어 책을 보다 살짝 잠이 들어도 좋습니다.

오른쪽 벽면 1·2층은 커다란 책장으로 이었습니다. 책장 하나가 아주 근사한 인테리어처럼 보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오릅니다. 여긴 창가 쪽에만 도서 테이블이 마련돼 있습니다. 모두 독서를 하거나 노트북을 들여다봅니다. 창밖에 비라도 내리면 나름 낭만일 듯도 싶습니다. 한쪽 벽엔 마흔아홉 권의 책이 줄지어 놓인 책장도 보입니다. ‘어린이·어른이 서가’라고 적힌 작은 표지판이 재밌습니다. 아마도 어린이와 어리고 싶은 어른을 위한 공간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책 몇몇은 표지 맨 밑 오른쪽에 ‘어린이·어른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습니다. 어떤 책엔 ‘감사’, 또 다른 책엔 ‘관계’, 그밖에 ‘자율성’ ‘의미와 목적’ ‘몸챙김’ 등 스티커 종류는 다양합니다. 고르는 이가 편히 선택하도록 소주제로 나눈듯합니다. 그 배려가 고맙습니다.

 

‘수원 지관서가’에는 1000권 가까운 서적이 자리하고 있다. 서가의 테마는 ‘행복’이다. 사진=김응구 기자
 

인문학 강연 열리고 독서 모임도

개관식 날 이재준 수원시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관서가가 시민들이 언제든 들러 책을 읽고 인문학을 경험하는 휴식과 배움의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더불어 평생학습관 프로그램과 시너지를 이루며 전 세대가 함께하는 지역 문화의 명소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이재준 시장이 말했듯이 지관서가는 매달 여러 분야의 지식인과 학자를 초청해 인문학 강연을 엽니다. 마침 5월 24일에는 예술 인문학자 이동섭 작가가 인문특강으로 ‘뚱뚱해서 행복한 보테로 콘서트’를 진행했습니다.

화상회의 플랫폼을 활용한 온라인 독서모임도 준비돼있습니다. 올해는 러시아 문학을 주제로 3·6·9·12월 네 차례에 걸쳐 강의와 대화를 진행합니다. 6월에는 19일 저녁 7시부터 시작합니다. 러시아 문학 연구자 이현우 문학평론가가 진행을 맡아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사랑에 대하여’를 함께 읽고, 이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이어갑니다. 현재 신청 접수 중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빨리 지관서가에 접속하시기 바랍니다.

지관서가의 운영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입니다.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문을 열지 않고요.

 

‘수원 지관서가’에선 때마다 인문학 강연이 열린다. 온라인 독서모임도 활발하다. 사진=김응구 기자


“행복이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 형체를 확인할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각자의 마음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마치 사랑처럼. 암흑 속에서도 내 눈으로 내가 밝혀내는 빛. 그러므로 자신의 행복은 자신이 꺼내며 살아가야 한다.”

베스트셀러 ‘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일홍·부크럼·2024)의 한 구절입니다. 이곳에서 이 한 권을 들고 이 문장을 발견했을 때의 순간이 참 소중합니다. 수원 지관서가의 테마는 ‘행복’이라고 합니다. 글을 쓰고자 왔지만, 행복은 멀리 보이는 게 아니란 걸 다시금 알려준 ‘아주 보통의 하루’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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