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업은 어떤 사물의 재현이나 사회성을 담거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다. 메타포나 심벌도 아니다. 풍자나 해학도 아니며, 조형적으로 보기에 아름답거나 세련되거나 심오한 철학과 콘셉트가 담긴 작업도 아니다." 작가 김정아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간단하면서도 의미 있는 말을 꺼냈다. 자신의 작품 세계는 일상생활에 있어 자신만의 경험과 느낌을 심리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숨결에 맡겼다는 의미다. 김 작가는 자신의 무의식과 원형의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을 즐긴다. 치밀하게 구성하고 계획되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우연적이고 즉흥적으로 형성된 것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에게 아름다움이란 타고난 존재 그 자체가 자연스럽게 제 자리에서 꽃 피울 때, 자기 고유의 색과 소리와 빛이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마음껏 발할 때이며 최고의 아름다움이 만개할 때라고 한다.
작업을 할 때마다 사람이 아무리 괴롭고, 슬프고, 끔찍하고, 비통한 일을 당해도 살아낼 수 있는 건 그 삶의 고통이 고통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아무리 엄청난 비극일지라도 사람의 피부처럼 구멍이 있고 틈이 있다. 좁은 간극일지라도 그 곳을 통해 우리는 편안해질 수 있고, 희망을 찾을 수 있고,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것도 확실하고 고정적인 것은 없다. 시간과 주변 환경과 관계, 문맥 그리고 구조에 따라 끝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며, 무한적이고, 규정되지 않으며 또한 상대적이다. 김 작가는 "절대적으로 완벽한 것은 없는 것 같죠. 자연물이건, 인공물이건, 관념이건, 현실상황이건, 어느 것이나 틈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카카오스토리 통해 소통과 만남 지속 자크 데리다의 '차연'의 개념과도 맥락이 상통한다. 동일함 속에서 차이의 유희처럼 간극은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로서 우리에게 명상과 성찰을 제공해준다. 김 작가의 작품은 먼저 종이를 접거나 자신이 원하는 형태대로 오린다. 그리고 캔버스나 종이 위에 붙이고 나면 그 위에 찍는다. 그리고 마르면 다시 그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때로는 글씨도 올린다. 그리고 또 지우기를 반복하고 그 위에 다른 그림을 그리고 물감으로 또 찍고, 흘리거나 불기도 한다. 지루한 반복의 과정을 통해 화면에는 긍정과 부정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작가의 정체성의 고민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화면을 통해 뚜렷한 길과 목표 없이 헤매고 방황하는 작가의 모습과 굴절되고 빠르게 진화하는 현대의 속도에 부지런히 따라가느라 자신의 타고난 속도를 잃어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마치 캔버스 위에서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그리고 지우고 흘리기를 반복하여 완성한 화면에는 희미하게 흔적이 남는다. 밑에 언뜻 언뜻 보이는 선과 색이 그림을 풍부하게 해준다. 마지막에 선택된 그림은 먼저 한 기본 밑 작업이 없었으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형상을 드러낸다. 눈앞에 모두 다 드러나지 않아도 먼저 행해진 붓질의 흔적과 자취의 기록이 작품의 완성으로 펼쳐진다. 눈앞에 모두 다 드러나지 않아도 먼저 행해진 작가의 흔적과 자취 그리고 과정은 곧 완성이라는 방점을 찍는다.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감성으로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작가의 언어, 작가의 소리를 그렇게 몇 번씩 한 화면에 뿜어 놓으면, 나타나는 동시에 사라지고, 또 다른 세계가 등장한다. 마치 영사기가 돌아가듯 수시로 화면이 바뀐다. 삶이 주는 무게에 짓눌려 힘든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업으로 조금이나마 웃음과 여유, 휴식과 희망을 잉태하는 간극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김정아 작가가 '카스의 일상'이라는 타이틀로 7월 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강남구 논현동 갤러리 구하에 작품을 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도 가상과 현실의 간극이 점점 좁혀져 가는 것을 표현한 작품들로 가득 채우게 된다.
작가는 모바일 SNS의 일종인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이들과의 사이버 상에서의 만남과 소통에 대해 독특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작품을 올리고 그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들으며, 자신의 소소한 일상, 기쁨과 슬픔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일기처럼 시간의 흔적을 모았다. 모든 예술은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창조해낸 가상이다. 가상에서 느낌을 받고 감동을 받는다. 장 보드리야의 시뮬라크르나 하이퍼리얼리티의 이론에서처럼 원본과 사본, 현실과 재현의 차이나 간극이 없어진다. 가상물들이 현실을 지배하고, 재현을 통해 현실이 확인되는 전도가 일어난다. 가상을 통해서 경험과 추억을 보듬는 것은 이제 고유성과 독창성이 가상에서도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카스 친구들이 작가에게 꿈과 사랑 그리고 기쁨을 주었듯이, 작가도 그들에게 자신의 그림이 살아 움직이고 말을 전해주며, 희망을 속삭여줄 수 있길 바란다. 또한 고유한 이름이 되어 의미가 되길 소망하고 있다. - 왕진오 기자