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눈동자를 지닌 한 소녀가 꽃에 둘러싸인 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 모습은 몽환적이면서 기괴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행복한 꿈을 꾸는 듯 평화로워 보인다. “소녀의 모습을 통해 여성적인 감성을 알리고자 했어요. 지금까지는 남성중심으로 세상이 이어져왔지만 세계가 좀 더 여성화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죠. 포용하고, 감싸 안고, 희생을 아끼지 않는 그런 여성의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차가운 세상에 봄을 가져오는 소녀의 모습을 그리는 류준화의 개인전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비원에서 6월 3일부터 25일까지 열린다.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마치 오래된 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는 작업과정에 석회에 사용된 까닭이다. “바탕에 석회를 바르고 석회가 마르면 사포로 갈아내고 콘테와 안료로 형상들을 만들어냅니다. 부분적으로 사포질을 하고 또 안료를 올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깊이 있는 색감과 질감을 만들어내죠. 원하는 느낌이 나오면 마지막으로 코팅처리를 합니다.” 아직 그림에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작가가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이다. “전국미술대회에 나가서 아주 큰 상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 이후로 미술대회는 거의 학교 대표로 나가게 됐고 자연스레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죠.” 그렇게 진학하게 된 미술대학에서는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고민도 많이 했다. “미술대학을 들어갈 때까지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잘 그린 그림과 좋은 그림은 꼭 일치하지만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뒤 좋은 그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죠. 나만의 색깔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늘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작가는 20~30대까지는 실험하고 모색하고 자기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이 40을 넘고 나서야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가 보이기 시작했고, 지금도 열심히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녀가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여성’이다. 여성으로서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하면서 여성성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소녀를 내보인다. 월경을 하는 시점, 여성으로 성장해감을 자각하게 되는 시점, 바로 그 시점에 소녀가 존재한다. 그녀의 캔버스 안에서 소녀는 태양을 머금고 대지와 접신하며 인간과 자연의 생명성에 관해 풍부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하얀 캔버스 앞에선 늘 작아집니다. 온전히 제가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하기에 가슴도 죄어오고 부담을 느끼기도 하죠. 좋은 작업에 대한 열망으로 몸살을 앓기도 하지만 작업을 통해 제 삶의 한 장면들을 마무리 짓고 넘어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 참 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