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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별남 작가, 월남국수의 고기를 끝내 못 집어든 까닭은?

사진작가 유별남의 유별난 나눔과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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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59-260호 김대희⁄ 2012.02.06 13:04:32

“나눔에 대한 생각과 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어요. 우리는 베푸는 것에 대해서 아직 어색함이 많죠. 꼭 돈과 물질이 아닌 내가 가진 재능,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도 충분히 가능해요. 사진을 찍는다는 건 조그만 나눔이지만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도 함께 동참할 때 더 넓어지고 커질 수 있는 거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도 아까운 만큼 다른 사람과 나누고 돕고 살기가 쉽지 않다. 특히 겨울철 연말이나 새해가 되면 불우이웃을 돕자는 성금이나 모금 행사가 눈에 띄게 늘지만 대개는 이때뿐이다. 그러나 이제 돈이나 물품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1월 중순 한 카페에서 만난 유별남 작가는 독특한 이름만큼이나 나눔에 대한 애착과 열정을 갖고 있었다. 나눔의 방식은 바로 자신이 가진 재능 즉 사진작가로서 사진을 찍으며 아이들을 돕는 것이었다. 그것도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말이다. 이제 그의 유별난 나눔 사랑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좋아한 그는 대학 때 조각을 했고 대학원에서 포토저널리즘으로 진로를 바꿨다. 이후 지금까지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는 그는 작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99년 12월 네팔로 배낭여행을 떠나면서 나눔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주로 파키스탄에 대한 것이 많다. 특히 난민촌이나 오지 등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했던 그들의 안타까운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들이다. “배낭여행을 하던 중 파키스탄에서 전문사진가 2명을 만났어요. 일본과 프랑스 작가였는데 함께 다니면서 정말 안쓰러운 아이들을 많이 봤어요. 그때 우린 서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함을 느꼈죠. 그러면서 어떻게 도와야 할까 고민하다 사진으로 나눔을 해야겠다 마음먹고 시작하게 됐어요.” 그의 사진 나눔은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월드비전과 함께 일하면서 더 본격화됐다. EBS의 세계테마기행 방송에 출연한 이후 방송작가로부터 월드비전을 소개받으며 일하게 됐다고 한다. 월드비전의 기아체험이나 사랑의 동전 모으기 행사는 물론 중요한 인터뷰 사진이나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무보수로 촬영해주며 돕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일이 따로 있음에도 이처럼 봉사를 나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그도 처음에는 자신의 일을 우선으로 하면서 봉사를 해왔지만 이제는 월드비전과의 일을 먼저 생각할 만큼 일의 순서가 바뀌었다.

“쌀을 먹는다”는 베트남 어린이에게 “무슨 반찬?”을 물으니 “쌀을 먹는다”고 또 대답. 맨쌀만 먹고 평생 고기맛을 못 봤다는 소리에 그날 그는 베트남 쌀국수의 고기를 차마 집지 못했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작업해 오신 분들도 있어요. 저도 월드비전과의 일을 꾸준히 하고 싶어요. 개인적 일도 계속하겠지만 사회적으로 나눔에 대한 생각과 문화를 널리 알리며 바꿔가고 싶죠. 베푸는 데 우리는 아직 어색하기 때문이에요. 내가 가진 재능이 사진촬영인데 그 조그만 나눔과 도움을 점점 넓혀가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 동참한다면 더 커지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2010년 월드비전 60주년 기념에 1년 특별 기획으로 에티오피아, 네팔, 베트남, 볼리비아 등 5개국을 다녀왔다고 한다. 한번 나가면 보름 정도 있다 들어왔는데 각 나라의 월드비전 사업장이 전부 오지에 있어 정말 힘든 경험을 했다고. 그곳에서 촬영한 작업량만 해도 80기가 정도라고 하니 실로 엄청난 기록을 남긴 작업임을 알 수 있었다. 이후 많은 사연들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 월드비전과 함께 ‘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월드비전 홍보팀에 근무하던 저자(최민석)가 월드비전 사업장이 있는 전 대륙(아프리카, 중남미, 동유럽, 아시아)을 돌며 1년간 취재 작성한 에세이와 유별남의 사진을 함께 실었다. 이런 경험이 작업에 큰 영향과 도움을 줬으며 더 나누고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한다.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 중 몇 가지 가슴 찡한 사연들을 들어봤다. “베트남에 영양이 부족한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 중 9살 여자아이에게 무엇을 먹고 사느냐고 물었더니 쌀을 먹는다고 했어요. 물론 쌀은 우리도 먹는 거니까 또 뭘 먹냐고 했더니 또 쌀이라고 하더군요. 알고 보니 반찬 없이 쌀만 먹는 거였어요.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대요. 그 상황에 가슴이 메여 촬영이 안 됐어요. 이처럼 암울한 상황이 정말 많아요. 이후 점심을 먹는데 쌀국수가 나왔죠. 그 위에는 얹힌 고기를 보며 결국 먹지 못했죠.” 이어 그는 올리비아에서 14살 소년 광부를 만났는데 그 소년이 탄광에서 무엇을 하는지 물었다. 심부름이나 잡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물었는데 정작 대답은 “폭탄 설치”였다.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기에는 어린아이들이 제격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둘이 한 조를 이루는데 형제가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헬멧은 형만 쓰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헬멧을 살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루 4달러를 벌어 가족이 함께 살아가려니 헬멧 구입은 꿈도 꾸기 힘든 현실이었다.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요.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들이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오죠. 이러한 아이들을 보면서 시각이 넓어지고 내 삶에 더욱 감사하게 됐어요. 사실 불만이 없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지금 삶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필요한 때인 것 같아요.” 천성적으로 나눔을 하고 싶다는 그는 한때 의사가 되려고도 했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돕는 일에도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카메라 가방에 항상 기본적인 의료용품을 꼭 챙긴다. 오지를 다니며 다친 아이들을 치료해 주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그는 개인적인 후원도 하고 있다. 2011년 스리랑카 고아원을 방문해 130명 아이들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줬다. 일반적인 사진이 아니라 정말 생동감 넘치는 사진들이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담고 싶어 일 년에 한두 번씩 방문해 직접 촬영해서 보내주려고 한다. “이런 일로 하나씩 제 프로젝트가 생기는 거죠. 함께 나눌 수 있는 작업이면서 남기고 싶은 기록들이에요.” 그가 촬영하는 사진이 남다른 감동을 주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사람과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으면 촬영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사진을 거부할 때도 찍지 않는다. 그러나 찍고자 마음먹은 다음에는 며칠이고 기다려 촬영한다. 올해도 여전히 주된 작업장인 파키스탄과 고아원 아이들의 촬영을 위해 스리랑카로 갈 계획이라는 그는 생활 속 미술의 대중화를 위해 1년에 한 번씩 작은 그림을 구입하면서 예술 애호가로서의 또 다른 역할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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